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김인환 총장의 부고 소식을 들었다. 내가 총신대학교 재학 시절 총장이었던 분이었고, 이후 학교가 시끄러울 때는 인자한 얼굴의 김인환 총장과 위트있는 박희석 부총장의 라인업이 그립기도 했다. 내가 재단 이사장과 총장을 향해 학생 운동을 벌이고 있을 때, 고인과 일화가 있었다. 구약학 수업이었는데, <God is a worror>라는 책을 원문으로 강독하는 시간이었다. 고인은 학교를 위해 싸우는 나를 기특하다고 하며 앞으로의 미래 계획을 물었다. 나는 당시 내가 "NC"라고 불렀던 건물 없는 교회 운동과, 번역으로 교계와 학계를 연결하는 일을 하겠다고 했다. 그걸로 먹고 살 수 있겠느냐는 다음 물음에 후원을 받아 살겠다고 답했다.
그때 고인은 화를 내며 내게 욕을 했다. 이유는 자신이 일을 해야지 빌어먹는 삶을 살아선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어린 녀석이 벌써부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며 수업 시간 내내 욕을 먹었다. 선생님들에게 욕 먹는 것이야 학창 시절 내내 겪던 것이었기에 심리적인 데미지는 없었고, 오히려 욕 먹는 와중에도 키득거리며 수업 이후에는 '내가 인간 쓰레기'라며 자조적인 농담을 던졌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싶다. 당시 철부지는 먹고 사는 문제에 별 걱정이 없었고, 내가 하는 일의 가치를 사람들이 알아봐주기만 하면 될 것이라는 자신감에 차있었고, 그것이 벌이든 후원이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후원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특별하지 않은 세상 속에서, 후원하겠다는 말들을 한사코 거절하고 거절하고 있는 나를 본다면, 고인은 뭐라 말씀하실까. 내가 지키려고 하는 것은 고인이 나를 걱정하던 이유와 맞닿아있을까.
날마다 일어나 죽음의 때를 벗겨내야 하는 주체로서,
그러나 누군가의 죽음을 통해 생존할 수 밖에 없는 피조물로서.
죽음이 내가 아니도록, 그러나 죽음을 늘 내 곁에 두고서.
그래서 지울 수 없는 미안함으로, 자신감 따윌 바스라뜨리고.
수업 끝난 이후 교수실로 불려갔다. 나에게 욕을 했던 것이 미안했던지 사과하고 나에게 따뜻한 말들을 해주었던 고인을 기억한다. 그리고 당시 학교 상황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물론 그건 고인 입장에서의 피아식별이었지만, 학교를 걱정하는 마음은 피차 마찬가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BGM : Lukas Graham - You're not t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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