찬양 496 새벽부터 우리

민수기 21:1~20


1.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이스라엘 사람들'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스라엘'이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나라 이름이기 이전에 사람 이름입니다. 그렇습니다. 야곱의 이름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니라 이스라엘인 것은 그들 모두가 한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공동체 전체를 한 사람 취급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적 인격에 모두 동참해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이런 것이지요. 우리도 성도교회 사람들이 아니라 성도교회입니다. 성도교회가 새벽에 기도하러 모였습니다.

  민수기 21장은 이스라엘 사람 몇을 인질로 붙잡은 가나안 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서원합니다. "만일 이 백성을 내 손에 넘기시면 내가 그들의 성읍을 다 멸하리이다" 여기서 서원하는 것은 또 이스라엘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이 서원하여 이르되", 또 한 사람이 기도하는 것처럼 쓰여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서원한다는 말은 모두가 한 마음이라는 뜻으로 기도했다는 것이겠습니다. 즉 공동체 전체가 이 한 가지를 바라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정말 공동체가 바라던 그 일대로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목소리"를 들으셨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이스라엘에 의해 가나안은 진멸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곳의 이름을 '파괴'라는 뜻의 '호르마'라 지었습니다.


2.
  이렇게 공동체가 하나되면, 이방민족을 진멸할 수 있습니다. 진멸(헤렘)은 부수어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물을 하나님께 바칠 때 사용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제물은 진멸해서 바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중에 바울은 이 '진멸'에 대해서 이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15:16
나는 하나님의 복음을 섬기는 제사장 직무를 맡았습니다.
이는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기 위함인데,
이 바침이 성령으로 거룩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겠다고 합니다. 즉 이방인을 진멸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이방인을 죽여서 없애겠다는 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이, 하나님의 사람인 '이스라엘'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하나님 모르는 이방인 안에 들어가 죄악을 소멸시킵니다. 그리고 그 사람의 아담적 본성은 죽습니다. 그리고 메시아와 함께 새로이 태어나 부활의 삶을 걷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이방인은 이런 식으로 진멸되는 것입니다.

  메시아 예수를 통해 드러난 진리는, 진멸의 참 의미를 가르쳐줍니다. 마치 민수기의 이스라엘이 이방 민족을 진멸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확장해나가듯, 오늘 21세기의 이스라엘인 교회는 믿지 않는 이들을 진멸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확장해나가는 것입니다. 앞에서의 진멸은 멸망시키는 것이라면, 뒤에서의 진멸은 오히려 살게 하는 것입니다. 살게 하는 것이 참다운 진멸입니다. 원수 사랑이 곧 원수 진멸의 방법인 것입니다.


3.
  우리 주변에 있는 이방인들을 생각해봅시다. 하나님을 모르고, 메시아 예수를 몰라서 우리를 대적하고 있는 원수 같은 사람들을 말입니다. 이스라엘 여러분, 오늘이 그들을 진멸하는 오늘입니다. 그들을 망하게 하자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새롭게 거듭나기만 하면, 그들은 그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우리는 이방인을 거룩하게 하는 제사장들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 이방인을 메시아의 사람으로 만드는 하나님의 군사, 이스라엘입니다.

  그러나 오늘 이야기에서는 이 진멸의 기쁨도 잠시 뿐입니다. 우리는 어제 에돔왕이 이스라엘을 에돔땅으로 통과하지 못하도록 했던 장면을 보았습니다. 이 일이 출애굽 3년째의 일이었는데, 오늘 본문은 아론이 죽은 이후, 거의 출애굽 여정의 40년째의 일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에돔 땅에는 못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에돔으로 가로 질러 가면 편할 것을, 저 에돔놈들 때문에 그러지 못하고 험한 길을 출애굽 시작부터 40년 가까이 지난 이때까지 돌아가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다시 또 불평 불만이 시작됩니다. 그들을 진멸하겠다고 전열을 가다듬기는 커녕,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의 원망이 시작되자, 성경은 이들을 '이스라엘'이라고 한 사람을부르듯 부르지 않습니다. 그저 '백성'이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 지라" 이렇게 모래알처럼 흩어진 백성들이, 다시금 하나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그리고 그 뒤는 우리가 아는 그대로입니다. 하늘에 들린 놋뱀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은 다시 이스라엘이 됩니다. 놋뱀을 보고 살아난 이들을, 성경은 다시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곳을 떠나", 17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이 노래하여 이르되"

  이 새벽에, 우리가 모세처럼 기도했으면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스라엘이라 부르시도록 말입니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게 해달라고, 그들의 옛사람을 우리 손에 붙여주시라고 기도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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