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1:18~3:20)에 대한 질문과 답변
1.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은 인간 모두인가요? 인간 모두가 경건하지 않음, 불의를 저지르며 진리를 막은 것인가요? 아, 원죄가 있었기에 인간 모두가 그 대상에 해당될 수 밖에 없는 것인가요?
로마서 1장에서 말하는 진노의 대상은 정말 '모두'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없으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말하고 있고, 이것은 이집트에 살고 있던 이집트 사람이나, 이스라엘 사람이나 모두 열 번째 재앙에 노출되어 있었다는 사실에 빗대어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원죄가 그것이지요.
본래 '죄'라는 말은 '하마르티아'라는 희랍어를 쓰는데, '과녁에서 빗나감'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에서 모든 사람이 빗나갔기에 원죄라는 개념이 성립됩니다.
2. 진노가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이라고 하셨는데,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이 죄의 해결과 연결되고 그렇다는 것은 죄는 잘못되었다는 것과 연결이 되잖아요? 죄를 해결하고자 하신 것(십자가 지심)은 우리를 위한 것이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기 위한 것이잖아요? 그것이 어떻게 진노로 표현이 되는 것인지 잘 이해가 안가서요~
죄의 삯이 곧 '사망'이라고 하신 부분이 하나님의 진노를 드러내는 부분이고, 이러한 죄를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감당(죽음)하셨기 때문에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라고 볼 수 있는 것인가요?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사람에게 떨어져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진노가 한 점으로 집중되어, 메시아 예수께 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십자가 사건의 정체입니다. 구약 율법을 보면, 죽을 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 돌로 치거나, 나무에 매달거나하는 방식이 나옵니다. 그러나 예수는 율법을 어기신 적이 없습니다.(사랑은 율법의 완성인데, 그는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심지어 십자가에 매달려 명을 달리하시는 순간까지) 그런데 왜 그 예수께서 율법을 어긴 사람들이 받는 형벌을 받으셔야 했을까요? 이것은 앞에서 말했듯, 십자가는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님의 아들에게 떨어진 사건입니다.
이 십자가 사건은 출애굽의 안경을 쓰고 이해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 자신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어린양"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는 이집트의 열 번째 재앙으로 이해됩니다. 모든 첫 창조의 것들이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죽어 마땅합니다. 그러나 메시아 예수가 어린양으로 죽임당했기 때문에, 그 진노에서 출애굽하는 사람들이 생겨납니다.
3. 예수님께서 십자가지심으로 구속하신 것은 어떤 것인가요?
원죄라고 한다면 아담때부터 원죄가 이어져서 나타난 타락의 결과들(롬1:18-32)이 지금은 없어야 하지만 더 많아지고 있잖아요~ 죄를 해결하셨지만 죄의 속성이 그대로 남아있고, 그로 인해 인간들이 새로운 자범죄들을 행하는 것인데 이것이 헷갈려서요~
하나님의 진노가 예수님의 십자가 지심이었고 이것이 죄를 해결한 것으로 연결되는 것으로만 생각했는데, 21절 이후에서 말씀하시는 진노의 이유가 지금까지 계속되고있어서 헷갈리네요~
'구속(redemtion)'이라는 말은 시장에서 쓰는 말입니다. '값을 치르고 사오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메시아 예수께서 구속하신 것은, 하나님의 목적에서 빗나가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예수를 믿었을(따랐을) 경우, 그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성령이 부어지고, 그는 삶의 방향이 제자리로 돌아옵니다. 이 일이 메시아 예수를 통해서 벌어졌습니다. 이것을 '구속'이라 부릅니다.
문제는 아직 이 메시아의 구속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생각하면, 메시아의 구속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아직 새 하늘과 새 땅이 이뤄진 것이 아니기에, 우리가 눈으로 보는 현상과 말씀을 통해서 알게 되는 본질은 괴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4. 2:1에서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라고 나오잖아요. 이부분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내용이구요. '남을 판단'하는 것은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여기지 않았고 피조물을 더 숭배하며 하나님만의 심판하실 권위를 넘본 것이며 이 행위는 자신 또한 불의, 추악, 탐욕, 악의 등이 가득한 자이지만 교만하고 무자비하고 무정하고 우매한 자라서 자신은 옳다 여기고 남들과 함께(당을 지어) 판단을 하는 것을 말씀하신 것일까요?
이렇게 정리를 할 수 없는 건가 싶지만, 1:18-32에는 경건하지 않음, 불의, 그 결과에 대해 말씀하셨고, '그러므로'로 이어지면서 심판하실 대상으로 '남을 판단하는 자'를 말씀하시잖아요~ 또한 남을 판단하는 것이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라고 말씀하셔서 앞의 불의들도 다 각각 있는 것이긴 하지만 남을 판단하는 자가 심판받는 다고 말씀하신 것은 판단하는 행위가 결국엔 앞의 내용을 다 포함하기 때문에 같은 일을 행한다고 했고 그래서 그러한 자를 심판하신다고 말씀하신게 아닌가 해서요~ (물론 앞의 불의들도 심판받을 행위들이구요-2:6)
그리고 하나님만이 심판할 수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을 통해 알 수 있나요? 머리로는 알지만 성경의 어떤 부분을 통해 알수 있나 해서요
적절한 해석입니다. '악'은 자가당착적인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남을 판단하면서도, 정작 자신은 그 죄에 걸려 넘어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예컨데 성적 음행을 생각해보면, 유대 지도자들은 간음을 저지른 여자를 정죄하지만, 예수는 마음으로 음욕을 품어도 간음이라 말씀하십니다. 즉 유대 지도자들은 늘상 간음을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간음을 저지른 여자를 판단하게 됩니다. 악의 자가당착적인 속성. 본인이 하고 있는 일에 정직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평가하게 됩니다.
그러니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이미 앞에서 열거된 모든 죄에 참여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드릴 수 있는 성경구절은 정말 많지만, 그 중에 시편 50:6, 전도서 11:9, 12:14, 하박국 1:12...
5. 로마서 2:14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했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이 돼서요. 로마서 2:19-20에 보면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였다고 하셨고,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고 되어있잖아요~
이건 기독교 교리로 따지자면 일반계시로 볼 수 있는데 이걸 떠나서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에 대한 것을 하나님의 속성을 만물 속에 두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이 본성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행하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예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간통에 대한 처벌이 존재하잖아요~ 창 20장에서 아비멜렉 왕도 사라가 아브라함의 누이인 줄 알았으면 안건드렸을 거라고 하구요.
물론 로마서 5장에 죄를 죄로 여기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제 생각은 로마서 1:18에서부터 나오는 내용이 그리스도인들을 가르키기 보다는 세상 모든사람들을 말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만물속에 하나님을 알게 하심을 나타내셨지만, 심지어 사람의 속에도 하나님의 일을 행하려고하고 하나님을 알고자하는 그 본성이 깃들어 있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알면서도 자신의 것을 추구하고 피조물을 더 숭배하면서 악을 행했다는 것이죠. 실제로 요즘에 심리학에서도 대두되고 있는 것은 SQ라고 해서 영성지수라고 해요. 이 SQ는 기독교인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죠. 사람들에게 이 SQ가 주어져있고 이것이 어느정도이며 어떻게 하냐에 따라서 그 결과 달라진다는 연구도 있다고 하구요. 하나님께서는 만드신 만물에 하나님을 알게하는 것을 두었다고 하시는데 그게 인간만 제외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보시나요~?
맞는 말씀입니다. 슐라이에르마허라는 신학자도 '모든 인간에게는 종교의 씨앗이 있다'고 말했으니까요. 그러나 로마서 2장의 본문은 분명 유대인을 향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방식을 성경에 대입하는 것보다, 일단 문맥 안에서 글쓴이가 누구를 향해 말하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는게 중요합니다. 1:18에서 '모든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아마 이 하나님의 진노와 자신들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점점 그 범위가 좁혀집니다.
하나님을 알지만 생각으로 거절하는 사람 → 피조물 숭배에 빠지는 사람 → 남을 판단하는 사람(2:1).
그리고 남을 판단하는 사람으로서 유대인이 등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2:14는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구절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3장으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데, 3장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이 실패했다면, 하나님의 구원 계획도 실패하는 것인가?" 라는 로마서의 전체 주제입니다. 이 주제를 생각한다면, 더더욱 2:14의 "날 때부터"는 일반적인 인간본성이 아니라, 날 때부터 토라를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라 보는 것이 좀 더 나은 해석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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