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밭가에서 


김수영


삶은 계란의 껍질이 

벗겨지듯 

묵은 사랑이 

벗겨질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먼지앉은 석경 너머로 

너의 그림자가 

움직이듯 

묵은 사랑이 

움직일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새벽에 준 조로의 물이 

대낮이 지나도록 마르지 않고 

젖어있듯이 

묵은 사랑이 

뉘우치는 마음의 한복판에 

젖어있을 때 

붉은 파밭의 푸른 새싹을 보아라 

얻는다는 것은 곧 잃는 것이다



11784日,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