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레인 크레이그(William Lain Craig)의 <Resonable Faith> 3장을 번역을 마쳤습니다. 윤문해가면서 날마다 조금씩 올리려고 합니다. 문제가 되면 내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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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하나님 계심(1)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조건만 성립되면, 인간이 가진 곤경을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띠라서 '하나님 존재'의 문제는 오늘날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물음이 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물음이 실존적으로는 무척 중요하다는 것은 인정할지 몰라도 이 합리적인 주장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에는 고개를 가로 젓습니다. 관습적으로 하나님 계심을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며, 따라서 만일 하나님을 믿고자 한다면, "믿음으로써"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지난 50년에 걸쳐, 괄목할만한 변화가 일어났으니 바로 자연신학입니다. 자연신학은 신학의 한 분야로서, 성경이나 계시없이 하나님 계시다는 사실을 신뢰할 수 있도록 보증하려는 학문입니다. 한 세대 전과는 달리, 오늘날 자연신학은 학계에서 가장 생기가 넘치는 분야가 되었습니다. 

  1966년 4월 8일. 타임지에서는 검은 바탕에 빨간 세 단어가 새겨진 드라마틱한 표지를 내걸었습니다. 거기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죽었는가?(God is dead?)" 이것은 하나님이 죽었다고 선언한 미국 신학자들의 최근 동향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그러나 그 신학자들이 하나님의 사망기사를 내걸었을 때, 새내기 철학자들은 하나님의 생존을 발견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죽음'이 이슈가 되고나서 몇 년이 지나고서, 타임지는 이번엔 비슷한 검은 바탕 빨간 테두리의 커버 스토리에, 이런 물음을 내걸었습니다. "하나님이 삶으로 돌아오시는가?(Is God Coming Back to Life?)" 1960년대 신학자들이 분명 하나님의 부고 기사를 냈음에도! 1970년대 내내 종교철학은 계속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 타임지에서는 또 다른 주요 기사를 "하나님을 위한 변론의 부상(Modernizing The Case for God)"라는 제목으로 내걸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계심에 관한 전통적인 주장을 다시금 새로이 주장하는 동시대 철학자들의 동향을 묘사한 말이었습니다. 타임지는 놀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불과 20년전만 하더라도 어느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사고와 주장을 가진 대단한 혁명이 일어났다. 하나님은 귀환을 준비하고 있었다. 무척 흥미롭게도, 이것은 신학자들이나 일반적인 신자들 사이에서 벌어진 것이 아니라 철학학계에서 벌어젔다. 허나 철학학계란 전능자에 대한 합의된 의견 일치가 오랫동안 금기시 되었던 곳 아닌가!
              

  이 기사에서 로데릭 키숄름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습니다. '무신론이 한 세대 전에 너무 영향력이 막강했다는 사실은, 당시 명민한 철학자들이 무신론자였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많은 명민한 철학자들이 유신론자들이고, 유신론이 형식상 하자가 있다는 신념에 대해서 거칠고도 치밀한 지적작업으로 맞서고 있다.'

  결과적으로, 앵글로-아메리칸 철학의 한 축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2001년 가을, 종교와 무관한 저널인 <필로>는 무신론 철학자가 쓴 아티클을 게재했는데, 그는 1960년대 이후 철학학계에 종교적인 담론이 들어온 것에 대해서 슬퍼하며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유신론의 현실주의판으로 보이는 자연주의자들은 플랑팅가의 저술에 큰 영향을 받고선 철학학계를 죄다 점령하기 시작했다. 오늘날 거의 1/4에서 1/3의 철학 교수들이 유신론자고, 대부분 정통 기독교인들이다...다른 분야에서 유신론은 그들의 유신론적 신념을 다른 학문으로부터 분리해내려고 시도하고, 그들은 좀처럼 추론하려거나 세속적 작업에서 유신론을 주장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했다간, 그들은 학문적으로 자살해버린 것과 다름 없으며, 혹은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의 기사들은 금세 거절당할 것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철학에서는, 하룻밤새에, 유신론에 대한 주장이 "학문적으로 존경받을 만한 것"이 되었다. 오늘날 학계에 들어온 가장 지적이고 재능있는 유신론자들의 명단이 학계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이름들이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결론내렸다. "하나님은 적어도 학계에서는 '죽지 않았다', 하나님은 1960년대 후반에 다시금 삶으로 돌아왔고, 지금도 살아있으며, 지속적인 학문적 토대, 즉 철학 분야들에서 잘 살고 있다."

  이것이 그의 눈 앞에서 벌어진 앵글로-아메리칸 철학계의 변화에 대한 저명한 무신론 철학자의 증언입니다. 저는 그가 1/3, 1/4 운운할 때 이것이 과장이라 생각했습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하나님 계심'에 대한 다양한 전통적인 주장들은 유명하고 또한 지적인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섬세하게 학문적으로 다듬어진 출판문들을 출간하며 하나님 계심에 관한 주장들을 변호합니다. 전문성을 가진 철학 저널과 철학계 교수들을 만날 수 있는 신문 속에서 말입니다.

  오늘날 무신론자들은 반격을 제대로 맞았습니다. 무슬림 지하드들의 공격에 의한 9/11의 충격 속에서, 세속주의자들은 거의 복음주의적 열정으로 미국과 유럽 양쪽에서 종교적인 신념을 격하시키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을 이슬람 테러리스트와 한통속으로 몰아세웠습니다. 리차드 도킨스, 데니얼 데넷, 햄 해리슨같은 대중적인 저술가들은 무신론계에서 가장 많은 책이 팔리는 저자들이 되었고, 사회가 종교적 신념을 경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중적인 저술 뒤에는 유신론적 주장에 대한 더 본질적인 비판이 있습니다. J. 호와드 소벨의 <논리와 유신론>이나 마이클 마틴의 <무신론과의 동행>같은 책들이 이에 속합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시대 미국이 가지고 있는 마음과 정신의 거대한 투쟁의 목격자입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에게 이 문제는 중요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역사적 배경
  플라톤 시절부터, 신학자들과 철학자들은 하나님을 믿는 이성적 근거를 제시하는데 노력해왔습니다. 이 장에서는 우리는 다양한 사상가들에 의해 고안된 전통적인 유신론적 주장에 대해서 간략하게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존재론적 논증
  존재론적 논증은 하나님의 개념으로부터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시도합니다. 즉 만일 하나님이 이해가능하다면 하나님은 실제로 존재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안셀름이 이러한 주장을 공식화했고, 스코투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라이프니트등이 이 논증을 변호했습니다. 현대에와서는 놀만 말콤, 찰스 할트숀, 그리고 알빈 플란팅가등이 있습니다. 우리는 안셀름의 주장을 살펴볼 것입니다.

  안셀름(1033-1109)은 단순한 하나의 논증을 찾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기독교 교리에서 묘사하고 있는 초월적 속성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증명하는 논증 말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거의 포기하려고 했을 때, 안셀름은 다음의 추론에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해가능한 존재들 중 가장 큰 분이다. 이 정의는 참이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큰 존재를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하나님보다 더 큰 것을 생각할 수 없다. 현실에서 존재하는 것이 단순히 마음 속에 있는 것보다 더 크다. 안셀름은 그림을 예로 드는데요, 예술가의 그림 아이디어와 현실에 존재하는 그림 그 자체 둘 중에서 어느게 더 클까요? 명백히 후자입니다. 왜냐하면 그림 그 자체는 예술가의 정신에도 존재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도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만일 하나님이 정신 영역에 계신다면, 그 때 하나님보다 더 큰 무언가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고, 즉 그의 존재는 정신에도 있고 현실에도 있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각할 수 있는 존재들 중 가장 큰 분 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정신에도 존재해야 하며, 또한 현실에도 존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계시다.

  안셀름은 이것에 또다른 방식을 덧붙였습니다. 다음과 같습니다.


  없다고 상상할 수 없는 존재는, 없다고 상상할 수 있는 존재보다 더 크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존재 중 가장 큰 분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음은 상상할 수 없는 것임에 분명하다.

  이 개념 안에서는 어떠한 모순도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틀림없이 존재한다.


  이 단순한 주장은 오늘날에도 뜨겁게 논쟁 중입니다.

우주론적 논증
  존재론적 논증과 달리, 우주론적 논증은 어떠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제 1원인 이나 충분한 설명이 있음을 추론하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습니다. 중세시대에 와서는 이슬람, 유대교 그리고 기독교 사상가들에 의해 발전했습니다. 이것은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이븐 시나, 알 가잘리, 이븐 루시드, 마이모니데스, 안셀름, 아퀴나스, 스코투스, 데카르트, 스피노자, 버클리, 로크, 라이프니츠에 의해 지지되었습니다. 우주론적 논증은 다른 논증들과 엮여있는데 대개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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