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 288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민수기 19:11~22


1.
  민수기는 '백성 숫자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을 통해 건져내신 자기 백성을 세심하게 돌보시고, 또 그들을 하나하나 세십니다. 거친 광야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백성들의 숫자를 세실만큼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세심하게 돌보는 것만큼, 그 백성들에게도 하나님께 세심한 규례를 지킬 것이 요구됩니다. 즉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은 서로를 세심하게 생각해주는 사이인 것입니다. 이것이 민수기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속한 백성의 숫자를 세신다는 내용이 요한계시록에도 나옵니다. 요한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의 숫자를 듣습니다. 그 숫자는 십사만 사천입니다. 그런데 이 숫자는 이상하고 신기한 숫자입니다. 열 둘에 열 둘을 곱하고, 거기에 천을 곱하면 나오는 숫자이거든요. 딱 십 사만 사천이 아닙니다. 숫자를 세긴 세었지만, 그 숫자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세신 숫자는 무한하고 영원한 세심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세는 숫자는 다릅니다. 사람이 숫자를 세면 그 숫자는 제한이 됩니다. 사람이 센 십사만 사천은 딱 십사만 사천일 뿐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민수기에 이런 저런 규례들이 복잡하게 나옵니다. 그러나 이것을 그저 의미없는 규례들로 읽어서는 곤란합니다. 자기 백성을 돌보시는 하나님의 세심함을 읽어야 합니다.

2.
  민수기 19장에 나오는 규례는 이러합니다. 이스라엘은 뭔가 짐을 져보지 않은 붉은 암소를 제사장에게 가져옵니다. 그리고 그 소를 이스라엘의 진영 밖에서 잡습니다. 그 소의 고기, 피, 똥을 모두 태워버립니다. 그리고 제사장은 옷 빨고 목욕합니다. 소를 잡는 일을 돕던 이들도 목욕하고 옷 빱니다. 암송아지를 태우고 남은 재를 거둔 사람도 옷을 빱니다.

  그럼 그 재가 묻은 옷을 빠는데요. 이 옷 빤 물에 대한 이야기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입니다. 이 잿물에는 기능이 있습니다. 바로 부정한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기능입니다. 시체를 만졌던 사람이라도, 깨끗게 할 수 있습니다. 죽은 사람의 장막 안에 있던 자도 깨끗하게 할 수 있습니다. 즉 이 잿물은 죽음을 떨어뜨려내고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잿물입니다.

  심지어 이 물이 없다면, 붉은 소를 태웠던 그 재를 가지고 다시 잿물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 잿물만이 죽음으로 더러워진 자를 깨끗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잿물로 깨끗게 하는 규례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나 이스라엘 밖의 외국인에게나 영원한 규례라 했습니다.


3.
  이것이 영원한 규례인 것은, 다음과 같은 사실 때문입니다. 크리스챤 여러분. 제물로서 죽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 대해서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 제물로 죽은 사람에게서 물이 흘러나온다고. 그리고 그 물로 씻는 것은 죽음으로부터 우리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한 사람으로부터 흘러나오는 물이 너무나 간절하고, 또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죽음의 때, 죽음의 더러움이 오늘 도처에서 우리를 더럽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더러움이란, 나만 살고자 했을 때 나오는 더러움입니다. 왜 나만 살고자 합니까? 내가 죽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내가 죽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내가 죽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며, 내가 죽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에게 욕하고 저주하고, 내가 죽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이 죽길 바랍니다. 이렇게 죽음은 이렇게 사람을 속이고 더럽게 만듭니다.


  그러나 제물로 죽었던 한 사람은, 우리가 죽음을 통과하도록 이끄십니다. 내가 죽어야 미움이 씻기고, 내가 죽어야 욕이 안나오고, 내가 죽어야 아무도 안죽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죽으신 분은 우리 손을 이끌고 함께 죽음을 통과하십니다. 그리고 생명수를 넘치도록 맛보게 해주십니다. 이 방식으로만 사람은 그 한 사람과 하나될 수 있고, 깨끗해질 수 있습니다.

로마서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매일 세면대 앞에서 씻듯이, 우리가 매일 그 사람의 잿물로 씻습니다. 그 사람의 잿물이 죽음의 땟국물을 지워냅니다. 그러기 위한 오늘입니다. 죽음이 우리를 더럽힐 수 없는 오늘이 될 것입니다. 예수의 잿물입니다. 예수를 죽이고 태운 사건 속에서, 깨끗함이 흘러넘쳤습니다. 그 깨끗함이란 아무도 미워하지 않음이요, 끝까지 사랑함입니다. 그 예수의 깨끗함으로 살자는 말은, 참으로 영원한 규례입니다.


히브리서 13:11~13 

이는 죄를 위한 짐승의 피는 대제사장이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고 그 육체는 영문 밖에서 불사름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케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 그런즉 우리는 그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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