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 들린 자를 고치시다(5:1~20)
그렇게 그들은 바다를 건너서 거라사 지방으로 갔다. 그들이 배에서 내리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 하나가 갑자기 나타나 그들과 마주쳤다. 그는 무덤 사이에서 나왔는데, 그곳이 그의 거처였다. 아무도 그를 묶어둘 수가 없었고, 쇠사슬도 소용없었다. 쇠고랑과 쇠사슬에 여러 번 묶었지만 쇠사슬도 끊고 쇠고랑도 부러뜨렸다.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그는 밤낮 무덤 사이나 산 속에서 살면서 소리를 지르고 돌로 제 몸에 상처를 내곤 했다.
이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난 이야기를 함께 생각해봅시다.
예수님은 씨와 등불 비유를 하시고, 제자들을 바다로 데려가셨습니다. 그리고 저번 주, 우리는 바다 앞에서 죽음의 공포에 사로잡힌 제자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사망에게도 명령하시는, 정말 그의 모션대로, 바다를 밟으신 분임을 우리는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그 배가 이동합니다. 바다는 예수의 움직임에 숨을 죽이고 침묵합니다. 그리고 그의 배가 '거라사'라는 지방에 도착합니다. 그리고 이제 오늘 우리의 본문입니다.
당시 이 거라사 지역은, 로마의 점령지역이었습니다. 그리고 돼지치는 사람들이 본문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 거라사 지역은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은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두발굽달린 동물들을 끔찍히도 싫어했기 때문입니다. 즉, 거라사는 ‘로마가 점령한 이방 지역’입니다.
1. 나는 군단이다.
얼마전 스타크래프트 군단의 심장이 발매되었습니다. 오랫동안 스타를 해온 저 역시 관심을 가지고 티저 영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영상을 보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에 나오는 저그의 여왕의 캐리건의 대사가, 이런 대사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는 군단이다"
그런데 이 말은 이 거라사 지방에서 만난 사람이 예수께 했던 말이거든요?
그가 멀리서 예수를 보고 달려와 그 앞에 엎드려서 큰 소리로 외쳤다.
"예수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여,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입니까? 하나님을 두고 부탁하오니 제발 저를 괴롭히지 마십시오!" 그가 이 말을 한 것은 예수께서 이미 그에게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군단입니다." 그가 대답했다. "우리의 수가 많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그러고는 자기들을 그 지역에서 내쫓지 말아 달라고 예수께 간청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자신이 군단이라 주장하는 캐리건은, 모든 저그의 부대들을 통솔하고 지휘하지만, 그는 캐리건과는 다르게, 오히려 모든 부대들에 의해서 지배당하는 가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얼마나 가련한지 알기 위해서는, 그가 자신의 이름처럼 말한 “군단”이란 말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군단legion'이라는 말은 로마 군대를 뜻하는 말입니다. 로마는 일곱 언덕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중 세 언덕에서 각각 1000명씩 보병을 차출합니다. 그리고 그 보병들을 지휘하는 구대장이 한 명씩, 그리고 기병대가 각각 100씩 또 차출됩니다. 그 기병대를 지휘하는 기병 구대장이 또 세명 그리고 이 군단 전체를 지휘하는 군단장이 한 명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군단장은 왕이 맡았습니다. 그럼 군단은 총 몇 명입니까? 3307명.
그럼 차출된 이 3000여명은 어떤 사람들이었겠습니까? 마을의 건장한 청년들입니다. 각 지역당 1000명씩 뽑았으니, 마을의 건장한 청년들은 거진 다 전장으로 불려 나간 것입니다. 그럼 전장에서 이 마을 청년들이 무엇을 하게 됩니까? 전쟁입니다. 살육입니다. 여기에서 people이라는 말이 생겨났습니다. 원래 people은 지금은 사람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이 말은 본래 황폐하게 하다라는 populari에서 왔습니다. 이 황폐하게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에요? 마을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people이 사람들이 된 것입니다. 참으로 씁쓸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 people의 씁쓸함, 군단된 자들의 비참함은 옛날 이야기만은 아닙니다. 평범한 청년이 이라크에 파병되었습니다. 그의 이름은 러셀이었습니다. 러셀병장은 이라크에서 성실히 군복무에 임했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사람을 미치게 합니다. 이라크에서 전쟁을 경험하고 퇴역한 미군 3만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그들 중 5분의 1이 정신적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가 알콜 중독, 폭력행위, 파산, 가정폭력 등으로 비참한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러셀의 경우는 더 심했습니다. 평범한 가장이었던 그는 총을 들고 아군의 군 정신치료센터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충기를 난사했습니다. 이로 인해 5명이 죽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미국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러셀은 정말 평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평범한 그는 점점 미쳐가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습니까? 군단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살육이, 그의 인격을 병들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화씨 9/11 이란 영화 역시 비슷한 경우를 보여줍니다. 계속해서 이라크 군을 죽이는 미군 청년들이 점점 인격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을 죽이고 죽이는 일이 반복되고, 그 결과 그 일을 즐기게 되는 젊은 미군들, 혹은 정신적으로 너무 괴로움을 호소하는 미군들을 촬영했습니다. 이들은 누구입니까? 마을의 평범한 청년들입니다. 그리고, 군단입니다.
로마는 전쟁이 일어나면, 야누스 신전의 문을 열어두었습니다. 이 야누스신의 흔적이 우리가 쓰는 달력에 남아 있습니다. january. 즉, 해가 바뀌는 그 지점, 마치 하나의 얼굴에서 다른 얼굴로 바뀌는 두 얼굴의 신이 야누스입니다. 로마는 자신들의 전쟁이 새시대를 여는 전쟁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전쟁이 시작되면 야누스 신전의 문을 열어두고, 전쟁이 끝나면 그 야누스 신전의 문을 닫았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자신들의 전쟁을 통해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것입니다. 팍스 로마나. 즉, 이렇게 로마의 성스러운 전쟁으로 인해, 평화의 새 시대가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하하하하하하. 저는 야누스 신전의 문을 닫는 그들의 손이 부끄러웠을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절대 이렇게 새 시대가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로마는 자신이 모든 민족을 집어삼키는 것을 평화라 말했습니다. 이 더러운 평화 때문에 나라 안쪽에서는 계속 젊은이들을 전쟁터로 내몰아야 했고, 국경에서는 끊임없이 피를 봐야 했습니다. 이것이 평화입니까?
만약 새시대가 오고 나서야 야누스 신전의 문을 닫는 것이라면, 로마는 그 신전 문을 결코 닫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세계의 경찰을 자부하며, 미국에 의한 평화를 주창하는 미국정부도 결코 이 야누스의 문을 닫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새 시대는 그렇게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이 로마와 군단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군단이 좋아 보입니까? 별로 안 좋아보이죠? 아니 완전 혐오감이 들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도 이러한 군단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넘쳐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군단이 무엇입니까? 거짓된 소망을 따라 사람들이 모여, 힘을 부리고, 권위를 부리고, 명예를 부리는 것이 곧 군단입니다. 쉽게 예를 들어봅시다. 이 나라에는 학벌의 군단이 있습니다. 이거 정말 지저분한 것입니다. 학벌이라는 헛된 소망 때문에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비정상적인 집중력과 학습량을 얻길 원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 일에 사용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늘 군단에 점령당한 남자와 다르지 않습니다. 그 남자는 쇠사슬로도 묶을 수 없었습니다. 그 남자는 쇠고랑도 끊어버립니다. 로마 군대의 어마어마한 힘을 그는 소유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좋아 보입니까? 괴물같은 집중력, 귀신같은 암기력! 미안하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당신은 정말 괴물이고 귀신입니다. 학벌을 얻고자 합니까? 무엇 때문에? 예수가 당신이 누구냐고 물으십니다. "나는 학벌입니다" 라고 대답할 사람 대한민국에 널렸습니다.
세상의 힘을 추구하는 자, 군단입니다. 그는 그 힘에 정복당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회복된 인간이길 원합니까? 세상의 힘을 소유한 군단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2. 아냐, 너는 사람이야
마침 그곳 산기슭에 큰 돼지 떼가 와서 먹고 있었다.
귀신들이 예수께 간청했다. "우리를 저 돼지들에게로 보내서 그 안에 들어가게 해주십시오."
예수께서 허락하시사, 더러운 귀신들이 나와서 돼지들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돼지 떼는 가파른 언덕을 내리달아 바다로 뛰어들었다. 약 2천마리가 그렇게 바다에 빠져 죽었다.
다시 로마 이야기로 돌아가봅시다. 이번엔 이스라엘의 입장에서 로마가 무엇일지 생각해봅시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를 괴물이라 여겼습니다. 그것도 로마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려면 지중해를 건너서 와야 했습니다. 즉, 이스라엘이 보기에 로마는, 바다에서 나온 괴물이었습니다. 바다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기억날 것입니다. 그 바다에서 나온 괴물, 인격을 잡아먹는 괴물, 세상의 힘, 그것을 예수는, 다시 제자리로 돌려보내십니다. 바다로부터 올라온 괴물을 다시 바다로 집어넣으십니다. 악이 바다에 수몰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마치 그 옛날 그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 반역하던 인류가 바다에 수몰되었던 그 사건, 하나님의 백성 가는 길을 막으려 했던 파라오의 군대가 바다에 처박혔던 그 사건. 예수는 하나님께서 하셨던 일을 그대로 하십니다. 그 분의 삶은 역사 그 자체입니다.
충격적인 것은, 악이 수몰되는 그 자리에서 그 사람은 어찌 되었습니까? 악에 짓눌려 자신도 잃어버리고 군단이라 말하던 그 비참한 인간은 어찌되었습니까? 평범했으나, 세상의 힘에 이끌려 살육의 현장을 돌던 그 정신 이상자는 어찌 되었습니까? 살았습니다. 살았습니다! 아니, 그전에도 살아있었다고요? 아니, 그전에는 살아 있으나 살아있는 것이 아니었죠. 그는 군단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는 예수로 인해, 군단이 아닌 사람이 되었습니다. 세상의 힘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비인격이 아니라, 세상 힘에서 해방된 참된 자기 자신을 찾았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예수를 통해서.
이것이 오늘날 가능합니까? 세상의 힘에 매몰된 사람이, 예수로 인해 참 사람되는 일이 오늘날도 가능합니까? 이렇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불가능합니다. 의술로도, 굿으로도, 교육으로도, 요양으로도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오직, 한 분을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예수. 그 분 아니고서야 이러한 역사가 기록된 이가 없습니다. 가히 너무도 충격적이라, 이 소식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믿지 않을 정도니까요! 지어낸 이야기라 생각할 정도니까요! 그러나 그것은 이것이 정말로 지어냈기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복음을 접하는 인간의 반응은, 자전거를 선물 받기 원하는 아이에게 보잉747 비행기를 주었을 때의 어리벙벙함입니다. 아이가 말합니다. "아빠 뻥이죠? 저게 제 선물이에요?", "그래 이제 바다를 넘어 여행을 시작하자꾸나."
지금도 대학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도 자기 자신이 꿈 때문에 힘들어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지금도 세상에서 성공하지 못해서 전전긍긍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예수를 바라보세요. 예수를 바라보세요. 그 분 안에 진짜 당신이 있어요. 그 분은 당신이 세상에서 성공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그럼 뭐라 말씀하십니까?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십니다.
3. 천하의 등신들
돼지를 치던 사람들은 도망쳐서 중심가와 주변 여러 마을에 이 일을 알렸고, 그러자 사람들이 어떻게 된 일인지 보러 왔다.
그들은 예수께 와서, 그곳에 귀신 들였던 사람 곧 '군대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옷을 입고 온전한 정신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두려웠다. 그 모든 일을 목격한 사람들이 귀신들렸던 사람과 돼지 떼에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네 지역을 떠나 달라고 예수께 간청했다.
용어가 거칠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이 본문을 봤을 때,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 정말 이 사람들은 천하의 등신들입니다. 등신도 이러한 등신들이 없습니다. 등신이 무엇입니까? [명사] 나무, 돌, 흙, 쇠 따위로 만든 사람의 형상이라는 뜻으로, 몹시 어리석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입니다. 지금 이들에게는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것은 예수가, 그 군단에 사로잡힌 자를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매일 무덤가에 살면서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본인도 힘들게 했던 그가, 지금 멀쩡한 모습으로 옷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가 하신 놀라운 일의 증거가 지금 자신들의 눈 앞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어리석기 짝이 없는 사람들은 정말 정신이라고는 없는 나무, 돌, 흙, 쇠로 만든 사람들입니까? 이 놀라운 사건을 보고도, 한 사람의 인격이 회복된 이 역사를 보고도, 지금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것은, 아까, 물에 빠진 돼지들입니다. 그러니 이 사람들이 등신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닙니다. 지금 그게 중요한게 아니에요. 그러나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는 이 사람들은 또다른 군단입니다. 어떤 군단입니까? 돈이라는 헛된 소망을 따라 모인 허망한 사람들입니다. 지금 잃어버린 재산을 생각할 때가 아니죠! 지금 세상을 따라가고 싶지만 따라갈 수 없는 자신을 한탄할 때가 아니죠!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머리 속에 넣고 이리 저리 계산하고 고민하고 걱정할 때가 아니죠! 중요한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 인격의 온전함, 출애굽, 하나님 나라, 하늘과 땅,
하나님께 나아가는 그 위대한 한 걸음. 그 분을 닮음으로 얻는 진정한 인간다움!
그들에게는 이러한 것들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니, 이 일을 봤음에도, 그들은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군단이 되고 싶어하는 자들입니다. 세상을 따라 힘을 얻고 싶어 하는 자들입니다. 세상을 따라 성공하고 싶어 안달난 자들입니다. 돈에, 힘에, 세상에 점령당하고 싶어 간절한 사람들. 그들은 진실을 볼 줄 모릅니다. 그들 앞에서 예수는 외면됩니다. 그들은 예수를 밀어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신이 예수를 밀어내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를 밀어내고서 당신이 되려고 하는 것은 도대체 무엇입니까? 예수없이 인간이 될 수 있는 것은 군단밖에 없습니다.
4. 회복된 자 사명을 얻는다.
예수께서 다시 배에 오르시는데, 귀신 들렸던 사람이 자기도 같이 되느냐고 물었다. 예수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집으로 돌아가서 너희 사람들에게 주께서 너를 위해 해주신 일을 이야기해라. 주께서 너를 어떻게 긍휼히 여기셨는지 말해 주어라."
그는 떠나가서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일을 '열 도시'에 전파했다.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놀랐다.
이와 반대로, 예수께 고침받은 그는, 악에서 놓임받은 그는, 출애굽된 백성은, 예수를 알아봅니다. 예수를 알아봤기에 그는 자신도 같이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에 거절하십니다. 왜요? 그가 싫어서? 그가 모자라서? 그가 창피해서? 아닙니다. 그에게 해야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집으로 돌아가서 너희 사람들에게 주께서 너를 위해 해주신 일을 이야기해라. 주께서 너를 어떻게 긍휼히 여기셨는지 말해 주어라."
생각해보면, 이 사람은 세상의 군단이 될 것이 아니기에, 세상에서 붕뜬 사람입니다. 돈도 안따라가고, 명예도 안따라가고, 성공도 안따라가는 이 사람은 세상에서 아무 것도 따라갈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세상의 어느 것으로도 정의하기 힘든 사람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너무도 당연히, 세상에서 붕뜬 것 같은 이 사람이 할 일은, 세상이 아니라 예수가 정해주십니다. 믿는 자의 갈 길이 정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 사명이라 말합니다. 세상을 따라가지 않는 자의 마땅히 할 일이, 예수로 부터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사람의 의미요, 사명인 것입니다.
군단에 점령당했다가 출애굽된 이 사람의 사명은, 예수를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참으로 디테일하게 그에게 정해졌습니다. 그 일은,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열 도시’에 전파하는 일이었습니다. 열 도시의 범위는 매우 큰 것입니다. 도시 열 개를 순례하며 자신에게 벌어진 일을 전하라는 구체적인 삶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리고 더욱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이러한 사역 속에서 일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가 전한 자리에서 듣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보고 놀랐기 때문입니다. 비참하기 짝이 없었던 그의 인생 자체가 하나님의 증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귀신에 눌려서 괴롭게 지내던 그의 과거가, 그의 수치가, 그의 괴로웠던 날들이, 이제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수 없는 기쁨의 소식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러분의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힘을 따라가는 자여. 예수를 바라보십시오. 그는 당신 안에 있는 악을 제자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의 괴로움, 당신의 수치, 당신의 어려움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위해 사용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보다 앞서서 그 일을 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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