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28~19~37


  사람들이 가야바의 집에서 총독 군사령부로 예수를 끌고 갔다. 때는 이른 아침이었다. 그들은 몸을 더럽히지 않고 유월절 음식을 먹기 위하여 관저 안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나와서 물었다.
  "당신들은 이 사람을 무슨 일로 고발하는 거요?"

  우리는 이 짧은 구절 속에서 많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유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로마 총독의 군사령부로 끌고 갔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은 당시 로마의 지배아래 있었으므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로마의 손을 빌어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군사령부로 끌고 갑니다. 그곳은 이스라엘에 대한 로마의 폭력이 결정되고 시행되는 곳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파괴되기를 염원하는 바로 그곳으로, 자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곳이자, 들어갔다간 몸이 더러워진다고까지 생각했던 곳입니다. 얼마나 예수를 죽이고 싶었는지 자신들의 발걸음이 차마 닿지 않았던 곳으로 예수를 끌고 갑니다. 그들은 로마 총독이 기거하는 군사령부 근처까지 왔지만, 그 더러운 곳에는 들어가는 일만큼은 피하고 싶습니다. 마치 성전 안에 제우스 신상을 넣은 것이 불결한 짓이듯, 짐승 로마의 군사령부에 유대인으로서 들어가는 일은 불결한 일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래서 들어가지도 않고 로마 총독을 불러내어 예수를 고발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화가 이어집니다.

  그들이 빌라도에게 대답하였다.
  "이 사람이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가 총독님께 넘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를 데리고 가서, 당신들의 법대로 재판하시오."

  유대 사람들이 대답했다.
  "우리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습니다."

  자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이 눈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도 예수를 죽이는 일이 더 급선무이기 때문에, 굽신굽신하면서, 예수가 악한 일을 저지른 극악무도한 사람이라 고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를 죽여달라고 하지요. 빌라도는 이스라엘에게 로마법이 아닌 토라가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까지 그래왔듯 토라대로 하라고 말합니다.(토라대로 하라는 빌라도가 더욱 이스라엘 같습니다!) 그러나 포로인 이스라엘에게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었습니다.(이것이 차라리 잘된 일인지도 모릅니다. 분열을 낳으며 많은 사람들을 차별하는 그들에게 사람을 죽일 권한까지 있으면 오죽했겠습니까? 그럼에도 그들은 사람을 죽여야 했기에, 없는 권한을 빌리러 로마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수님과 빌라도의 수수께끼같은 질문과 답변이 이어집니다. 빌라도는 의아해했겠지만, 우리는 이미 앞에서 가야바의 심문, 그의 체포, 겟세마네에서의 기도, 유월절 식사, 성전에서 있었던 일을 살펴보고 왔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들을 거쳐 여기까지 왔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답변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께서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인가를 암시하여 주신 말씀이 이루어졌다. 빌라도가 다시 군사령부 안으로 들어가, 예수를 불러내서 물었다.
  "당신이 유대 사람들의 왕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하는 그 말은 당신의 생각에서 나온 말이오? 그렇지 않으면, 나에 관하여 다른 사람들이 말하여 준 것이오?"
 
  빌라도가 말하였다.
  "내가 유대 사람이란 말이오? 당신의 동족과 대제사장들이 당신을 나에게 넘겨주었소. 당신은 무슨 일을 하였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내 나라는 현시대에 속한 것이 아니오. 나의 나라가 현시대에 속한 것이라면, 나의 부하들이 싸워서, 나를 유대 사람들의 손에 넘어가지 않게 하였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로 내 나라는 현시대에 속한 것이 아니오."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그러면 당신은 왕이오?"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현시대로 왔소.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소."

  빌라도가 예수께 물었다.
  "진리가 무엇이오?"

  진리는 무엇입니까? 진리는 지금 이 사람이 왕이고, 왕은 출애굽의 어린양이고, 지금 이사람을 통해 오는시대가 시작될 것이라는 소식입니다. 이것을 위해 토라 이야기가 준비되었고, 포로기의 처첨했던 상황들을 지나, 오늘 이 토라 이야기의 주인공이 로마 총독 앞에 서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빌라도가 알 턱이 없습니다. 다만 그는 이 사람이 좀 이상한 사람이지만, 그렇게 극악무도한 사람은 아닐 것이라는 느낌만 있을 뿐입니다.

  빌라도는 이 말을 하고, 다시 유대 사람들에게로 나아와서 말하였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소. 유월절에는 내가 여러분에게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관례가 있소. 그러니 유대 사람들의 왕을 놓아주는 것이 어떻겠소?"

  그들은 다시 큰 소리로 외쳤다.
  "그 사람이 아니오. 바라바를 놓아주시오" 하고 외쳤다. 바라바는 혁명가였다.

  그는 예수를 풀어주려고 합니다. 예수는 이상한 사람이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사람들은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이 지저분한 로마 군사령부까지 예수를 끌고 온 것은, 반드시 이 거짓 예언자, 거짓 출애굽을 말하는 거짓 왕을 죽여야겠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보다야 저 로마에 대항하는 혁명가 바라바가 멋있습니다. 로마를 사랑하라고 말하고, 로마가 적이 아니라는 저 사람은 꼭 죽여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빌라도는 이 사람들을 어떻게든 얼러서 돌려보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때리기도 하고, 앞에서 조롱하는 연기도 해보고, 죽이는 것만은 피하고 싶어 합니다. 빌라도 그는 그저 평범한 사람입니다. 잘못이 없는 사람이 죽는 것을 막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정말 완고했습니다.

  그 때에 빌라도는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으로 쳤다. 병정들은 가시나무로 왕관을 엮어서 예수의 머리에 씌우고, 자색 옷을 입힌 뒤에, 예수 앞으로 나와서 "유대인의 왕 만세!" 하고 소리치고, 손바닥으로 얼굴을 때렸다. 그 때에 빌라도가 다시 바깥으로 나와서, 유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내가 그 사람을 당신들 앞에 데려 오겠소.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나는 당신들이 그것을 알아주기를 바라오."

  예수가 가시관을 쓰시고, 자색 옷을 입으신 채로 나오시니, 빌라도가 그들에게 "보시오, 이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대제사장들과 경비병들이 예수를 보고 외쳤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러자 빌라도는 그들에게 말했다.
  "당신들이 이 사람을 데려다가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했소."

 
  빌라도는 끝내 예수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습니다. 당연한 것이, 오히려 십자가에 매달려야 하는 사람들은 예수를 끌고 온 저 유대인들입니다. 십자가는 로마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죽이는 로마의 방식인데, 예수는 로마에 대항한 일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를 질 이유가 없습니다. 오히려, 로마와 싸우자는 저 사람들이야 말로 로마가 십자가형을 고안한 이유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를 죽일 생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유대인들은 이제 최후의 카드를 꺼내듭니다.

  유대 사람들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토라가 있는데 그 토라를 따르면 그는 마땅히 죽어야 합니다. 그가 자기를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빌라도를 시껍하게 만드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당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로마 황제를 가리키는 말이었거든요. 그래서 동전에도 써있습니다. 로마는 여러 나라를 정복하면서 단 하나의 조건을 요구했습니다. '너희들이 뭘 하든 신경 안쓸게. 그러나 단 하나, 황제를 숭배해. 그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정해.' 이것이 로마가 다른 민족들을 지배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래서 로마가 지배하는 곳에는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으로 거래하고, 황제의 늠름한 모습을 자랑하는 석상들이 즐비했습니다. 로마 황제가 신의 아들이기 때문에, 오직 로마 황제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로마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날마다 전쟁을 치르면서도, 신의 아들이 우리 편이라는 생각에 든든했습니다. 언젠가는 신의 아들이 평화를 가져다 줄 것을 믿고서, 로마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대인들은, 바로 저 예수가 로마 황제에게 반역하고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했다고 말하는 중입니다. 이 말에 빌라도가 깜짝 놀랐습니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두려워서 다시 군사령부 안으로 들어가서 예수께 물었다.
  "당신은 어디서 왔소?"

  아마 이 말은 '니 뭐꼬?' 정도가 아닐까요? '너 어쩌려고 그런 엄청난 말을 했어? 니가 진짜 그런 말했으면, 나도 널 못지켜줘.' 뭐 이런 늬앙스였을까요? 아마 정말 예수가 딱하고 걱정된다는 말투로 이런 말들을 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예수께서는 그에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빌라도가 예수께 말하였다.
  "나에게 말을 하지 않을 작정이오? 나에게는 당신을 놓아줄 권한도 있고, 십자가에 처형할 권한도 있다는 것을 모르시오?"

  '제발 아니라고 말해. 아니라고 하면 내가 저 유대놈들 어떻게든 구슬려서 보낼테니까 아니라고해. 그럼 너 살 수 있어!' 빌라도가 예수를 보며 답답해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해괴한 주장을 빨리 철회하라고, 그래야 내가 널 살려줄 수 있다고 예수를 설득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위에서 주지 않으셨더라면, 당신에게는 나를 어찌할 아무런 권한도 없을 것이오. 그러므로 나를 당신에게 넘겨준 사람의 죄는 더 크다 할 것이오."

  이 말을 듣고서,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힘썼다.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권한이 빌라도에게 있습니다. 그런데 이 권한은 사실 모두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에게도 주어졌고, 우리에게도 주어졌고, 여기 빌라도에게도 주어졌고, 심지어 가롯 유다에게도 주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이 엄청난 권한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선택의 순간 속에서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스라엘에게는 포로라는 독특한 상황 속에서 그러한 권한이 직접적으로 주어지지는 않았습니다만, 생각으로는 늘상 이 권한을 행사하고 있었고, 죽음이라는 결정적 권한을 제외한, 사람을 죽게하는 간접적인 권한 행사를 늘상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욥의 목숨을 제외한 모든 것을 해도 좋다고 위임받은 사탄처럼 말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살릴수도 있고, 죽일수도 있는 이 상황 속에서 죽이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 있습니다. 즉 생명을 둘러싸고 질식시키는 것을 선택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죄는 큽니다. 그리고 지금 빌라도에게도 이 선택이 놓였습니다. 빌라도에게는 권한이 있습니다. 그가 거절하면, 십자가 처형은 벌어지지 않습니다.
  빌라도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이 말을 듣고서 죽이는 권한을 선택할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너에게 살릴 수 있는 권한도 있고, 죽일수 있는 권한도 있다. 그런데 내가 너에게 온 것은, 누군가가 죽이는 권한을 썼기 때문이다.' 이 말에 빌라도는 예수를 놓아주려고 합니다. 살리는 권한을 쓰려고 합니다.

  그러나 유대 사람들은 외쳤다.
  "이 사람을 놓아주면, 총독님은 로마 황제 폐하의 친구가 아닙니다. 자기를 가리켜서 왕이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황제 폐하를 반역하는 자입니다" 하고 외쳤다. 빌라도는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데리고 나와서, 리토스트론이라고 부르는 재판석에 앉았다. (리토스트론은 히브리 말로 가바다인데, '돌을 박은 자리'라는 뜻이다.) 그 날은 유월절 준비일이고, 때는 낮 열두 시쯤이었다. 빌라도가 유대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보시오, 당신들의 왕이오."

  그들이 외쳤다.
  "없애 버리시오! 없애 버리시오! 그를 십자가에 못박으시오!"

  빌라도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으란 말이오?"

  대제사장들이 대답하였다.
  "우리에게는 황제 폐하 밖에는 왕이 없습니다."

  이리하여 이제 빌라도는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고 그들에게 넘겨주었다.

  (초록색 밑줄은 빌라도의 태도 변화를 보여주는 문장들입니다. 무엇이 그의 태도를 바꾸어 놓은 것입니까?)


  그런데 우리는 살리는 권한을 끝까지 사용하지 않는 평범한 한 사람을 봅니다. 그가 살리는 권한을 그만 쓰기로 한 지점이 어디인지 보시기 바랍니다. 평범한 남자, 예수를 살려보내려고 한 남자는, 유대인들의 외침에 그 마음을 바꿉니다. 유대인들이 "이 사람을 놓아주면, 당신은 로마 황제의 친구가 아닙니다." 만일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주장하는 이 잘못없는 연약한 남자를 놓아주면, 정말 하나님의 아들인 로마 황제의 비위를 상하게 할 수도 있고, 그 결과 로마 총독은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게다가 로마 황제는 평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로마가 정복한 지역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했습니다. 만약 이 사람을 안죽여서 유대인들이 폭동이라도 일으켰다간, 빌라도는 뒷감당을 하기 어려울 것을 짐작했습니다. 총독에서 짤릴 수도 있고, 짤리면 로마에서 추방당할지도 모르고, 아직 먹여 살려야 하는 처자식들도 있고. 빌라도는 그래서 이제 이 복잡한 고민을 그만하기로 합니다. 그래, 이 사람 하나 죽으면 문제가 없는데 뭐. 그래서 이 평범한 빌라도의 자연스러운 선택은, 죄 없는 사람을 사지로 몰아세웁니다. 이렇듯 살리는 권한을 쓰기를 그치면, 누군가를 죽일 수 밖에 없습니다.(우리가 토라 이야기했을 때 배웠던 내용이 떠오르지 않습니까? 다스림, 그것은 생명을 생명답게 하는 것입니다. 살리는 권한 쓰기를 끊임없이, 멈춤없이 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이스라엘, 그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대제사장은 한술 더떠서, "우리에게는 로마 황제 폐하만이 왕입니다." 이러고 있습니다. 이 지독한 아이러니. 살리는 권한을 끝까지 사용하지 않은 이 평범한 남자 빌라도와, 하나님이 아닌 로마 황제가 왕이라고 외치는 유대인들의 합작으로, 이제 죄 없는 한 사람이 죽게 생겼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넘겨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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