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436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민수기 20:14~29

1.
  이사를 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부동산을 통해 집을 알아보고, 그 집이 어떠한지 둘러봅니다. 집이 상태가 어떻고 또 방은 몇 개인지, 채광은 잘 되는지 둘러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때 볼 수 있는 것은 공간 뿐입니다. 그 집에서 어떠한 시간을 보낼지에 대해서는 둘러보지 못합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하면 시간은 지나고 나봐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그 시간을 겪고 있을 때는, 그 시간이 어떤 의미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어느 때에는 더욱 괴로운 날도 있습니다. 왜 지금 이런 고생을 하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나고 나면 비로소 우리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막상 겪고 있을 땐 모르다가, 지나고 나면 ‘아, 그렇구나’ 합니다. 시간이란 게 그렇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40년의 광야 유랑을 마치며, 자신들이 겪어온 시간을 되돌아봅니다. 그리고 겪고 있을 땐 몰랐다가 겪고 나니 이러하다고 기록하는 중입니다. 즉 민수기 20장 본문은 이미 광야 여정을 다 마치고 기록한 것입니다. 모세가 에돔 사람에게 길을 내달라고 합니다. 이 사건은 출애굽한지 3년째의 일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는 아론이 호르산 죽습니다. 이것은 출애굽한지 40년째의 일입니다. 가데스에서 호르산으로 이동한 사이에는 무려 38년이 놓여있습니다. 이 시간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오늘 민수기 20장의 기록은 과감히 생략합니다. 미주알 고주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죄다 말하는 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의미’ 없습니다. ‘지나와보니 이렇더라’ 이것이 ‘의미’입니다.

  그럼 20장에는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모두가 죽었다’입니다. 민수기는 이것을 말하고 싶어합니다. 출애굽의 시작에는 미리암이 죽었습니다. 출애굽의 끝에는 아론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모세도 죽습니다. 이렇게 40년간 출애굽했던 1세대는 모두가 죽었습니다. 그럼 이들은 대체 왜 죽은 것입니까?

2.
  이스라엘이 광야 여정에 오르기 전, 하나님은 그들이 입주할 집을 보여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정탐꾼들을 보내어 그들이 입주할 집을 둘러봤습니다. 가나안 집은 참 좋았습니다. 실한 열매가 큼직하게 열리고, 땅도 기름진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집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집을 보러온 사람들은 집을 주겠다는 분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정탐꾼들의 말을 들었던 이스라엘 사람들도 하나님보다는 정탐꾼들의 말을 더 신뢰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게 이 광야 여행은 떠나봐야 얻지 못할 것 같은 집을 향해, 억지로 떠난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신뢰없는 사람들에 대해 하나님은 이미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14:34,35
너희가 그 땅을 탐지한 날 수 사십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 사십 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거니와 모여 나를 거역하는 이 악한 온 회중에게 내가 단정코 이같이 행하리니 그들이 이 광야에서 소멸되어 거기서 죽으리라

  신뢰 없는 사람, 아담도 같은 말을 들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창세기 2:17)

  처음부터 이것이 원칙이었습니다. 이것은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께 신뢰가 없으면 에덴 밖으로 쫓겨납니다. 하나님께 신뢰가 없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죽습니다. 신뢰 없음은 뿌리 뽑힌 나무와 같습니다. 살 것 같지만 40년을 가지 못합니다. 결단코 가지 못합니다. 아담은 죽어야만 합니다. 미리암도 죽어야 합니다. 심지어 모세도 죽어야합니다. 주시려는 집에 대한 신뢰없이는 결단코 광야를 통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에돔 왕을 통해서 그들의 앞 길을 가로 막으십니다.

3.
  그래서 내가 죽었던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쫓겨나고 죽었듯, 아담 같은 나는 쫓겨나고 죽어버렸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나를 이미 쫓아내버린 사람들입니다. 밖에 슬피 울며 이를 갈고 있는 나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던 나, 약속에 땅에 들어갈 수 없는 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그 따위 나에 대해서 일말의 동정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내가 죽기 위해서, 메시아가 함께 죽으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서 6:4,5, 개인번역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음과 하나 되어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죽어버렸습니다.
이것은 아버지의 영광을 통해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살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하나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하나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수심에 불타야 합니다. 우리가 복수해야할 대상은 '남'이 아니라 '나'입니다. 아담과 같았던 내가 메시아를 죽였습니다. 아담과 같은 나, 하나님께 신뢰없는 나야 말로 메시아를 죽인 범인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의 시간은 광야의 시간입니다. 이 시간 동안 살인자는 죽고 또 죽고 또 죽습니다. 광야의 시간은 하나님께 신뢰 없는 가 죽고 또 죽고 죽는 시간입니다. 더불어 이 광야의 시간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우리가 새로이 부활한 시간입니다.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는 시간입니다. 죽을 것은 죽고 살 것은 사는 시간입니다. 묵은 아론은 죽고 새로운 엘르아살이 사는 시간입니다. 아담은 죽고 메시아가 부활하는 시간입니다. 그 새로움으로부터 신뢰가 넘치는 시간입니다.


  세례받은 여러분, 우리는 이미 과거의 어느 날, 이 생명과 죽음 앞에서 생명을 취했습니다. 죽어야만 다시 사는 생명을 붙잡았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광야의 시간이 펼쳐졌습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들 중 누군가가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넘치지 않는다면, 당신은 다시 죽고 당신은 다시 살아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만일 여러분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반드시 영원한 집, 새로운 장막을 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신뢰가 있다면 당신에겐 걱정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로마서 2:7, 개인번역

사람이 참을성 있게 선을 행하며, 영광과 존귀와 불멸을 구할 때, 하나님은 그에게 오는시대의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3, 개역한글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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