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번째,

역사의 주인

-복음서

 


0. 지난 모든 이야기

 


  우리는 지난 네 번에 걸쳐, 역사를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많은 말들을 했습니다. 우리가 했던 말들을 이 자리에서 모두 다시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흘러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나간 역사를 기억할 필요는 있을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누구이든,어떠한 문제를 격든, 어떤 사람이건간에, 당신은과거를 가지고 있고, 그 과거는 당신의 현재를 만들어왔으며, 당신의 미래와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렇기떄문에 당신이'역사적'이 될 필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그저, "현실에 최선을 다하자","순간을 즐기자", "까르페 디엠" 같은 아무 의미도없는 경구들을 되뇌이는 것을 그치고서 말입니다. 다시 역사 위에 섭시다. 그래야 내가 누구인지, 세상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지난 시간동안 해왔던 것들을 다음의 짧은 문장들로 요약해보았습니다. 역사 개관입니다.

 

창조주에 의해 시작된 역사가,

인간의 악함에 의해 뒤틀렸다.

창조주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민족을 선택하였고,구출하였다.

그러나 그 민족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더 심화시켰고, 오히려 포로가 되었다.

그러나 그 민족은 포로가 되었음에도 그 기억을 지켜왔다

구출의 기억.

그 이전의 뒤틀림의 기억.

그보다 더 이전의 창조의 기억.

 

  우리는 이제 그 기억들을 가지고 살아갔었던 A.D. 1세기 사람들의 기록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복음서'라고 불리는 기록들입니다. 이 복음서들은 앞서 설명한 '민족의 기억'없이는 이해될 수 없는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동안 먼 길 돌아왔던 것입니다. 위의 내용을 잘 기억하고 복음서를 들여다보면, 복음서는 말그대로 우리에게 복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적나라한 역사의 진실을 보여줄 것입니다. 다음의 순서를 따라 이야기하겠습니다.


1. 역사의 전달자


2. 예수와 출애굽

-예수께서 생각하신 출애굽은 무엇이었을까?


1) 악한 압제자는 누구인가? : 사람이 아닌,

2) 선택된 지도자는 누구인가? : 새로운 이스라엘

3) 하나님의 승리 방식 : 치유, 용서, 진리


3. 하나님 나라


1) 유다의 하나님 나라

2) 예수의 하나님 나라

3) 하늘로 부터 이 땅으로 돌입하는 하나님의 다스림



1. 역사의 전달자

 

 

  옛날에 슈무엘이라는 사람이 살았습니다. 사람은 포로입니다. 원래부터 포로였던 것은 아닙니다. 사람은 원래 가나안 땅에서 자유롭게 살고 있던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금 바벨론에 있습니다

 

  슈무엘은 매일 바벨론 사람들의 조롱에 시달렸습니다

"니네가 창조주에게 선택받은 민족이라며? 그런데 여기서 이러고 있냐? 하하하하" 



  또한 매일 강제 노역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이방 제국에 세금을 내야했고, 그들의 명령에 복종해야 했습니다. 하나님과의 든든한 연결을 상징하던 성전은 예전에 무너졌습니다.

 

  슈무엘이 슬프게 자신의 인생을 한탄하고 있을 , 아버지가 해주셨던 이야기가 기억났습니다. 슈무엘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그리고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할아버지 역시 포로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슈무엘이 포로였을 , 하나님은 유대인을 찾아오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포로로 잡고 있던 이집트를 박살내고, 그들을 포로에서 건져내셨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렇게해서 이집트에서 가나안으로 있던 것이라 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에서,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를 받으며 세계 최고의 민족임을 온천하에 자랑했다 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들려줬던 위대한 이야기는, 지금은 그저 옛시절 좋은 추억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가나안 땅은 그들의 땅이 아니라이방인들이 자신의 신들의 석상을 잔뜩 지어놓은 점령지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더이상 유대인은 세계최고 민족이 아니라, 바벨론의 앞에 높여 있는 포로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땅을 잃고, 민족이 뿔뿔이 흩어지고, 날마다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비참한 민족. 그리고 중에 태어난 슈무엘은 다시 땀을 닦고 일터로 돌아가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일터로 돌아가보니, 포로들 사이에 어떤 노래가 유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수금에 줄을 걸어 노래를 부르고 연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노래를 부른 사람들은 눈빛이 빛나고, 시름을 잊을 있었습니다누군가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그 노래는 이사야라는 사람이 전하는, 이러한 가사의 노래였습니다.

 


너희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
"
너희는 예루살렘의 마음에 닿도록 말하며,
그녀에게 소리치라!
그녀의 포로생활이 끝났다고!
그녀의 죄악이 용서되었다고!
그녀의 죄에 대한 처벌을 이미 갑절이나 받았다고!"

외치는 자의 소리가 말한다.
"
바로 광야에서, 왕이 오실 길을 준비하라!
바로 사막에서, 주님 오실 길을 곧게하라!
모든 계속들이 높아지고,
모든 산과 언덕들이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길은 평탄하게,
험한 곳은 평지가 될지어다.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날지어다.
그리고 모든 육체들은 그것을 함께 보게 되리라.
왜냐하면, 여호와의 입이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소리가 말한다.
"
외쳐라!"
그래서 내가 물었다.
"
무엇을 외쳐야 합니까?"
"
모든 육체는 풀이요,
육체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여호와의 입김이 들판에 부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백성은 실로 풀이로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

시온이여,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여!
높은 산으로 올라가라!
예루살렘이여,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여!
너의 목소리를 힘있게 높이고,
일어나라,
두려워 말아라,
그리고 말하라.
유다의 도시들에게,
하나님을 보라고!


 


  이 노래를 듣고는 슈무엘도 마음이 벅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슈무엘의 조상에게 일어났던  일이 다시 포로들에게 다시 일어나려나 봅니다. 왜냐하면 노래는 출애굽의 왕이 오신다는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포로생활이 끝날 것이라는 노래였기 때문입니다. 노래를 들은 모두가 두번째 출애굽에 대한 열망으로 들떴습니다.

 

'그래, 이제 하나님이 민족을 찾아오시는구나

이제 우리의 삶을 저당잡는 가증스러운 것들은 심판을 받겠구나

우리의 포로생활은 끝나겠구나

가나안 땅을 다시 되찾을 있겠구나




  

  그러나 그들의 기대와 기쁨과는 달리슈무엘의 민족은 죽는 까지 줄곧 포로였습니다. 하나님이 다시 이들을 찾아와, 바다를 갈라 그들을 구원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신은 이들에게 위대한 노래를 가르쳐주었으나, 이후 길게 침묵했습니다슈무엘의 민족에게 포로 생활은 길기만 했습니다. 바벨론이 지나고, 페르시아가 지나고, 마케도니아가 지나고, 시리아가 지나고, 영원한 강자는 없어, 세계의 패권이 바뀌고 바뀌는 동안에도 슈무엘의 민족은 계속 포로였습니다. 슈무엘은 죽고, 그의 아들도, 그의 아들도, 그의 아들도 이방제국의 포로로서 죽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위대한 노래는, 그저 전설로 끝나는 했습니다

 

  그렇게 기나긴 세월이 흐르고, 포로들의 후손인 포로들에게 어떤 이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광야에서 엘리야처럼 입고서, 그 옛날의 노래를 다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보라 내가 내 사자를 앞서 보낸다. 그게 너의 길을 터놓을 것이다!"

  "광야에서 이렇게 외치는 소리가 있다. 주를 위해 길을 내라! 그를 위해 길을 곧게 하라!"


 

  그리고 그는 그 노래가사처럼 사람들을 준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포로생활이 이제 끝날 것이라고.

주의 말씀이 이뤄질 때가 곧 올거라고.

하나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고 계시다고.

그러니 마음을 고쳐먹고 왕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이 사람의 이름은 세례 요한입니다.


  그리고 복음서는 바로 이 사람, 세례요한부터 시작됩니다. 구약과 신약을 잇는, 포로들의 희망에 불을 지피는 이 사람으로부터 역사가 전달되고 이어진 것입니다.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만나기 위해 광야로 나아갑니다. 그들은 광야로 나가는 도중 반드시 건너야 하는 강이 있었습니다. 그 강이 요단강입니다. 


  세례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는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포로생활이 끝난다고, 마음의 준비들을 하라고. 주의 말씀이 영원하기 때문에, 그 말씀에 따라 그 뜻이 이뤄질 것이라고. 이 모든 것을 위해, 하나님이 다시 예루살렘으로 오고 계시다고.

 

  그리고 모든 복음서는 이 사람부터 시작됩니다. 이 역사의 전달자. 구약과 신약을 잇는, 포로들의 희망에 불을 지피는 이 역사의 전달자로부터 복음서는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역사를 떠올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세례요한을 만나기 위해 광야로 나아갑니다. 광야로 나가는 그들이 반드시 건너야하는 강이 요단강입니다. 그리고 요단을 건널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생각에 잠깁니다. 왕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던 그 때, 그 왕과 함께 요단을 건넜던 그 때, 그 왕과 함께 그 땅에서 살던 그 때. 


  그리고 이제 세례요한의 예고편이 끝나고,

그로부터 역사의 바톤을 넘겨받은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2. 예수와 출애굽

 


  이 분에 대해서는 무수한 말들이 있습니다. 훌륭한 위인이셨다. 좋은 선생이었다. 예언자였다. 좋은 표현들만 있지 않습니다. 사기꾼이다. 미치광이다. 혁명가다. 이런 저런 말들이 있지만무수한 사람들의 증명되지 않을 억측을 뒤로 하고,  우리는 이렇게 질문을 던져놓고 시작하려고 합니다

  

  예수, 그 분은 자신을 누구라 생각했을까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유대인의 역사 입니다우리는 그간 '역사'의 물줄기를 따라왔습니다. 창조되고, 뒤틀리고, 구출되고, 기억된 역사. 그리고 그 역사의 끝에 세례 요한이 등장했고, 그의 예언에 이어 이제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그것도 출애굽 역사가 깊게 녹아 있는 팔레스타인의 유대인으로 말입니다. 예수께서 출애굽의 갈망에 젖어 있는 유대인 사이에서 나셨다는 것은, 중요한 사실입니다. 그 분은 어려서부터 성서를 배우셨고, 그 역시 출애굽에 대한 분명한 생각을 가지고 계셨으며, 심지어 자신의 사역을 출애굽을 통해서 표현하셨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변화산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도 그의 사역을 이렇게 요약하고 있습니다.

 

( 9:31) 

그들은 영광에 싸여 나타나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그의 '출애굽'에 대하여 말하고 있었다.

  

  개역성경에는 "그의 '별세'" 라고 말하고 있지만, 사실 저 말이 쓰인 희랍어 원어를 찾아보면 이렇게 써있습니다. 


  Exodus. '출애굽'이라는 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질문을 이렇게 수정하려고 합니다.

 



예수께서 생각하신 출애굽은 무엇이었을까? 


   예수께서 생각하신 출애굽의 그림 안에서, 우리는 그가 누구인지 조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는 세 가지 단서들을 가지고 있습니다하나는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지금껏 이 역사의 물줄기를 확인하기 위해 네 번의 만남을 가졌습니다. 두번째 단서는 복음서입니다. 그 분께서 말씀하시고 행동하신 기록들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마지막 세번째 단서는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온 출애굽의 구성요소입니다이어지는 지면에서, 우리가 하려는 작업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이스라엘의 역사 위에서

2) 복음서를 가지고 

3) 예수께서 생각하신 출애굽을 재구성해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간 1)번 작업에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어느정도 우리는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 큰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해야할 작업이 2)번과 3)번입니다. 2)번을 위해서 복음서 여기저기를 발췌할 것입니다. 그런다음 출애굽의 그림에 짜맞추고 도식화 할 것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역으로 3) 복음서를 제대로 이해하는 신선한 시각을 제시하게 될 것입니다.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장비부터 점검합시다. 출애굽의 그림을 구성하는 일곱가지 요소가 무엇이었죠?

 


1) 악한 압제자

2) 선택된 지도자

3) 하나님의 승리

4) 희생을 통한 구속

5) 새로운 사명과 생활방식

6) 하나님의 임재

7) 약속된 유업의 땅

 


   그럼 이제 시작해봅시다.



1) 악한 압제자는 누구인가? : 로마가 아닌 반창조


  

  먼저 이스라엘 사람들이 악한 압제자라 생각했던 것을 다시 떠올려봅시다. 이스라엘이 악한 압제자라 생각했던 것은 언약백성을 괴롭게 하는 이방제국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시금 출애굽 이야기와 함께 공명하는 또 다른 이야기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바로 다니엘의 '인자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통해서 네 마리 짐승은 곧 네 개의 제국이라고 이해해왔고 지금 이스라엘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가 그 제국들의 끝판 왕이라 생각했습니다. 곧 파멸당해야 할 악한 압제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이스라엘의 그림이 첫단추부터 잘못 끼웠다고 생각하신 듯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는 로마를 대항하는 이스라엘을 오히려 뜯어 말리시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20,21

"예루살렘이 군대에게 포위 당하는 것을 보거든, 그 도성의 파멸이 가까이 온 줄 알아라.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사람들은 산으로 도망하고, 그 도성 안에 있는 사람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고

산골에 있는 사람들은 그 성 안으로 들어가지 말아라.


 

  오히려 예수는 로마를 악으로 생각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경고하십니다. 곧 파멸을 부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당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말도 안되는 소리로 들렸겠지만 말입니다그렇다면, 예수는 자신의 출애굽 이야기에서, 무엇을 '악한 압제자'라 생각하셨을까요?



 

  예수께서 그 압제자를 처음 대면했던 마태복음 4장의 이야기에서 그의 대적이 분명해집니다.

 

마태복음 4:1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악마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마치 파라오가 모세를 시험하듯, 예수의 등장과 함께 악한 압제자가 등장하여 예수를 시험합니다, 예수는 지금 로마가 아닌 '사탄으로부터의 출애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악한 압제자의 정체는 사탄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스라엘의 시야가 좁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지금 자신들을 괴롭히고 있는 로마가 그저 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눈은 지금 타락의 사건에 가있습니다. 그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반창조를 염두하고 계십니다. 바다위에서 폭발한 유조선처럼, 인간은 선택했으나 수습하지 못할 일을 저질렀습니다. 기름 때에 괴로워 하고 있는 것은 로마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서 로마와 이스라엘은 서로 칼을 겨누고, 서로를 악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 유조선 자체를 치워버릴 생각을 하고 계십니다. 사탄, 악의 본류, 그것에 대한 심판과 출애굽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선택된 지도자는 누구인가? : 그는 새로운 이스라엘

 

 

  이 때 사탄이 예수를 시험했던 그 내용들을 확인해봅시다.

 

 

마태복음 4:2~11

예수께서 밤낮 사십 일을 금식하시니, 시장하셨다.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 예수께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말해 보아라."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하였다."

 

  그 때에 악마는 예수를 그 거룩한 도성으로 데리고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하였다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여기에서 뛰어내려 보아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자기 천사들에게 명하실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손으로 너를 떠받쳐서, 너의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할 것이다' 하였다."

예수께서 악마에게 말씀하셨다

"또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라' 하였다."

 

  또다시 악마는 예수를 매우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고 말하였다.

"네가 나에게 엎드려서 절을 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겠다."

그 때에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사탄아, 물러가라. 성경에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 하였다."

 

  이에 악마는 떠나가고 천사들의 예수의 시중을 들었다.

 


  

  이 세 가지 사탄의 시험의 내용 앞에서 우리가 머리 속에 떠올려야 할 것은 역사의 데칼코마니입니다.


 

  먼저는 시험의 장소와 기간입니다. 이미 예수 이전에, 세상의 구원투수로 부름을 받은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예수와 마찬가지로, 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았습니다. 그 실패한 구원투수들은 40년을 그 광야에서 지냈습니다. 보란듯이 예수께서도 그 광야에 40일을 머무십니다

 

  둘은, 시험의 내용입니다. 광야에 있던 첫번째 구원투수가 받았던 시험의 내용은 역시나 1) 자신을 위해 물질을 집어들고 2) 자신의 이름을 위해 살며, 3) 하나님 뜻에 역행하여 사탄에게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첫번째 구원투수들은 모든 시험에 철저하게 실패합니다. 그들은 이집트의 고기를 그리워하며 만나를 집어 던졌으며,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나님의 이름을 저주하고 자신들의 이름을 붙잡았습니다. 심지어 금송아지에게 절하기까지 했습니다. 예수께서 받으신 시험도 이와 마찬가지였습니다. 1) 돌을 떡으로 바꾸는 시험이었습니다. 물질에 대한 시험이었습니다. 2) 높은 곳에서 뛰어내려 자신의 이름을 높이는 데 하나님을 이용하라는 사탄의 유혹이었습니다. 3) 사탄에게 절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셋은 시험의 결과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아브라함 언약은, 이스라엘에 의해 철저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스라엘이 실패를 모두 역전시키십니다. 그것도 이스라엘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와 시간 속에서 말입니다. 회생 가능성이 없어 보였던 아브라함 언약은 다시 그로 인해 이어지고, 그 약속을 가로막았던 존재는 지금 첫 패배를 경험했습니다.

 

  이 시험의 유서 깊은 시험입니다마치 파라오가 모세를 시험하듯악한 압제자는 예수를 시험합니다. 게다가 조금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인간역시 같은 시험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이 사탄의 시험에 관한 마태복음 4장의 이야기는 우리를 뒤틀린 역사의 장면들로 인도합니다이스라엘의 역사 이야기 면면에 흐르는, 그 실패의 장면들을 오버랩시키며, 그 실패의 자리에는 어김없이 예수가 서계십니다예수는 도대체 자신이 누구라 생각하셨던 것일까요?

 

  그는 자신을 이스라엘과 동일시하십니다. 즉, 예수, 그는 새로운 이스라엘입니다예수는 자신을 출애굽 이야기의 선택된 지도자라 생각하셨습니다. 출애굽 이야기의 모세와 같이 말입니다. 그리고 더불어 예수는 자신을 이스라엘이라 생각하셨습니다. 이것은 이전의 이스라엘의 실패를 모두 뒤엎기 위함입니다. 시험을 모두 이기기 위함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함입니다. 깨진 역사의 퍼즐들을 새롭게 맞추는 역사의 주인이 등장했습니다.

 




 

3) 하나님의 승리 방식 : 치유, 용서, 진리

 

  그리고 이 악한 압제자에 대해서 예수는 말 그대로 승리하십니다. 마치 모세 앞에서 파라오가 쩔쩔매듯, 예수 앞에서의 악한 압제자는 단 한 번도 예수를 이긴 적이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보려고 하는 것은사탄에 맞서 일어선, 하나님의 승리를 가져오는, 새로운 이스라엘의 전투 방식입니다.


 

 

(1) 치유 : 인격을 악으로부터 구출하기


누가복음 11:14~23

  예수께서 귀신을 하나 내쫓으셨는데, [그것은] 벙어리 [귀신이었다].

그 귀신이 나가니, 말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무리가 놀랐다.

그들 가운데서 더러는 이렇게 말하였다.

"그가 귀신들의 두목인 바알세불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내쫓는다."

또 다른 사람들은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에서 내리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그에게 요구하였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느 나라든지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망하고, 또 가정도 서로 싸우면 무너진다.

그러니 사탄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그 나라가 어떻게 서 있겠느냐?

너희는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고 하는데,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면

너희의 추종자들은 누구를 힘입어 귀신을 내쫓는다는 말이냐?

그러므로 그들이야말로 너희의 재판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귀신들을 내쫓으면,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이미 온 것이다.


 

  예수께서 이 땅에서 가장 많이 행하신 일은 병고침과, 귀신쫓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사람들의 오해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의 일이 사탄의 일이 아니냐는 것입니다. 예수가 사탄과 합세하여 귀신을 쫓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의 항목에서 확인했듯이, 오히려 예수는 사탄을 대적하시는 분이지, 사탄과 합세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귀신을 쫓는 일것은 '하나님 나라'라고 대답합니다.(이것의 의미는 마지막 항목에서 살펴볼 것입니다그 일이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지금 이뤄진다고 대답하십니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병들고 귀신들린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병들고 귀신들린 것은 사탄의 소행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당시 자신들의 정결함을 자부심으로 삼던 이스라엘 사회내에서는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인격은 뒤틀리고, 병들어갑니다. 수치심으로 가득한 매일을 보냅니다. 말 그대로 이들은 경제적으로나, 마음으로나, '가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나타나 이들의 귀신을 쫓아주시고, 이들의 병을 고쳐주십니다. 치유입니다이것은 단순 의료사역이 아닙니다. 곧 인간을 망치는 어두운 힘에 대한 전면전이었습니다몸과 마음이 망가진 자들이 예수 앞에서 인간다운 삶을 얻습니다. 다시 정상적인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얻습니다. 사람이 살아나는 치유의 자리에 병마와 귀신들이 있을 자리는 없습니다


  사탄과의 첫번째 대면에서 승리하신 예수는, 사탄이 점령하고 있는 이스라엘 안쪽으로 승리의 행진을 이어가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부르던 오래된 노래의 한 소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선택된 지도자의 전투방식을 들려주는 오래된 옛 노래.

 


( 35:4~6) 

두려워하는 사람을 격려하여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너희의 하나님께서 복수하러 오신다

하나님께서 보복하러 오신다. 너희를 구원하여 주신다" 하고 말하여라.

그 때에 눈먼 사람의 눈이 밝아지고, 귀먹은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다.

그 때에 다리를 절던 사람이 사슴처럼 뛰고, 말을 못하던 혀가 노래를 부를 것이다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 시냇물이 흐를 것이다.


 

 

(2) 용서 :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기

  

  '치유'에서 설명했던 내용의 꼬리를 물어, 병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봅시다

 

  예수 당시 유대 사회에서 병이 걸렸다는 것은, 사탄의 영향 아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따라서 병에 걸리거나 귀신이 들린 사람은 성전의 제사에서 제외되었습니다. , 병이 걸리는 것은 언약 백성으로서 하나님과의 교제에서 끊어지게 되는 것을 의미하기에 더욱더 참혹한 것이었습니다


 

( 2:5~12) 

예수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 환자에게 

 

  "이 사람아!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율법학자 몇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이런 말을 한단 말이냐?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

하나님 한 분 밖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는가?' 하였다.

예수께서,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곧바로 마음으로 알아채시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너희는 마음 속에 그런 생각을 품고 있느냐?

중풍병 환자에게 '네 죄가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서 걸어가거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서

어느 쪽이 더 말하기가 쉬우냐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세를 가지고 있음을 너희에게 알려주겠다."

 

  예수께서 중풍병 환자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말한다.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서 집으로 가거라."

그러자 중풍병 환자가 일어나, 곧바로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자리를 걷어서 나갔다

사람들은 모두 크게 놀라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우리는 이런 일을 전혀 본 적이 없다" 하고 말하였다.


 

  이 본문에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병에 걸려있었으나, 예수로 인해 병에서 구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꼐서 말씀하십니다. "네 죄가 용서받았다" 이것은, 이 병자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가 다시 회복되었음을, 하나님께서 이 사람을 용서하였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본래 이러한 신의 용서를 선언하는 것은 본래 성전에서 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 위에서 성전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연결을 상징했고, 죄에 대한 용서의 선언은 성전에서 이뤄졌습니다. 그러한 성전으로부터 치유과 용서가 이뤄져야하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그러나 오히려 성전은 제 기능을 잃었습니다. 한 술 더떠서, 오히려 치료받고 신원받아야 할  사람들을 배척하고 몰아내는 중심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마당에 사람들은 성전이 아닌 예수에게 몰립니다. 왜냐하면 그에게 가면 병이 낫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용서가 선언되기 때문입니다. 그가 참 성전의 기능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죄인들에게 용서를 선언하십니다. 이러한 용서의 선언은, 치유에 이어 사탄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끼어들어 그 관계를 뒤틀리게 만들었던 장본인이 사탄입니다. 용서는 관계의 재정립하는 것이고, 오해를 푸는 것입니다. 마치 손 마른 자의 꼬인 근육들이 펴지듯, 하나님과 인간의 뒤틀렸던 관계가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사탄의 설자리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3) 진리 : 거짓 소망을 폭로하기

 


  '용서'에 대한 이야기의 꼬리를 물어 성전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봅시다.

 

   성전은 이스라엘의 중심이었습니다. 이유는 이러합니다우리가 앞서 확인했듯, 유대인들의 열망은 새로운 출애굽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새로운 출애굽은 이방제국의 파멸로 시작됩니다. 이방제국이 틀렸다는 것과 이스라엘이 옳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그들은 다시 성전을 위엄 넘치게 짓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스라엘 중심으로 세계가 재편되어 지금의 포로생활에서 벗어나는 것이 그들의 갈망의 정체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전의 본래 목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며, 그 잘못된 출애굽의 그림을 강력하게 붙잡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갈망을 이뤄주겠다는 무수한 혁명가들이 나타났습니다.그들은 이스라엘을 선동했고, 이스라엘은 선동당했습니다. 온 민족이 혁명의 열기에 들끓어, 로마를 파멸시키는 일에 너도 나도 열을 내고 있었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강도'의 의미는 바로 이러한 '혁명가'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두 혁명가들처럼 말입니다그 혁명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이방제국을 향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승리를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통해서 복이 아닌 지배와 폭력이 흘러가고, 결국 이스라엘만의 바벨을 쌓는 일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이 갈망의 중심에 성전이 있었습니다성전에 모여서 모의하고, 작전을 짜고, 기도하며, 로마를 짓밟고 세계 위에 우뚝 선 이스라엘을 기대했습니다. 성전은 혁명가들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앞에서 나열한 비참한 사람들의 삶은 더욱더 비참해집니다. 언약 백성은 복수에 눈이 어두워져힘겨운 나날을 보내는 사람들의 신원은 안중에도 없습니다하늘과 땅이 만나는 그 성전에서, 하나님의 발등상인 성전에서, 가난한 자, 병들린 자, 귀신들린 자들은 신원되기는 커녕, 쫓겨나고 죄있는 자로 매도되어 손가락질 당했습니다. 더불어 사람들도 생각했을 것입니다. ', 하나님은 병 걸린 나를 미워하시는구나. 하나님께서 나를 저주하셔서 내가 귀신들렸구나.' 병에 걸린 것은 죄 때문이므로, 병에 걸린 사람들은 참된 이스라엘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차별 속에서 가난한 자들, 소경, 절름발이, 앓는 사람, 중풍 병자, 한센병 환자, 거지, 굶주리는 사람, 우는 사람, 불쌍한 사람, 죄인, 창녀, 세리, 과부, 귀신들린 사람, 박해받는 사람, 억눌린 사람, 포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사람, 율법을 모르는 무리, 작은 사람, 어린이들은 성전을 통해서 아무런 신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앞에서 예수는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진리는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는 소망 전체를 다 찢어놓는, 그러나 진실했던 발언이었습니다

 


( 21:6) 

"너희가 보고 있는 이것들이, 돌 한 개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질 날이 올 것이다."


 

  성전이 무너질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소망의 그림을 찢어놓으십니다. 그것도 성경을 인용하여, 그들의 소망이 거짓이라 폭로하십니다이것은 사람들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발언이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전이 무너진다는 예수의 선언은, 이스라엘의 모든 소망이, , 그동안 출애굽 역사를 해석해서 짜맞춰 온 이스라엘 민족 전체의 갈망이, 전혀 무익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동시에, 한 가지 사실을 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성전의 무너짐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으로진정한 왕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발언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사람들은 격분했습니다. 자신들의 삶의 이유를 부정한 예수, 신성모독자 예수

그러나 예수는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어두움을 밝혀서, 진실을 말씀하시는데, 자신의 생명을 겁니다.

 







 

   치유, 용서, 진리. 

이것이 사탄에 대항하는 예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가 병을 고칠 때마다,

그가 사람들에게 죄용서를 선언할 때마다,

그가 진리를 말할 때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찬양했고

악에서 벗어난 자신의 삶에 기뻐했으며, 

이 일을 이루신 예수를 주목했습니다. 


  매순간 하나님의 승리가 드러났습니다.

그는 치유와 용서와 진리 선언을 통해 악에 점령당한 이스라엘에서 

점점 자신의 행동반경을 넓히셨고, 점점 사탄의 숨통을 조여왔습니다.


  이러한 그의 전투방식은 그의 정체성과도 꼭들어맞는 것입니다.

그 분은 악과 맞서싸우는 '왕'으로

사람을 하나님과 연결시키는 '제사장'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진리를 사람들에게 말하는 '선지자'로 그렇게 오셨습니다

, 그는 기름부음받은 자. 메시아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메시아의 방식은 악은 소멸하고 사람을 구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위에 펼쳐진 새로운 장면입니다. 더불어 옛 노래의 울림이었습니다.


(사 61:1,2)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니, 주 하나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상한 마음을 싸매어 주고, 포로에게 자유를 선포하고, 

갇힌 사람에게 석방을 선언하고, 

주님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언하고, 

모든 슬퍼하는 사람들을 위로하게 하셨다.



   

 

 

3. 하나님 나라

 


1) 유다와 하나님 나라

 

    예수께서 소년이었을 적, 이스라엘 땅에서는 큰 일이 벌어졌습니다. '유다'라고 하는 사람이, 로마에 대항해서 혁명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유다는 로마에 세금을 내지 말자고 주장했고,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도와 로마를 처단하실 것이라 소리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에 동조했습니다. 이에 대해 로마는 군사들을 보내 이 유다 일당들을 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모든 일당들이 붙잡혔고, 주범이었던 유다는 당시 로마에 대항하는 혁명군 지도자에게 부과하는 형벌에 따라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그 때 유다가 사람들을 선동하며 내걸었던 구호가 바로 '하나님 나라' 였습니다.




 

  당시 유다가 믿고 있던 하나님 나라의 정체는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을 믿었기에 제국 로마에 대항해서 혁명을 도모할 수 있었을까요? 이것을 위해서 우리는 다시 인자 이야기로 돌아갑니다. 인자 이야기의 등장인물들을 다시 확인해봅시다.


옛적부터 계신 자, 네 짐승, 인자

 

  문제는 이 인자이야기의 등장인물을 어떻게 이해하느냐입니다. 유다가 이해했던 인자 이야기의 등장인물은 아마도 이러했던 것 같습니다.


옛적부터 계신 자 - 하나님

짐승 - 자신들을 지배하는 로마

인자 - 이스라엘


   즉, 유다는 이스라엘이 로마를 대항해서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당시 유다만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인자 드라마를 이렇게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악한 압제자인 로마를 하나님의 승리로 짓밟을 수 있으리라 믿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유다에 대해 당시 로마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로마는 엄청난 범위의 영토를 유지하면서, 모든 점령지에게 관대한 종교 정책을 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 하나의 전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로마 황제 숭배였습니다. 로마의 황제를 숭배하는 조건 하에, 다른 민족들의 믿음을 인정해주었습니다. 로마가 점령하는 곳마다 황제의 신상이 세워졌고,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동전으로 물건을 사고 팔았습니다. 주변에 있는 이미지들은 황제의 지배를 선전하는 광고들이었고, 로마 신화는 그를 신으로 추앙하는 드라마였습니다. 주변에 널린 광고와 드라마 속에서, 로마 황제는 세상의 왕처럼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황제를 숭배하지 않고, 로마에 반란을 일으킨다면, 로마는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로마의 위용을 드러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로마에게 반란을 일으킨 반란군의 수장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유다는 어찌 되었겠습니까? 처참하게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습니다. 그의 추종자들은 그 비참한 지도자와 같은 운명에 처해지거나 남은 대다수는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이러한 비참한 역사의 순간 속에서, 우리는 하나의 퍼즐 조각을 발견합니다. 이러한 유다의 운동을 하나님 나라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나라는 인자 이야기를 믿어서 일으키는 운동을 뜻하는 말이었습니다. 




2) 예수와 하나님 나라

 


  유다에게 있어서는 실패한 혁명을 뜻하는 이 말이, 예수께오면 자신의 사역을 요약하는 중요한 단어가 됩니다. 


  이 '하나님 나라'라는 말은 그동안 숱한 오해를 겪어왔습니다어떤 사람은, '우리가 죽어서 가는 어느 장소'라고 생각했습니다어떤 사람은 '기독교가 이루게 될 어떤 국가'라고 생각했습니다부분적으로는 맞을 수 있습니다그러나 지금 우리는 유다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단서를 확인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자 이야기입니다. 예수께서도 인자 이야기를 알고 계셨고, 바로 이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의 사역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다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1. 이 땅에서 악이 심판 받고,

2. 하나님의 백성들의 포로생활이 종결되고

3. 인자가 영원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상속받는 이야기.

 

  핵심은, 관건은, 다음 질문들에 있습니다.

 

(1) 이 땅에서 심판받을 악은 무엇인가?

(2)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

(3) 영원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상속받을 인자는 누구인가

 

  

(1) 이 땅에서 심판받을 악은 무엇인가?

 

  예전에 부시가 이 질문에 대한 아주 적절한 예를 만들어준 적이 있습니다. 이라크를 침공하면서 그가 유명한 말을 남겼거든요. '악의 축' , 탈레반 정권을 가리켜 악의 축이라 명명하고 그들을 때려 부수는 전쟁을 '성전'이라 불렀습니다. 그럼 부시에게 있어서 악은 무엇입니까? 탈레반 정권. 그러나 정녕 이것이 사실이었습니까? 부시가 죽인 수십만의 바그다드 민간인들이 정녕 악이었습니까

 

    똑같은 질문을 배트맨에게 던질 수도 있습니다. 조커에게 있어 파멸의 대상은 배트맨입니다. 그렇다면 배트맨에게 있어 파멸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요? 조커? 아닙니다. 다크나이트에서 배트맨은 막판에 조커를 죽일 수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배트맨이 악이라 생각했던 것은 고담시의 무질서이지 무질서를 일으키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배트맨이 조커를 죽인다면, 예전 자신들의 부모를 죽였던 조커와 아무 것도 다를바가 없어집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악이라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싸워서 무찔러야 할 악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이것에 대한 예수의 답변을 이미 위에서 확인한 바 있습니다.

 

누가복음 10:9

그리고 거기에 있는 병자들을 고쳐주며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하고 그들에게 말하여라.

 

  ? 하나님 나라? 병자들을 고쳐주면서? 이것은 무슨 말입니까?

  병자들을 고쳐주면서 파멸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병입니다. 병이 낫는 것입니다. 왜 악을 처단하러 오신 인자가 병을 고쳐주는 것입니까

 

  ''이라는 것이 생겼는지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언제부터 병이 생겼겠습니까? 타락입니다인간의 범죄로 인해, 세상은 왜곡되었습니다. 인간에게는 죽음이 찾아왔고, 모든 관계들은 뒤틀렸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진 인간에게 죽음이 찾아왔고, 어떤 사람에게든 미래에 찾아올 죽음이 현실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 곧 병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을 망치는 것입니다. , 병은 인간의 타락으로부터 시작된 어두운 권세입니다.

 

  그러한 병자들에게 예수께서 찾아오십니다. 병을 고쳐주십니다. , 예수에게 있어서 악은 사람이 아닙니다. 타락으로부터 시작되어 인간을 덮고 있는 어두운 권세가 곧 악입니다. 예수께서 싸우시는 대적은 바로 이것입니다. 혈과 육이 아니라, , 사람이 아니라 어둠의 악한 권세와 대결하러 오셨다는 것입니다예수는 이것을 소멸하십니다.

 

  예수에게 있어, 악은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병고침의 순간순간 예수께서는 사람을 저당잡고 있는 어두운 권세들과 맞서십니다. 그리고 그 원수들은 예수 앞에서 계속 나가떨어짐의 연속이었습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인가?

 

  하나님의 백성은 누구입니까? 인자 이야기 안에서 네 마리 짐승들은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어지럽히는 악입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구출받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 안가 가리키고 있는 현실의 어떠한 사람들일까요? 현실의 악의 문제에서 구출받은 사람입니다. 인자로 인해서 말입니다

 

  인간의 타락의 징후들, 자신의 선하지 않음, 자신의 나약함, 관계의 문제, 그리고 죽음의 문제등으로 인해 괴로워하던 인간이 예수를 알고, 예수로 인해 삶이 달라진 사람들입니다. ,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고침받은 그는 예수의 가치를 알게 됩니다. 그래서 그 분의 뜻따라 사는데 철저해집니다. 공평과 공의에 철저하게, 하나님의 언약에 철저하게, 바로 이 사람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지금 이 병자가 낫는 장면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사실은, 이것은 예수를 통해 벌어질 새로운 출애굽, , 새로운 시대를 보여주는 그림 언어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단순 치료사역이 아닌 것입니다. 예수를 통해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하는 것이 소멸되고, 인간은 새로운 삶을 얻습니다. 이것이 예수를 통해서만이 가능합니다. 말 못하는 이가 꼬인 혀가 풀려서 말을 하게 되고,  절름발이가 걷게 될 떄, 당시 유대인들은 이것을 단순히 병이 나은 신기한 사건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인간답지 못한 것들을 가지고 있었던 자들이, 예수 안에서 치료를 얻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통해서 새로운 시대를 만났습니다. 예수의 병고침은 바로 이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인자가 나타난 것입니다. 인자 이야기가 현실이 것입니다. 이것을 믿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3) 인자는 누구인가?

 

  악에서부터 하나님의 백성을 건지는 인자. 바로 예수이십니다그 분이 병자를 고쳐줍니다. 이것은 그저 사람들을 고쳐주는 의료사역이 아닙니다. 인자 이야기가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악으로부터의 출애굽을 보여주는 증표인 것입니다. 사람의 병을 이토록 쉽게 고치는 사람은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은, 복음서가 너무 기적이 많아서 거짓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가 정말 메시아라면, 출애굽의 왕이라면, 그는 모든 반창조의 영향으로 인해 괴로워 하는 사람들을 구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종 병, 귀신들림, 죽음은 반창조의 끔찍함을 여실히 드러내는 현상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그 비참한 현장 속에서 언제나 새로운 그림을 만들어 내셨습니다. 반창조의 영향력 속에서 괴로워하던 사람이, 그것으로부터 구출 받는 그림. 출애굽의 그림입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인자의 그림이 완성이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모든 퍼즐들을 맞췄습니다. 인자 이야기의 제대로 된 배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옛적부터 계신 자 - 하나님

짐승로마 사람들, 타락으로부터 시작된 어두운 권세

인자이스라엘, 예수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병자들을 고쳐주고, 이렇게 말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3)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돌입하는 하나님의 다스림


  어떤 의미겠습니까? '하나님의 다스림'이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 , 그 나라는 사람이 가고 올 수 있는 그런 장소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나라가 이 땅으로 돌입합니다. 반창조를 뚫고 돌입하는 하나님의 다스림이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 나라가 하늘로부터 이 땅에 돌입하면 다음과 같은 일이 벌어집니다. 인자 이야기에 따르면 말입니다. 


1. 악의 심판 받음

2. 구출되는 하나님의 백성

3. 인자의 왕되심


  그리고 이 인자 이야기, 하나님 나라,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의 다스림이, 예수를 통해 이뤄졌습니다. 

어두움의 권세는 소멸되고, 

사람들은 진정한 삶을 얻으며, 

진정한 왕이 누구신지가 그의 사역의 모든 순간마다 드러났습니다. 

우리가 배웠던 말로 하자면, 출애굽이 이뤄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러한 그림으로 요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뒤틀린 역사가 다시 펴지는 것

세웠던 바벨의 기초가 무너지는 것

이스라엘이 저질렀던 무수한 실패들이 새롭게 역전되는 것을 봅니다

예수. 새로운 이스라엘. 이제 우리는 그의 결정적 승리 장면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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