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셨던 말씀을 들어봅시다.


마태복음 18:20


왜냐하면 둘이나 셋이 내 이름을 향해 함께 모이면,

거기 나도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원래 이번 주부터 요한복음을 보려고 했는데, 한주 동안 계속 이 생각이 나서 이 말씀을 안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대체 무슨 의미입니까? 우리 오늘은 이 한 구절 가지고 생각해봅시다. 가만 들여다보면 하나하나가 수수께끼까 아닐 수 없습니다.


1) 여기 모이는 "둘 이나 셋"은 누구입니까?

2) 내 이름을 향해 함께 모인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3) 예수님은 어떻게 그들과 함께 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4) 이 말씀은 대체 왜 주신 것입니까?


1. 어린이같은 사람은 자신을 낮추려는 사람


  마태복음 18장은 참 재밌습니다. 가장 먼저 여러분에 대한 얘기가 나옵니다. 제자들이 와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선 누가 제일 큰 사람이죠?" 그러자 예수님이 지나가던 어린 아이 하나를 불러다 세우고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8:3,4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만일 너희들이 생활방식을 바꾸어 이 아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 왕국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아이처럼 자신을 낮추려는 사람이 하나님의 왕국에서도 큰 사람이야.


  어린이같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왕국에는 이 어린이 같은 사람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말입니다. 어린이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자신을 낮추려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에클레시아 안에서는 모두가 자신을 낮추려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말이에요.


2. 자신을 낮추려는 사람을 괴롭게 하면 안돼


  그런데 뒤에 무서운 말씀이 이어집니다.


마태복음 18: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어린아이같은 사람 중 하나를 넘어지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달고 깊은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낫단다."


  그러니까 에클레시아 안에서 자신을 낮추려는 어린이 같은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을 괴롭게 하는 사람은 큰 일날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맷돌을 목에 매달고 바다에 빠지는 끔찍한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은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예레미야 51:63,64

수석 보좌관께서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책에 돌을 하나 매달아서, 유프라테스 강 물에 던지십시오. 그런 다음에 '주님께서 이 곳에 내리는 재앙 때문에 바빌로니아도 이렇게 가라앉아, 다시는 떠오르지 못하고 쇠퇴할 것이다' 하고 말하십시오." 여기까지가 예레미야의 말이다.


  예레미야가 바벨론이 멸망할 것이라 예언하면서, 당시 아주 비싼 돈을 줘야 하는 책을 돌에 매달아서 바벨론 한 가운데 흐르는 유프라테스 강에 던졌습니다. 바벨론이 이렇게 멸망당한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이 이야기를 인용하시는 거에요. 너 자신을 낮추려는 사람을 괴롭게 하면, 바벨론과 같이 멸망당할거야. 이 얘기를 나중에 예수님의 제자인 요한도 요한계시록에서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18:21

또 힘센 천사가 큰 맷돌과 같은 돌을 들어 바다에 던지고서 말하였습니다. "그 큰 도시 바빌론이 이렇게 큰 힘으로 던져질 터이니, 다시는 그 흔적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하여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건 '하나님 나라에 속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을 낮추려는 사람을 괴롭게 하는 건 큰일날 일이다.'


3. 그런 사람은 내보내는 게 낫다


  그리고 더 무서운 얘기가 이어집니다.


마태복음 18:8,9

"네 손이나 발이 너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서 내버려라. 네가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손이나 발 없는 채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또 네 눈이 너를 걸려 넘어지게 하거든, 빼어 버려라. 네가 두 눈을 가지고 불 붙는 지옥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차라리 한 눈으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그러니까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하는 사람은, 몸을 죄 짓게 만드는 손, 발, 눈과 같습니다. 이 사람 때문에 공동체 전체가 하나님 나라 왕국이 아니라, 지옥에서 사는 것같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8:10

"너희는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늘에서 그들의 천사들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얼굴을 늘 보고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얘기는 잃은 양 찾는 이야기입니다. 목자가 99마리의 양들을 산에 두고,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는 이야기입니다. 그만큼 한 사람이 중요하다는 말인데, 이 구절은 에클레시아 안에서 자신을 낮추려는 그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안 잃어버리신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18:14

"이와 같이, 이 작은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라도 잃어버리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다."


  그러니 만일 이 작은 사람들 중 하나를 나 때문에 잃어버리게 되면, 그 사람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게 아니게 됩니다.


  그러고나서 우리가 아는 얘기가 나옵니다. 3단 용서. 즉 자신을 낮추려는 사람에게 잘못해서, 그 사람을 괴롭게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그렇다면 에클레시아는 3단 용서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먼저는 단둘이. "너 나한테 왜 그랬어?" 그 다음에는 두 세 사람. 그 다음엔 에클레시아 전체가.


  지금까지 예수님의 말씀이 이렇게 연결됩니다.


1) 어린이 같은 사람은 자신을 낮추려는 사람이다.

2) 자신을 낮추려는 사람을 넘어지게 하면 안된다

3) 이런 사람은 잘라내는 게 낫다

4) 그러나 용서해줄 수 있다. 3단계에 따라.


4. 오늘부터 우리는


  그럼 이제 우리가 처음 봤던 구절이 포함된 말씀이 이어집니다.


마태복음 18:18,19

아멘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만일 너희들이 땅에서 묶으면 반드시 하늘에서 묶이게 될 것이고
만일 너희들이 땅에서 풀면 반드시 하늘에서 풀리게 될 것이다.


  묶고 푸는 것은 우리가 그렇게 정한다는 말입니다. 이 땅의 에클레시아가 정하면, 하늘에서도 그렇게 정해집니다. 엄청난 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택을 존중하십니다. 에클레시아가 만일 어떤 사람에게, '당신은 이제 에클레시아에서 잘려나간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는 건 정말 충격적인 일이겠지만, 하나님은 하나님은 에클레시아의 그런 결정을 인정해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땅을 다스리는 일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어떤 사람을 에클레시아에서 내몰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다스림은 생명을 생명답게 하는 것이니까요. 그런데 생명에 걸맞지 않은 사람이, 계속 자기를 낮추지 않고 고집하면, 그 사람은 더 이상 에클레시아가 아니라고 선언할 수 있습니다. 땅에서 에클레시아가 선언하면, 하늘에서도 그렇게 정해집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마태복음 18:20

재차 너희에게 말한다,
만일 너희들로부터 두 사람이 땅에서 모든 문제에 관하여 함께 뜻맞추면

반드시 그 그 둘에게는 하늘의 나의 아빠 곁에서 될 것이다.
왜냐하면 둘이나 셋이 내 이름을 향해 함께 모이면,

거기 나도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앞에서 냈던 문제를 풀 준비가 되었습니다.


1) 여기 모이는 "둘 이나 셋"은 누구입니까?

  잘못한 사람에게 찾아가는 둘 셋입니다.


2) 내 이름을 향해 함께 모인다는 말은 무슨 말입니까?

  에클레시아라는 말입니다.


3) 예수님은 어떻게 그들과 함께 하실 수 있단 말입니까?

  잘못한 사람을 위해 찾아가는 그들과, 예수님은 숨님으로 계십니다.


4) 이 말씀은 대체 왜 주신 것입니까?

  오늘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에클레시아이기 때문입니다.



<제안>

1. 학교에서 함께 예수님의 이름을 향할 수 있는 친구를 한 명이나 두 명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2. 그들에게 선물을 주고, 서로 친구가 됩시다. 선물은 친구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겁니다. 예수님도 우리의 친구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3. 그 두명의 친구가 모였다면, 그 사람들이 에클레시아입니다. 그렇게 학교에 에클레시아가 생겨났다면, 저에게 말씀해주세요. 이제 무엇을 해야할지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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