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의 의사는 전혀 묻지 않은채, 교회 교육 프로그램 전체가 바뀌었다. 이것은 문제가 있어.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 우리는 지난 이야기를 다시 복습하려고 해요. 이제 성도교회 전체가 유치부, 유초등부, 청소년부가 똑같은 성경 내용을 가지고 공부하기로 결정했어요. 여러분들의 의견을 묻지는 않고 어른들끼리 이것을 정한 것은 미안한 일이에요. 전도사님이 사과할게요.
앞으로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을거에요. 그러나 중요한 건,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각과 실천으로, 우리는 하나됨을 이뤄야 하고, 어떠한 난관이 와도 그 하나됨은 그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이김!
"타락의 한 가운데서 맺어진 세상과의 약속"
(제목이 쪼끔 긴데?)
그래요, 일단 우리가 오늘 봐야 하는 이야기는 노아 이야기에요. 성경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가 꼭 해야 하는 일은 이 이야기가 성경 전체 어디쯤 있는지를 살펴보는 일입니다. 우리가 그간 배웠던 성경 전체의 그림이 꼭 필요한 이유를 알겠지요?
노아 이야기는 '타락 이야기' 안에 들어있는 이야기에요. 노아 이야기 전에는 가인과 아벨 이야기가 있고, 그 이후로는 바벨탑 사건이 벌어집니다.
1. 숨결 떠나 육체됨
노아 이야기는 여러분이 알테니, 오늘은 여러분에게 물어보고 답해보고 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첫번째 질문은 이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홍수로 지구 전체를 쓸어버리셨을까요?'
창세기 6:3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숨결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육체'가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육체라는 말은 우리의 몸뚱이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에요. 이 점을 잘 이해하는 것이 중요해요. 왜냐하면 성경에는 '육체'라는 말이 많이 나오거든요. '하나님의 숨결이 떠나서 육체가 되었다'라고 할 때 육체는 1) 죄가 죄인지도 모른채, 2) 죄를 저지른다는 의미에요. 이것을 꼭 기억하세요. 하나님의 숨결이 떠난 사람은 육체가 되어요. 그런데 그 육체가 뭐라고요? 죄가 죄인지도 모른채, 죄를 저지르게 되었다는 말이에요.
사람에게서 하나님의 숨결이 떠나고, 사람이 죄가 죄인지도 모르면서 죄를 저지르게 된 이야기는 노아때보다 훨씬 오래된 일이에요. 아담을 생각해보세요.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는 것이 죄인지 죄가 아닌지 헤깔려 했어요. 그리고 이렇게 헤깔리도록 만든 것이 사탄이었지요. 하나님은 분명 선악과를 따먹으면 죽는다고 하셨는데, 뱀은 '꼭 죽는건 아니야, 죽을지 안죽을지 몰라' 이렇게 사람을 유혹했어요. 즉 죄가 죄인지도 모르니까, 죄를 저지르는거에요. 이런 사람과는 하나님의 숨결이 함께 하지 않으세요.
그 일이 아담에게서 벌어지고, 그 아들인 가인에게서는 살인으로 드러나고, 점점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좋아지는게 아니라 점점 살기 힘들어졌어요.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지구 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되었어요. 그리고 노아 시대가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여러분은 죄가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하나님의 숨결이 여러분과 함께 하고 있나요? 죄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나요? 만일 이러한 질문에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면, 자신도 육체가 되어버렸음을 알아야 해요.
2. 육체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렇게 육체가 된 사람들을 어떻게 하실까요? 바로 '심판'입니다. 심판은 '바로 잡음'이라는 뜻이에요.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십니다. 노아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점이에요.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거룩은 죄와 상관없다는 뜻이에요. 그런데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저지르고 있는 사람을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그저 눈 감아주시고 인정해주실 것이라 생각하면 큰 오산이에요. 하나님은 심판의 하나님이십니다. 바로 잡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이 벌어져요. 하늘에서 물이 쏟아지고, 땅에서도 물이 솓습니다. 모든 사람들, 그리고 숨 쉬는 모든 것들이 물 속에서 숨이 끊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숨과 상관없이 살던 사람들의 목숨이 모두 끊어졌어요.
그리고 그 심판이 오늘날에도 있습니다. 마치 온 세상을 물이 덮었던 것처럼, 지금도 심판이 온세상을 덮었습니다.
요한복음 5:18
예수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는 것이요,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이 말을 잘 생각해보세요. 예수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은 것이고요,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벌써 심판을 받았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을 생각하면서 노아의 방주 그림을 머리 속에 그려보세요. 예수를 믿는 자는 심판에서 면한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은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라면, 우리는 물 위에 있는 사람과 물 아래 있는 사람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3. 방주와 함께 하는 물 위의 사람들
그렇게 모든 사람들이 물에 휩쓸려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있는 중에,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판이 유월된, 심판이 넘어간 사람들이 있어요. 마치 나무의 나뭇가지가 온통 잘려나가는데, 그중에 남은 그루터기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노아의 가족들이에요. 지금 지구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죄다 노아의 후손들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인류는 모두 멸절하고, 오직 노아의 가족 여덟명만 살아남았으니까요. 이 사람들이 물 위에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두 번째 질문을 해볼게요. 노아의 가족들은 방주에 얼마간 타고 있었을까요? 40일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비가 억수로 내렸고, 산 하나 보이지 않을만큼 지구는 물바다가 되었어요. 그리고 그 물이 빠지기까지 무려 다섯달이나 걸렸습니다. 그러니까 거의 반년동안 노아의 가족들은 방주 안에만 있었던 거에요.
세상을 덮은 물을 보며, 그 가족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노아의 가족들은 물을 무척이나 무서워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옆집살던 이웃도, 유명한 정치인도,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모두 물 속에서 죽었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마다 소름이 끼쳤을거에요. 방주가 넘실대는 파도를 넘을 때마다, 자신들도 바다 속에서 죽을뻔했다는 생각을 하면, 정말 물이 무섭지 않았겠어요? 그리고 물보다도 '하나님은 정말 가차없으신 분이시구나', '그 분 뜻에서 벗어나면 정말 죽는구나'하고 생각했을거에요.
그런데 이런 상상을 해보겠어요? 만일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물 속에 빠져있는 사람들을 구조해도 좋다'라고 말씀하셨으면 노아는 어떻게 했을까요? 이 물위에 있는 노아는 어떻게든 물 아래 빠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별 짓 다하지 않았겠어요? 나무를 던져보기도 하고, 밧줄을 던져보기도 하고, 어떻기든 방주에 사람들을 태우려고 했을거에요. 물론 방주가 아무리 크더라도 많은 사람들을 태우기에는 부족했겠지만요.
이러한 상상은 우리가 많은 것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기독교에서 세례를 받아요. 강가에 데려가서 물에 푹 잠갔다가 다시 일어나는 것이 세례이고, 기독교인이 되기 위해서는 꼭 치루어야 하는 의식입니다. 이 세례의 의미가 중요한데요, 1) 네가 노아의 방주 때 죽었던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지만, 2) 그 물에서 일어나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즉 노아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방주 밖에서 물 아래로 가라앉던 사람이, 그 물 위를 걸어 다시금 방주를 탄 사람이 된거에요. 그래서 인류를 이어가는 남은 사람으로 소속이 된 거에요. 이게 세례의 의미입니다.
게다가 이 세례를 통해 타게 된 방주는 노아의 방주 비슷하지만 하나 다른 점이 있어요. 노아의 방주는 공간이 제한되어 있어서 무한정 사람들을 태울 수 없지만, 이 세례를 통해 탑승하게 되는 새로운 방주는 끝이 없는 방주에요. 얼마나 끝이 없냐하면 땅구슬을 다 덮고도 남고, 우주 전체를 덮고도 남는 충격적인 방주입니다. 이 방주의 이름을 알고 있나요?
메시아 예수. 우리는 노아의 방주 이야기 안에서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은 방주 그 자체에요. 하나님은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죄를 범하는 죄인들을 반드시 심판하시는 분이시고, 그 심판은 벌써 시작되었어요. 바울은 그 심판이 '그저 내버려두는 것'이라 했어요. 예수를 믿지 않는 이들은 하나님께서 내버려 두신 사람들이요, 노아의 방주로 치면 물 아래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내버려두시는 심판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체가 되는 것에서 벗어난 남은 인류가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을 탄 사람들이에요. 그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성령으로 호흡 합니다. 그러니까 육체가 아니에요. 죄가 죄인 줄 알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를 이기며 살아갑니다. 오직 이 예수라는 방주로만 안에서만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4. 그 방주가 이끄는 데 : 새 하늘과 새 땅
그렇게 예수라는 방주를 타고 우리는 항해 중이에요. 그럼 그 방주는 우리를 어디로 이끌까요? 노아의 가족들은 마침내 땅으로 내려왔어요. 그런데 그 땅은 예전의 그 땅이면서도, 그 땅이 아니었지요. 땅이 깨끗게 씻겨서, 세상에 악을 저지르는 사람들이 모두 사라진 땅이었어요. 그 땅 위에 새로이 식물들이 자라고, 동물들이 번성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딛고 선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이 말씀은 우리와도 상관이 있어요.
창세기 9:9~15
“이제 내가 너희와 너희의 뒤를 이을 너희의 자손과
배에서 나와서 너희와 함께 사는 모든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 위의 모든 생물들과
너희에게 언약을 세우리니,
다시는 물로 모든 생물들을 없애 버리지 않을 것이며,
물로 땅을 멸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와 함께 사는 모든 생물과 너희 사이에 대대로 세울 언약의 표는 이러하다.
내가 구름 사이에 내 무지개를 두었으니, 그것이 나와 땅 사이의 언약의 표이다.
내가 땅에 구름을 보내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나는 너희와 모든 생물 사이에 세운 나의 언약을 기억할 것이다.
다시는 물로 땅의 모든 생물을 멸망시키는 일은 없을 것이다.
구름 사이에 무지개가 나타나면,
내가 그것을 보고 나 하나님과
땅 위의 모든 육체를 가진 생물들 사이에 세운 영원한 언약을 기억할 것이다.”
이 언약은 노아와 하나님 사이에만 있는 약속이 아니었어요. 이 약속에는 사람도 들어있고, 동물도 포함되고 세상 전체와 하신 약속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약속은 다시는 물이 사람들을 멸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이에요. 무지개를 볼 때마다 이것을 기억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다시는 물이 멸망시키는 물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이제 물심판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다른 방식으로 인간을 괴롭게 하실 수 있을거야.' 그러나 그렇지 않아요. 만일 하나님이 '이제 물로는 안죽일게. 이제는 불로 죽여주마'하시면 너무 무섭지 않아요?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뜻이 아니에요. 이제 멸망시키는 심판이 아니라, 다른 심판을 하시겠다는 약속이에요. 이제 죽이는 홍수가 아니라 살리는 홍수가 벌어진다는 말입니다. 지금 그 홍수에요. 지금 그 물이 온 세상에 가득해요.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오는시대를 살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지금도 심판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은 육체가 된 사람에게는 예외없이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노아 때의 심판과는 정말 다른 심판입니다. 그때도 물이고, 지금도 물이지만, 이 물은 예수로부터 흘러나오는 물. 사람을 멸망시키는 물이 아니라, 새롭게 하는 물의 심판입니다. 그 물이 온 세상 천지에요.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듯이, 반석이신 예수에게서 나오는 이 물을 마시면 오는시대를 살 수 있습니다. 이 물은 죽이는 물이 아니라, 살리는 물이에요. 예수님은 그 물 위에 서서 우리에게 이 물을 끊임없이 주시는 분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이 물을 줄곧 마시며, 살리는 권한을 끊임없이 쓸 수 있어요. 이 새롭게 하는 물 속에서, 우리는 이 생수의 근원이신 메시아 예수를 사람들에게 소개하고자 먼저 선택된 남은 인류입니다.
이 새로운 방주 예수. 탑승 제한이 없어서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이 방주를 타고, 우리는 그럼 어디로 향하는 것일까요? 노아의 방주가 악이 사라진 새 땅에 정박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새 하늘이 아니었어요. 그래서 사람은 노아의 홍수 이후에도 다시 육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방주는 우리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데려가 줄거에요. 그 날에 우리는 무지개를 보며 다시금 노아의 약속을 기억할 것입니다. 온 땅의 생물들과 함께, 우리가 귀여워하던 애완동물들과 함께, 새롭게 된 창조세계를 맡아 다스리는 새로운 아담들로 그 새 땅 위에 설 것입니다.
11977日.
'성경으로 지은 생각의 집' 카테고리의 다른 글
3-1. 타락을 해결하는 하나님의 방법 : 아브라함 언약 (0) | 2016.01.16 |
---|---|
6-1. 약속 이룸은 하나님의 전투 (0) | 2016.01.16 |
15-4. 빌라도들의 고난을 받으사 (0) | 2015.12.22 |
15-3. 예수와 함께 하는 유월절 식사 (0) | 2015.12.14 |
15-2. 유대인들은 왜 예수를 죽이려 했는가? (0) | 2015.12.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