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레인 크레이그william lane craig, <Resonable Faith>에서 도킨스의 이론에 응수하는 부분을 번역했습니다.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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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이론
  설계 이론은 우주적 디자이너가 존재하고, 그 우주적 디자이너가 지적 생명체를 위한 우주의 최초 상태를 미세조정했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이 이론은 우주의 미세조정에 관한 인격적 설명으로 보충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설명은 정말 개연성이 없을까요? 설계 이론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종종 우주적 디자이너 자체는 설명되지 못한채 남아 있다고 불평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반대는 리차드 도킨스가 자신의 책인 '<만들어진 신>의 중심 논증'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의 논증을 그는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1) 인간 지성의 가장 큰 도전들 중 하나는 우주 안에 있는 그 복잡하고 개연성 없어보이는 설계의 나타남에 관해 설명하는 것이었다.

     2) 설계처럼 보이는 것을 실제 설계로 여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유혹이다.

     3) 그러나 그 유혹은 거짓이다. 왜냐하면 설계자 이론은 '누가 설계자를 설계 했느냐'는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4) 이에 대한 가장 기발하고 강력한 설명은 자연 선택의 다윈 진화론이다.

     5) 물리학은 우리가 가진 가장 뛰어난 가치에 대한 설명이다.

     6) 우리는 물리학으로 더 나은 설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포기해선 안 된다. 생물학에서 다윈주의를 발견한 것만큼, 물리학에서 강력한 설명을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의 확실히 없다.

  이 주장은 그의 무신론적 결론인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의 확실히 없다'가 저 위의 여섯 개의 진술을 통해 도출되는 결론이 아니라는 점에서 삐걱거립니다. 가령 우리가 각각의 진술이 참이고 정당하다고 인정한다 할찌라도 말입니다. 기껏해야 도출되는 전부는 '우리는 하나님의 존재를 우주의 설계의 나타남에 기초해서 추론하지 말아야 한다' 정도가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하나님의 존재와도 양립될 수 있고, 게다가 하나님 존재를 정당하게 믿는 것과도 양립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우주론적 논증, 존재론적 논증, 도덕적 논증에 기초해서 믿어야 합니다. 논증들에 기초하지 않은 우리의 믿음은 단지 종교적 경험이나 신적 계시에 기초한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요점은 하나님 존재에 대한 설계 논증을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이 안계시거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부당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도, 도킨스 논증의 몇몇 단계들은 그럴싸한 거짓입니다. 단계 (5)는 우주의 미세 조정을 암시하는데 그 미세조정은 우리 논증의 핵심입니다. 도킨스는 미세조정을 위한 설명의 방식에서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단계 (6)에서 표현된 희망은 자연주의자로서의 신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게다가 단계 (3)을 생각해보세요. 여기서의 도킨스의 주장은 설계를 우주의 복잡한 질서에 대한 가장 뛰어난 설명이라 추론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누가 설계자를 설계했느냐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응수에도 결함이 있습니다. 적어도 두 개의 내용들에서요. 먼저는, '가장 뛰어난 설명'을 인식하기 위해서 사람은 설명의 설명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가장 뛰어난 설명에 관한 과학철학의 기초적인 요점입니다. 만일 고고학자가 땅을 파다가 활머리와 손도끼 머리와 항아리 조각들 같이 보이는 뭔가를 발견했다면, 그들은 이 인공물들이 미래에 의한 우연적 결과가 아니라 알려지지 않은 공동체의 산물이라 추론할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모르더라도 말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만일 우주 비행사가 달의 뒷면에서 기계 더미들을 발견한다면, 그것을 지적 존재들의 산물이라고 추론하는 것은 정당한 것입니다. 가령 그들이 누구이고, 어떻게 그것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모르더라도 말입니다. 가장 뛰어난 설명을 인식하기 위해서, 사람은 설명을 설명할 수 있어야할 필요가 없습니다. 실로 그러한 요구는 무한한 설명의 퇴행을 가져오고, 그 결과 아무 것도 설명될 수 없게 되고, 과학은 붕괴되버릴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는 손 쉽게, 우주에서 나타나는 설계에 대한 최고의 설명으로 지적 설계를 인식하기 위해서는, 사람은 그 설계자를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둘째로, 도킨스는 우주의 신적 설계자의 경우, 그 설계자에 대한 설명이 복잡하기 때문에, 그 결과 어떠한 설명적 진보도 없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대는, 경쟁하는 설명들을 평가하는데 있어서 단순성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한 온갖 종류의 질문을 불러 일으킵니다. 예컨데 어떻게 단순성이 설명력, 설명 방향등과 같은 다른 기준에 의해 평가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질문들은 옆에 치워두세요. 도킨스의 초보적인 실수는 신적 설계자를 우주의 복잡성 안에서 비교된 하나의 독립체로 두는 그의 가정에 놓여있습니다. 몸을 갖지 않는 한 정신으로서, 하나님은 주목할만하게 단순한 독립체입니다. 물리적 독립체가 아닙니다. 정신은 부분에 의해 구성되지도 않으면서도, 자의식, 이성, 의지 같은 핵심적 속성은 필수적입니다. 설명할 수 없는 상수와 물리량이 있는 우발적이고 다양한 종류로 이뤄진 우주와는 대조적으로, 신적 정신은 놀랄만큼 단순합니다. 확실히 그러한 정신은 복잡한 개념일지도 모릅니다 - 예를 들면, 극미한 미적분학에 관해 생각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 그러나 정신 그 자체는 정말로 단순한 독립체입니다. 도킨스는 명백하게 (실로 복잡한)정신의 개념과 (놀랄만큼 단순한 독립체인)정신 그 차제를 혼동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주 뒤에 있는 신적인 정신을 묘사하는 것은 가장 분명하게 단순성 안에서 설명의 진보를 보여줍니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가치를 갖던지 상관없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세 가지 제시된 대안들 - 물리적 필연성, 가능성, 혹은 설계 - 중에서 가장 설득력있는 것은 설계 이론입니다. 그래서, 우주의 미세 조정에 기초한 신학적 주장은 우주의 설계자에 관한 타당하고 설득력있는 주장만큼이나 전망이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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