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주세요!

  예수님께서 모래 바람을 맞으시며 팔레스타인 땅을 샌들 신고 걸으셨을 시절에, 이스라엘에는 여러 공동체들이 있었습니다. 각 공동체들은 어떻게 현실 문제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크게는 세례요한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세례요한파가 있었고, 헤롯을 추종하는 무리인 헤롯파도 있었고, 그 유명한 바리새파도 있었습니다. 어느날 예수님의 제자중 한 명이 예수께 여쭈었습니다.


"예수님, 요한의 제자들은 기도문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우리에게도 기도를 가르쳐주세요."

 

  이 말은 단순히 기도에 대해서 가르쳐달라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각 공동체들은 그 공동체 나름의 기도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바리새파는 바리새파들의 기도, 세례 요한파는 세례 요한파의 기도문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 기도문은 그 공동체가 무엇을 추구하는지를 보여주는 '공동체 선언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 기도를 물었던 제자는 기도가 궁금했던게 아니라, 예수를 따르는 공동체가 무엇을 추구하는지가 궁금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의 물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예수 공동체의 정신을 표현하는 그 기도문의 첫 줄은 이렇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 좀 이상하지요? 다른 기도문들은 좀 더 멋있고, 장황한 첫 구절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기도인 '열 여덟번 축복 기도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주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전능하시고 무서운 하나님 하늘과 땅을 지으시고
지고하신 하나님 우리의 방패 그리고 우리의 조상들의 방패이신 하나님,

매 세대마다 우리의 의지할 분이신 당신을 축복하나이다.


  그 공동체를 대표하는 기도문인 만큼 화려하고, 긴 내용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는 단촐해요. 그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를 뿐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를 말하기 위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사탄은 하늘에 있고, 언약백성은 실패를 반복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과 둘이 사람이, 다시금 하나님을 아빠로 부를 수 있다니요? 두 가지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1) 십자가 위에서 못박힌 빚문서

  우리에게 잘못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잘못을 하나님은 눈 감아주시거나 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기억하시는 분이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죄도 감출 수 없습니다. 만일 누군가 음주운전으로 걸렸는데, 그것을 못본척하는 경찰이 있다면 그 경찰을 부패한 경찰이라 부를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하나님도 그런 경찰같은 하나님이라 오해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잘못에 대해서는 분명한 책임을 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이 지은 모든 비뚤어짐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 지셨습니다. 그 책임을 우리가 졌다가는 죽어도 모자를만큼 무거운 죄인데, 그 무거운 죄를 죄 없는 하나님께서 짊어지셨습니다. 


골로새서 2:14b
하나님께서는 빚문서를 십자가에 못박으셔서, 우리 가운데서 제거해버리셨습니다. 


  사탄이 그렇게 하나님께 내밀었던 빚문서가 이제는 소용없게 되었습니다. 빚문서를 보고도 없는셈친게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진 빚이 다 갚아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셨기 때문에. 아들이 죽는 것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파라오나 당하는 것인데, 그 아픈 일을 하나님은 스스로 당하셨습니다. 나쁜 일을 좋은 일로 갚아서, 우리를 아들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2) 승천 : 천상회의에서 사탄을 쫓아냄

  예수께서 욥처럼 모든 것을 빼앗기고,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시면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경외하며, 우리를 위한 길을 만들어주셨습니다. 그 길은 바로 출애굽의 길,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이 놓이자, 이제 두 번째 중요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바로 사탄을 천상회의에서 쫓아내는 일입니다.

  사탄은 그간 고발장을 가지고 사람을 벌해야 한다며 천상회의에서 주장했지만, 이제 사탄의 그러한 역할은 소용이 없어졌습니다. 사람의 죄가 갚아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탄을 천상회의에서 쫓아내신 사건을 우리는 이미 배웠습니다. 바로 승천입니다. 부활하시고, 자신의 부활을 500여명의 형제들에게 보이셨습니다. 이후 하늘에 오르셨는데,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시자, 사탄은 더 이상 하늘에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미카엘 천사부대에게 패배하여 다시는 천상회의에 들어올 수 없도록 하늘에서 추방당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고발당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예수께서 하늘을 차지하셨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예수님께 떳떳하게 힘을 구합니다.

  그리고 '사탄이 더 이상 하나님 계신 하늘에 갈 수가 없다'는 말을 잘 생각해보세요. 그렇다면 사탄은 땅에만 있습니다. 하늘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방금 영상에서 보았듯이 우주 전체에 비하면 지구는 정말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에 갈 수 없는 사탄은 땅으로 떨어졌고, 드넓은 하늘로 다시는 갈 수 없다면 사탄은 땅에 갇혀버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요한계시록에서는 '사탄이 무저갱에 갇혔다'라고 표현합니다. 사탄은 더 이상 하늘과 무관한, 땅, 사람의 차원에 갇혀버린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


  다시 기도를 가르쳐달라고 요구하는 제자에게로 돌아옵시다. 그 제자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은, 하늘에서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바로 우리의 아빠가 되셨다는 충격적인 말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아빠라 부르기 위해서는, 예수는 욥보다도 더 한 어려움을 당하셔야 했고, 승천하셔서 우리를 고발하는 사탄을 천상회의에서 추방해야 했습니다. 이 십자가와 승천이 일어났기 때문에 비로소 부를 수 있는 말,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십자가와 승천 때문에,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께 입양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사탄을 아버지로 두고, 그와 같이 거짓말하고, 주변 사람들을 탓하며 '그 아비의 그 자식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을 삶을 살았는데, 그러한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죽으셨고, 하늘을 차지하셔서 우리를 입양해주셨습니다. 게다가 사탄은 추방당한 하늘을 우리에게 열어주시고, 하나님의 숨결로 우리에게 힘 주십니다. 그래서 지금 이 땅에는 하늘과 끊어진 사탄과 하늘과 연결된 우리가 서로 맞서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21,22

이기는 이, 나는 그에게 나의 보좌에 나와 함께 앉도록 할 것이다, 마치 나 역시 이겼기에 나의 아빠와 함께 그의 보좌에 앉았듯이. 귀 가진 자는 숨님이 에클레시아들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들을지어다."


  우리의 결말이 무엇인지 들으셨습니까? 우리도 하나님과 함께 보좌에 앉아, 하나님과 대화하며 이 땅을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남은 것은 머리가 깨진 고발자를 이기는 일입니다. 무엇으로 이깁니까? 삶으로. 우리의 깨끗하고 순결한 삶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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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리를 해봅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요.


  하늘과 땅이 창조된 이야기, 하늘에서 바로 잡으시는 옛적부터 계신 분, 그러나 사람은 그분을 점점 밀어내며 비뚤어졌고, 천상회의에는 사탄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어요.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약속을 체결하셨고, 바로 그 약속 때문에 어린양은 죽었고 출애굽이 이뤄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는 사람들이 마침내 자신의 '아들'이라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모여 "하늘에 계신 우리 아빠"라는 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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