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집트에서의 마지막 날 밤
#1
그 날 저녁이었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질 때쯤 할아버지는 불을 피우고는 가족들을 모두 불러 모았다.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늘이 이 집에서 보내는 마지말 날 밤이야."
#2
내 이름은 슈무엘이다. 내가 서 있는 여기는 드넓은 대지의 중심, 빛나는 태양의 나라. 나는 영광스러운 파라오의 충직한 종이다. 나는 요즘 흙벽돌을 구우며, 파라오를 위한 곡식창고를 짓고 있다. 고된 노동에 대해서 불평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집트를 덮고 있는 하늘은 푸르고, 저 유유히 흐르는 나일강은 때가 되면 넘치고, 때가 되면 가라앉아 파라오의 곡식에 물을 댄다. 죽음을 모르는 개구리들이 나일강 가에서 평화로이 운다. 세상 전체가 파라오를 위하거늘, 하물며 우리야! 날마다 흙벽돌을 200개씩 굽는 것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허나 우리의 아버지도 그렇게 사셨고, 할아버지도, 그리고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우리는 영광스러운 파라오의 집짓기에 열심을 냈다. 어른들은 이러한 삶이 괴롭다며 울부짖고, 여인들은 모일 때마다 눈물을 지으며 신세를 한탄했지만, 나는 부질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열심을 내어서 파라오의 관리들의 눈 밖에 나지 않는 것이 좋겠다.
그냥 나는 벽돌을 만들고 집에 돌아와 '몽실이'와 노는게 좋다. 몽실이는 내가 기르는 새끼 양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나랑같이 있어서, 나와 아주 친하다. 벽돌 만드는 일이 힘들어도 몽실이 풀 먹이는 일을 잊은 적이 없다. 몽실이는 내 하나 뿐인 친구.
#3
그런데 어느 날 부터 사람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소문이 돌기를, 예전에 파라오의 하인을 때려 죽였던 공주의 아들이 돌아왔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파라오의 나라로부터 떠날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나는 이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정신나간 생각이라 생각했다. 우주 전체가 태양의 아들인 파라오를 섬기는데, 우리가 어디로 도망갈 수 있을까. 파라오를 벗어나서 우리가 어디로 갈 수 있지? 나는 이집트 너머를 상상해본 적이 없다. 적어도 분명한 것은, 하늘에는 언제나 태양신이 떠있고, 그 태양신의 후손이 살고 있는 여기가 땅의 중심이라는 것이다. 나일강은 그 땅 한가운데를 지나며 우리에게 알곡을 영글게 해준다. 도망갔다간 지금보다 더 비참하게 살다가 짐승들의 먹이가 될 것이다. 저 모세의 입을 막아야 한다! 어른들을 진정시켜야 한다! 너무 힘든 나머지 현실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파라오를 떠난다는 생각을 하다니!
#4
그런데 최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그 시작은 나일 강이 핏빛으로 변했던 날부터였다. 물고기들이 둥둥 수면 위로 떠올랐고, 강가에서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파라오의 풍요로운 곡식들은 메뚜기 떼가 덮쳐서 몽땅 먹어버렸고, 우리가 존경하던 개구리들이 너무 많아져서 개구리를 밟지 않고는 걷지도 못할 만큼 많아지는 일도 있었다. 신발 속에서도 찬장 속에서도 온통 개구리였다. 이집트를 덮고 있던 하늘에서는 주먹만한 우박을 쏟아냈다. 나는 밤마다 잠이 오지 않았고,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지? 왜 파라오를 섬기던 자연만물들이 왜 갑자기 파라오를 공격하기 시작한거지?”
하지만 나는 그 때까지도 우리가 이집트를 떠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5
나는 할아버지를 좋아한다. 할아버지는 힘들게 일하고 돌아와서도 나를 언제나 번쩍 안아주셨다. 할아버지는 종종 우리가 원래부터 노예는 아니었을 것이라 말해주셨다. 그러나 워낙 옛날 일이라 그런지 할아버지도 잘 알고서 말씀하시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모세라는 사람이 나타난 이후, 할아버지는 그의 이야기를 잘 귀담아 들으셨다. 말 수가 없는 분이신데, 틈만 나면 모세가 파라오 앞에서 했다는 얘기들을 가족들에게 전해주셨다. 모세와 그 형이라고 하는 아론은 파라오 앞에서 하나님이 우리 히브리 사람들을 데려가실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이 정말 미쳤지! 파라오는 내 예상대로 그들의 말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이상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자 사람들도 술렁이기 시작했다. 모세를 미치광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점점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마도 모세가 만났다는 하나님이, 파라오보다 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들을, 입 밖에 꺼내지는 않았지만 다들 하고 있는 눈치였다.
#7
이런 의심이 확신이 되는 순간은 바로 그 날 밤이었다. 할아버지는 엄마에게 음식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마당에 모닥불을 피워놓으셨다. 나는 고기를 구워먹나보다 하고서 모닥불 가에 앉으려고 하는데, 할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치시며, “앉아있을 새가 없어! 어서 집떠날 채비를 하고 오너라!” 라고 말씀하셨다. 온 가족들이 외출할 준비를 하고, 먼 길 떠날 사람처럼 손엔 지팡이를 들고서 모였다.
엄마가 음식을 가져오셨다. 뭔가 맛있는 것을 먹나 했더니, 정말 입에 넣기도 힘들만큼 쓰디쓴 나물을 만들어오셨다. 그리고 하나도 부풀지 않은 납작한 빵도 있었다. 그리고 내가 너무 소스라치게 놀란 것은, 내가 기르던 몽실이가 축 처진 고깃덩이가 되어 나타난 것이었다! 나는 울고 불며 살려내라고 소리쳤지만, 할아버지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이 쓴 나물은 우리가 이 곳에서 고생했던 것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야. 그리고 여기 납짝한 빵은 우리가 죄없이 깨끗하게 살기로 결심하는 빵이다. 오늘 밤에 이 이집트의 모든 처음 난 것들은 죽임 당할거야. 그런데 여기 몽실이가 우리 대신해서 죽은거야. 어서 고기를 먹고 피는 문설주와 문지방에 바르자. 오늘이 이 집에서 보내는 마지말 날 밤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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