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교회 중고등부 마흔 여덟번째 설교
0. 지난 이야기
우리는 출애굽기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지난 주에 드디어 광야로 진입했습니다. 나는 믿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이 내용들이 결국 여러분들을 깨우칠 것을 믿습니다. 설령 지금은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언젠가는 이 내용들이 이해가 되는 날이 올 것이고, 그 날 여러분들은 새로운 차원을 보게 되는 날이 오리라 믿습니다. 나에게 그랬듯이 말입니다.
우리는 출애굽기를 총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는 이집트고, 두번째는 광야, 마지막으로 세번째는 가나안입니다.
-전적 타락의 상태
먼저 이집트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이집트가 상징하는 것은, '전적타락'의 인간의 상태입니다. 우리는 줄여서 T의 상태라 부르기로 했습니다. 이 T의 상태는 어떤 상태입니까? 자기 자신의 힘으로는 탈출할 수 없는 의미없는 노동의 상태가 곧 T의 상태입니다. T의 상태에 있는 인간은 그러한 상태를 조장하는 잘못된 신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렵게 말할 필요 없습니다. 잘못된 신념들은 이런 것들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명예를 위해서, 부자가 되기 위해서, 행복해지기 위해서. 혹은 게임 캐릭터 렙업을 위해서...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며, 절대 경배받지 말아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T의 상태에 있는 인간은, 로마서 말씀처럼 피조물을 마치 조물주처럼 여깁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닌 것들을 섬기며 살아갑니다. 먹고 사는 것이 자신의 신이 되어 그 사람을 이끌어갑니다. 명예가 그 사람의 신이 되어 그 사람을 이끌어 갑니다. 돈이 그 사람의 신이 되어 그 사람을 이끌어 갑니다. 행복이 그 사람의 신이 되어 그 사람을 이끌어갑니다. 게임이 그 사람의 신이 되러 그 사람을 이끌어갑니다. 잘못된 신념입니다. 거짓된 믿음입니다. T의 상태에 있는 것입니다.
-잘못된 신념들을 버리고, 십자가로.
그러한 T의 상태에 있는 사람이 어느 날 자신이 믿고 있는 것들이 모두다 부질없는 것임을 깨닫는 날이 옵니다. 많이 먹어도, 명예를 얻어도, 부자가 되어도, 행복을 얻더라도, 만렙을 찍어도, 결국 인간은 죽음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이상 이 모든 것들이 다 헛된 것임을 자각하는 날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영생의 문제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합니다. 그 고민의 끝은 반드시 이스라엘의 한 청년을 만나게 합니다. 그 청년의 모든 것을 버림이, 그 청년의 처참한 십자가 짊이 오늘 나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해주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자신을 붙잡고 있었던 최후의 악마를 떨어낼 수 있게 합니다. 옛 습관에 몸부림치던 내가 그 청년과 함께 승리를 선언하는 날이 옵니다. 온 몸에 그 청년의 피를 바르니 그 피를 본 죽음이 나를 넘어갑니다. 마치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목숨을 건진 이스라엘의 장자들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세례
그렇게 잘못된 신념들을 버리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인정한 그 사람은 하나님의 인도를 받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에게 요구하십니다. "나를 따르려거든,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라." 이 '모든 것'이라는 말에는 우리의 목숨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예수를 따르는 자의 모든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 마저도 우리가 인정했을 때, 우리는 세례를 받습니다. 우리의 발은 바다를 지납니다. 우리의 머리 위를 하나님의 거룩한 구름이 덮고 있습니다. 세례는 곧, 우리는 죽음을 걷고 있으나, 우리를 하나님이 지키신다는 확신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하나님께서 붙드신다는 믿음의 고백입니다.
-세례받은 자들의 공동체.
그렇게 세례를 받은 사람은, 공동체를 만납니다. 나와 똑같은 과정을 거쳤던, 잘못된 신념을 버리고 십자가를 인정했으며, 목숨 마저도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한 사람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들게 됩니다. 이것을 '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교회는 함께 광야를 걷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뒤로하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나그네들이 모여 함께 길을 걷습니다. 왜 길을 걷습니까? 우리는 지금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믿기에 걷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약속받았습니다. 이것은 세 가지를 필요로 합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들. 둘째는 그 사람들이 거하는 땅. 셋째는 하나님의 통치. 그러나 아직 이 두번째 것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의 외국인과 나그네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며, 그 분의 통치를 받지만 아직 그 땅을 받지 못했습니다. 교회 건물이 땅 아니냐고요? 이런 하나님 나라의 땅이 아닙니다. 그 땅은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았던 천막과 같은 곳입니다. 완전한 공간이 아닙니다. 임시적인 공간일 뿐입니다. 모델하우스입니다. 모델하우스에서 영원히 사는 사람이 없듯이, 여기도 우리의 영원히 살 집이 아닙니다.
-나그네들의 식량 : 예수 그리스도
오늘은 그렇게 함께 걷는 나그네들의 식량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합니다.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는 식량은 무엇입니까? 네. 만나입니다. 만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떡입니다. 나그네들을 먹이시는 하나님의 떡입니다. 출애굽했던 이스라엘은 40년간 광야를 떠돌면서, 40년 내내 이 만나로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 만나, 나그네의 식량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셨습니다.
요 6: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라
요 6: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요 6:50 이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요 6: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내가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니라 하시니라
요 6: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요 6: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요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요 6: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요 6: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한 가지 그림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 그림은 출애굽기의 그림입니다. 출애굽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따라, 갈대바다를 건너고 광야를 걸었던 이스라엘이 먹었던 것은 바로 만나였습니다. 그들이 만나를 먹으며 광야를 걸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땅. 가나안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를 믿어, 어, 그 분께 모든 인생을 드린 한 사람의 인생은 광야의 여정입니다. 아직 받지 못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매일 매일 걷는 나그네의 길입니다. 그리고 그 광야같은 인생을 사는 동안 먹어야 할 식량이 있습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를 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먹지 않으면 광야를 걸을 수 없습니다. 예수를 먹지 않으면 그 나라까지 가기 전에 허기짐으로 쓰러질 것입니다. 예수를 먹지 않으면, 우리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을 쫓는 사람들에게 주시는 하늘의 떡입니다. 신약시대를 살고 있는 자들의 만나.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럼 예수를 먹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입니까? 예수의 살을 먹고, 예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인육을 먹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2세기 경 초대교회가 처음 태동했을때,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던 로마의 지도자들은 이 말을 오해했습니다. 예수의 살과 피를 먹어야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이 말씀의 말을 오해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은 인육을 먹는다고 거짓소문을 내고, 기독교를 대대적으로 핍박하고 허다한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만약 우리가 예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의미를 모른다면, 그 의미를 몰랐던 로마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양쪽다 영생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사건입니다. 십자가에서 그 분의 살이 찢겨지고, 그 분의 모든 피가 쏟아졌습니다. 그런데 그 찢겨진 살과 흘리신 피를 우리가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요? 그 시간은 그 분에게 가장 견디기 힘들고 괴로운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하나님께 기도하시기를, "할만하시면, 나에게 그 잔을 지나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뒤에 한 말씀 더 붙이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이거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시옵소서"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었습니까? 약속입니다. 그 약속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완전한 그 나라에서의 삶. 곧 우리의 영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의 고초와 그 분의 아픔을 받아 먹습니다. 그 분의 살을 먹고 피를 받아 마십니다. 예수께서 최후의 만찬 때 하신 말씀을 다시 들어봅시다.
마 26: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마 26:27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마 26: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자신의 살이 찢기고, 피를 다 쏟으실 것을 아시고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떡을 먹으라. 이것은 내 살이다. 잔을 마셔라. 이것은 내 피다." 그리고 28절에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다. 약속의 피다."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알잖아요. 그 약속은 하나님 나라고, 우리는 그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는 아담 안에 있는 사람들이나, 이 예수의 찢겨진 살과 흘리신 피를 먹고 우리는 예수 안에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를 믿으십쇼. 그 분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은 곧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냥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 분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의 가장 괴로운 시간이 나에게 가장 기쁜 시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분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이 십자가의 무게로 억눌려 있던 그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가벼운 시간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분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의 살이 찢겨 나가고, 그 분의 피가 쏟아질 그 시간이, 내가 새 생명 얻는 시간이었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 분을 믿는다는 것은, 그 분의 죽음을 가져온 십자가가 오늘 나의 생명을 가져왔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웃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울 수도 없습니다. 내가 생명을 얻어서 기쁘지만, 내가 얻은 생명이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통해 얻어진 것이니 마냥 웃을 수도 없습니다. 십자가는 슬프지만 기쁩니다. 우주에 선포된 하나님의 그 지혜는 우리가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어, 어찌 반응해야 할찌 잊어버릴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경이입니다. 우주의 먼지에 불과한 나를, 아들이라 불러주심은 어쩜이신지. 그 보배로운 피가 죽을 자를 산자로, 종을 아들로, 죄인을 의인으로 변하게 하였습니다.
요 10:37 만일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행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려니와
요 10:38 내가 행하거든 나를 믿지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으라 그러면 너희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음을 깨달아 알리라 하시니
여러분, 십자가에서 죽은 어느 젊은 목수의 죽음이 여러분을 살렸습니다. 그 젊은 목수가 인류의 죄를 다 짊어지고 하나님의 저주를 홀로 감당했습니다. 이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것으로 보이는 이 사실을 성령받은 자만이 믿습니다. 우리 안에서 말씀하시는 그 분이, 이것이 진실이라고 우리 안에서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뜻대로 삽니다. 누군가가 시키지 않아도, 누군가 윽박지르지 않아도, 마땅히 감사한 마음으로, 마땅히 자원하는 심령으로 하나님의 뜻을 살아냅니다. 그것은 T의 상태에서 무의미한 노동하던 시절을 생각해보면, 깃털과 같이 가벼운 일입니다. 아무런 뜻없이 사탄을 위해 하루를 쳇바퀴 돌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기쁜 나날들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쉽고 가벼운 예수의 멍에를 지는 것. 그것이 지금 여러분의 앞에 있습니다.
'2010年 > 이집트 탈출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집트 탈출기 VII - 사랑의 이유, 은혜 (0) | 2014.05.03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