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2:9~50

[1]

  그래서 많은 군중은 그 유대인들로부터 그이가 거기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들이 왔는데 예수 때문만이 아니라, 죽은이 들로부터 일어난 나사로도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성전아르케들은 그 나사로를 죽이기 위해 회의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로부터 많은 이들이 나사로를 통해서 이끌려서 예수 안으로 신실해졌기 때문이다.
  다음 날 많은 군중은 그 축제 안으로 들어갔고, 예수가 예루살렘 안으로 왔다는 사실을 들었다, 나무들로부터 그 가지들을 취했고 그이와 마주치기 위해 밖으로 나가서, 소리쳤다.

  "호산나! 좋은 말 받는 이,
  주의 이름 안에서 오시는 이,
  그리고 이스라엘의 왕!"

  그런데 예수는 작은 나귀를 발견하시고 그 위에 올라타셨다, 기록되어 있는대로,

  "두려워 말아라, 딸 시온아.
  보라, 너의 왕이 온다,
  어린 나귀를 타고."

  이것들을 그이의 제자들은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께서 뚜렷이 드러나셨을 때 그때서야 알게되었다, 이것들이 그이에 대해 기록되었던 것이고 이것들이 그이에게 창조되었단 사실을. 그래서 그이와 함께 있던 군중은 그이가 나사로를 그 기억소로부터 불러냈다는 사실과 죽은 이들로부터 그를 일으켰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이 때문에 군중은 그이를 맞았다, 왜냐하면 그이가 바로 이 표적을 행했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리새인들은 그 자신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들은 보십시오,
  아무 것도 할 게 없다는 사실을.
  보시오, 코스모스가 그이 뒤로 돌아갔소."

[2]

  그런데 어떤 희랍 사람들이 그 축제에 경배하기 위해서 걸어 올라온 이들로부터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갈릴리의 벳사이다 출신인 필립에게 갔다, 그리고 그에게 요청하며 말했다.

  "주여, 우리가 예수를 보기 원합니다."

  필립이 가서 안드레에게 말했고, 안드레와 필립이 가서 예수께 말했다. 그런데 예수는 그들에게 대답하며 말씀하셨다.

  "때가 왔다, 그 사람의 아들이 뚜렷이 드러나기 위하여.
  아멘 아멘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만일 곡식의 알갱이가 땅 속으로 죽지 않으면 꼭, 그것은 홀로 머문다.
  그런데 만일 죽으면 꼭, 많은 열매를 가져온다.
  자기 호흡을 우정하는 이는 그 호흡을 멸망시키고,
  바로 이 코스모스에서의 자기 호흡을 미워하는 이는 오는 시대 속으로 그 호흡을 지킬 것이다.
  만일 나에게 누군가 섬긴다면, 그는 나에게 따라 올지라,
  그리고 내가 가는 어디든지, 나를 섬기는 이는 거기에 있을 것이다.
  만일 누구든 나에게 섬기면, 아버지가 그를 인정해주실 것이다.
  지금 나의 호흡이 괴로워한다, 그러니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아버지, 나를 이 시간들로부터 온전하게 하소서,
  그러나 이것을 통해서 내가 바로 이 시간 속으로 들어가게 하소서.
  아버지, 당신의 이름을 뚜렷이 하소서."

  그래서 그 하늘로부터 소리가 왔다.

  "그리고 내가 뚜렷해졌고,
  그리고 다시/새롭게 내가 뚜렷해질 것이다."

  그래서 군중은 서서 듣고 말하길, 천둥이 있었다고 했다. 다른 이들은 말하길, 천사가 그에게 말했다고 했다. 예수께서 대답하며 말씀하셨다.

  "나를 통해서 바로 이 소리가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너희들을 통해서 (되었다).
  지금 심판이 이 코스모스에 속해있다.
  지금 바로 이 코스모스의 아르콘은 밖으로 던져질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만일 이 땅으로부터 들려지면,
  모든 것이 나 자신을 향해서 이끌릴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사망으로 죽으실지를 나타내시며(σημαινω) 말씀하신 것이다. 그래서 그이에게 군중이 대답했다,

  "우리는 토라로부터 메시아가 오는시대 속으로 머문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당신이 그 사람의 아들이 들려져야만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바로 그 사람의 아들은 대체 누구입니까?"

  그래서 그들에게 예수께서 말하셨다.

  "작은 크로노스 동안 그 빛이 너희들 안에 있다.
  너희들이 그 빛을 가진 것처럼 걸어라,
  이는 어둠이 너희들을 압도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어둠 안에서 걷는 이는 자신이 어디로 돌아가는지 알지 못한다.
  너희들이 그 빛을 가졌듯이, 너희들은 그 빛 속으로 신실하라,
  이는 빛의 아들들이 되기 위함이다."

  이것들을 예수는 말하셨고, 그리고 떠나서 그들로부터 숨으셨다.

[3]

  그런데 이러한 표적들을 그이가 그들 앞에서 만드셨음에도 그들은 그이 안으로 신실하지 않았다, 이는 그 예언자 이사야의 로고스가 이루어지기 위함이었다, 그가 말했다.

  "주여, 누가 우리를 들음으로 신실해졌습니까?
  그리고 주의 팔이 누구에게 드러났습니까(αποκαλυπτω)?"

  이 때문에 그들은 신실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시/새롭게 이사야가 말했다.

  "그들의 두 눈을 멀게하셨고
  그들의 그 가온을 덮으셨다,
  이는 그들이 두 눈으로 보지 못하게 하고,
  그 가온과 돌아섬으로 알지 못하게 하고,
  그리고 그들을 치료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것들을 이사야가 말했다, 왜냐하면 그이의 그 뚜렷을 그가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이에 관해서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 그 아르콘들 중에서도 많은 이들이 그이에게 신실했다, 그러나 그 바리새인들을 통해 동의하지는 못했다, 이는 회당으로부터 쫓겨난 이들이 되지 않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이 사람들의 그 뚜렷을 사랑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뚜렷을 위한 것보다 더. 그런데 예수는 소리치며 말씀하셨다.

  "내 안으로 신실한 이는 내 속으로 신실한게 아니라,
  오히려 나를 보내신 분 속으로 신실한 것이다,
  그리고 나를 본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보는 것이다.
  바로 내가 이 코스모스 속으로 비춰진 빛이다,
  이는 내 속으로 신실한 모두가 어둠 속에 머물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만일 누군가 그 이야기들로부터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을지라도 (반드시),
  나는 그를 심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는 이 코스모스를 심판하기 위해 오지 않고,
  오히려 이 코스모스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왔기 때문이다.
  나를 밀어내고 내 이야기들을 받아들이지 않은 이가 스스로를 심판함을 갖는다.
  내가 말했던 말씀, 그것이 그를 그 마지막 날에 심판할 것이다.
  나는 나로부터 말하지 않았고, 오히려 나를 보내신 아버지가 직접 나에게 계명을 주셨다,
  내가 무엇을 말씀하고 무엇을 말하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나는 안다, 그분의 그 계명이 오는시대의 삶이라는 것을.
  그래서 내가 이것들을 말한다, 아버지가 나에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그와 같이 나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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