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끝자락에 선 교회2
- 누가복음 5:12~16
0.
우리는 지금, 교회와 종말에 대해서 배우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도에서 살펴보면, 우리는 지금 가지들의 모임에 대해서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가지들의 삶과 끝이 어떠할지에 대해 말씀을 통해 찾아보고 있는 것입니다. 저번 주에 배웠던 것부터 다시 확인해봅시다.
교회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교회의 두 가지 의미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첫째는, 불러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람들’이지, 장소 아닙니다. 교회는 장소가 아닙니다. 우리가 “교회간다”고 말하지만, 우리가 모이는 이 장소는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 안의 사람들. 그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 불러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불러냄을 받아 어떻게 되었습니까? 왕께 속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왕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을 가리켜 교회라 부릅니다.
우리는 이 교회를 이해하기 위해서, 비유를 하나 살펴봤습니다. 그것은 몸, 그것도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비유였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즉, 불러냄을 받아 왕께 속한 사람들은 모두 하나의 몸.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고 있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몸의 부분부분입니다. 이 부분부분들을 가리켜 ‘지체(指體)’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오늘은 이 한 몸, 교회에 대한 이야기. 본격적으로 시작해봅시다.
1. 한센병
누가복음 5:12~16
예수께서 어떤 동네에 계실 때에, 온 몸에 한센병이 든 사람이 찾아 왔다.
그는 예수를 보고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청하였다.
"주님,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손을 내밀어서, 그에게 대시고
"그렇게 해주마. 깨끗하게 되어라"
하고 말씀하시니, 곧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갔다.
예수께서 그 사람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명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된 것에 대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서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아라."
그러나 예수의 소문이 더욱더 퍼지니,
큰 무리가 그의 말씀도 듣고, 또 자기들의 병도 고치고자 하여 모여들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외딴 데로 물러가서 기도하셨다.
한센병이라는 병이 있습니다. 나병이라고도 부릅니다. 흔히 문둥병이라고도 합니다. 옛날에는 아이가 울면 어른들은, “너 문둥이가 잡아간다”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또 사람을 깔보고 말할 때, "이 문디 자식"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새로 개정되는 <성경>에서는 이제 이 단어를 문둥병이라 번역하지 않습니다. 나병균을 처음 발견한 ‘한센’이라는 사람의 이름을 붙여 '한센병'이라 부릅니다. 우리 역시 한센병이라 부르겠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문둥병이라 써있으면, 그 말을 한센병이라 고쳐쓰시기 바랍니다. 바른 단어를 쓰는 것이 병에 걸려 몸과 마음이 힘든 이들을 위하는 첫걸음이니까요.
어쨋든, 이 병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 해봅시다. 이 병에 감염되면 생체조직이 썪어갑니다. 처음에는 피부병처럼 시작하지만, 결국 피부가 죽고, 그 안의 신경마저도 죽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세포조직들은 죽어나가고, 나중에는 그 부위가 떨어져 나갑니다. 코에 이 병이 생겼다면 코는 떨어져 나가고, 팔에 생겼다면 팔도 떨어져 나갑니다. 왜냐하면 이 부위에는 더 이상 피가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점점 고인 피들은 썪어갑니다. 신경 조직도 죽었기 때문에 아무런 감각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렇게 감염된 부위가 몸의 전체에서 점점 떨어져 나갑니다. 그렇게 떨어져 나간 부분은 이제 몸의 전체와 아무 상관이 없어집니다.
이러한 끔찍한 병, 한센병에 걸린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예수님 당시만 해도, 한센병은 하나님의 저주라 불리울 정도로 사람들이 경계하는 병이였습니다. 전염될까봐, 한센병 걸린 사람들은 마을 밖 멀리 떨어진 곳으로 쫓겨나 병 걸린 사람들끼리 모여 살았습니다.
한 번 상상해봅시다. 어느 유대 지방에 건강하게 살고 있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팔꿈치와 발꿈치가 가렵기 시작했습니다. 별 것 아니겠거니 하면서 몇번 북북 긁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점점 그 부위가 넓어지기 시작하더니, 피부에서 악취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피부를 긁는데, 아무런 느낌도 나지 않고 살점이 뚝뚝 떨어져 나갔습니다. 이 일을 감추려고 긴 옷을 입고서 사람들을 피해다닙니다. 그 와중에도 점점 피부는 점점 썪어가고 그 부위는 넓어집니다. 결국은 이 청년이 한센병 걸렸다는 사실이 마을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이 멀쩡하게 살던 청년은 한순간 마을에서 쫓겨나 가족도 친구도 볼 수 없는 곳으로 추방되었습니다. 그 창창했던 청년은 남은 인생을 한센병에 걸린 사람들과 함께 보내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청년이 예수를 찾아온 것입니다. 그리고는 말합니다.
"주님, 하고자 하시면, 나를 깨끗하게 해주실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가 나았습니다. 피가 흐르지 않던 그의 환부에는 다시 맑은 피가 흐르고, 썪어가던 살에는 다시 새 살이 돋아났습니다. 그리고 에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하게 된 것에 대하여 모세가 명한 대로 예물을 드려서 사람들에게 증거로 삼아라."
2. 피가 닿지 않는 그 부분
우리들은 계속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냐 하면, '부르심을 받아 왕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은 한 몸을 이룹니다. 그 사람들이 한 몸, 교회입니다. 우리를 들여다 봅시다. 우리는 그 ‘사람들’입니까? 하나의 몸, 그리스도의 몸입니까? 만약에 이 하나의 몸 어느 부분에 피가 공급되지 않고, 신경 조직이 죽어, 이제 아픔을 느끼지 못할 만큼 썪어가는데도, 우리 몸의 부분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아파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몸, 즉 교회라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혹시 이 병을 치유해야할 그 어떠한 필요도 느끼지 못할만큼 우리는 무감각해졌는가를 우리 자신들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들’은 ‘그 사람들’ 맞습니까? 다시 물으면 이렇습니다. 우리들은 '교회'입니까?
교회는 '부르심을 받아 왕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왕께 속한 사람들은, 왕의 뜻대로 삽니다. 우리의 왕은 누구십니까? 오늘도 고백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만이 우리의 왕이십니다. 그럼 그 왕의 뜻은 무엇입니까? 다른 거 없습니다. 몸 구석구석에 피가 흐르는 것이 왕의 뜻입니다. 피는 곧 생명이라, 몸의 모든 부분이 그 피를 받아, 어느 한 부분도 썩지 않고, 모두가 사람다운 사람, 교회다운 교회로 살아가는 일입니다. 이것이 왕의 뜻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고, 왕께 속했습니다. '형제 자매를 사랑하라'는 <성경>의 말씀은 우리가 그 피로 하나되라는 소리입니다.
저는 여러 교회를 다녀봤습니다. 때로는 학생으로, 때로는 교사로, 때로는 전도사로, 여러 교회를 다녀보았는데, 모든 교회들 마다 사정은 비슷합니다. 어쩌면 교회가 아니라 모든 사람 사는 곳이 그럴 것입니다. 어딜가나 있습니다. 끼리끼리. 코끼리는 없어도 끼리끼리는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끼리 어울려서, 뭉쳐다니고 놀지만, 정작 그 사람들은 자기 사람들 외에 다른 사람들을 돌아보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뭘 잘못했느냐고 되물을지 모르지만, 분명합니다. 교회가 끼리끼리 어울리는 동안 한 몸된 교회의 부분부분들이 썪어 갑니다. 피는 막혀서 흐르지 않고, 우리는 소중한 우리의 몸을 잃습니다. 그렇게 공동체는 한센병에 신음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몸 전체가 썪어갑니다.
저도 우리 공동체에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바라는 것은 우리 공동체의 건강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그들을 배려하며, 그들을 사랑할 수 있는 넉넉함이 있으면, 그 넉넉함 안으로 자연스레 사람들은 찾아올 것입니다. 사랑이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으니까요. 다만 우리가 한센병 환자와 같은 공동체라면, 이 공동체에 들어오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누가 병자의 지체가 되고 싶겠습니까?
3. 우리는 그리스도 몸의 혈관들입니다
고린도전서12:20
지체는 여럿이지만, 몸은 하나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고 그 몸은 하나입니다. 그런데, 만약 누군가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때문에, 죄책과 오염에서 건짐 받았다고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이 한 몸,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끼리끼리를 고집하고 있다면, 말하기 너무나 안타깝지만, 그 사람이 바로 한센병을 일으키는 병원균입니다. 한센병 환자가 사람답게 살지 못하듯, 그 사람 때문에 교회는 교회답지 못하게 됩니다. 이것은 누구는 잘하고, 누구는 못했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왕께 속하는 부르심을 받은 이 귀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몸의 혈관들입니다. 이 사람들을 통해 이 한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피를 공급받습니다. 그 분의 말씀, 그 분의 위로, 그 분의 긍휼, 그 분의 사랑을 공급받습니다. 지금 제 손 끝까지 피가 흐르듯, 살이 있는 곳 어디든지 피가 흘러야 합니다. 그래야 살이 썪지 않습니다. 즉, 서로에게 예수의 것을 공급하는 일. 이것은 예수 믿는 우리 모두가 해야 할 바로 일인 것입니다. 우리가 배웠던 말로 하자면, 열매를 맺는 가지의 일입니다. 바로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끼리끼리가 막습니다. 초대교회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과 유대인이 아닌 사람들로 편을 나눠 싸운 일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에베소서 2:13,14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분의 피로 하나님께 가까워졌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이
양쪽으로 갈라져 있는 것을 하나로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셔서,
원수 된 것을 없애시고...
여러분도 예수님을 몰랐잖아요. 그런데 여러분이 예수를 알게 되고, 그 분을 믿게 되었다면, 그것은 필경 그 분께서 먼저 당신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을 찾을 수 없으나, 그 타락한 사람과 하나님의 관계회복이 이루어졌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먼저 뜻하신 것이지, 사람이 먼저 바란 것이 아닙니다. 그럼 멀리 떨어진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다가오셨다면, 멀리 떨어진 저 사람에게는 누가 다가가야겠습니까? 바로 당신! 그리스도로 인해 평화가 찾아왔으니, 이 예수 공동체, 그리스도 공동체 안에서도 평화입니다. 그 분은 유대 사람과 이방 사람 사이를 가르는 담을 자기 몸으로 허무신 분이십니다. 당신은 담을 만드는 사람입니까? 담을 허무는 사람입니까?
사람과 사람 사이를 막는 담을 허물고, 서로에게 예수의 피를 보내십시다. 이제 끼리끼리 노는 것을 그치고, 우리가 고백하는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쏟읍시다. 교회가 교회되지 못한다면, 그 책임은 숨받은 사람들에게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 있겠습니까? 당연히 숨받은 사람들에게 있습니다. 숨받은 사람들만이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숨 받은 사람들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숨 받은 사람들만이 다른 사람을 마음 다해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거룩한 숨은 예수의 힘입니다. 못할 리 없습니다. 분명합니다. 숨 받은 사람은 예수께 힘입어 삽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숨 받은 사람들은 공동체가 한센병에 걸리는 것을 막아내는 면역력 입니다. 의인 열 사람만 있어도 도시가 멸망하지 않듯, 다른 사람을 위해서 죽어지려는 가지들 때문에 교회 안에는 피가 순환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모자릅니다. 겨우겨우 흐르는 피는 사람을 건강하게 하지 못합니다. 생명의 순환은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예수께 가십시다. 예수께로 가면, 우리는 이 끼리끼리의 한센병을 고칠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모인 30명. 저는 믿습니다. 또 기대합니다. 우리가 모두 ‘나’라는 감옥을 깨치고 나올 때, 그것이 얼마나 위대한 일이 될지,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의 그 위대한 사랑이 다른 사람과 사람을 거쳐 흘러갈 때, 그것이 얼마나 우리 안에 넘치게 될 지, 감히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그 보배로운 피의 강물이 이 공동체를 덮고, 서둔동을 덮습니다.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아 저 사람들 진짜구나', '저 사람들 진짜 사랑하는 구나', '저 사람들을 보니 하나님이 진짜 계시구나!' 이 고백을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듣고 싶습니다. 바로 저를 통해서, 그리고 여러분들을 통해서!
4. 오늘의 예배
오늘의 예배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도대체 무슨 의미가?! 오늘 우리는 존귀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발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마치 한센병 환자처럼 말입니다. 왜요? 그것은 우리가 바로, 한센병 환자이기 때문입니다. 그 한센병 공동체가 예수님을 찾습니다. 왜 찾습니까? 병이 낫고 싶어서요! 이 공동체 안에서 서로 사랑하지 않는 관계와 관계들은 곧 막히고 끊어진 혈관들이요. 우리 안에서 말라버리고 떨어져 나가는 살들은 바로 우리 공동체 식구들입니다. 예수님, 우리로 하여금 하나 될 수 없게 하는 이 한센병을 치료해주세요! 우리 모두가 이것을 갈망하길 원합니다. 우리가 이것을 바라고 예수님을 찾을 때, 예수님께서 무어라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그 깨끗함. 이것은 비누칠을 한다고 얻어지는 것도 아니고, 옥시크린을 써서 끝나는 일도 아닙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깨끗함. 그것은 한 몸의 깨끗함이요, 그것은 썩는 부분이 없는 완전한 몸에 대한 갈망입니다. 우리가 서로를 돌아보아 사랑할 때, 막혔던 피가 다시 흐르고, 썪었던 살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다운 교회가 될 것입니다. 불러냄을 받아 왕께 속한 사람들의 이야기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것입니다. 그 때 부터 시작입니다. 하나님과 우리가 함께 쓰는 사랑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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