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34日.

from 카테고리 없음 2015. 5. 2. 15:51

1. 말숨 쉬는 목격자


  우리는 호산나, 십자가, 부활을 지나 왔습니다. 이것을 잘 기억하는게 중요합니다. 이 다음은 무엇일까요? 


사도행전 1:6~11
사도들이 한 자리에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었다.
"주님, 주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라를 되찾아 주실 때가 바로 지금입니까?"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때나 시기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의 권위로 정하신 것이야.
그러나 힘 입으렴! 거룩한 숨결이 너희에게로 불어온단다.
그럼 너희는 내 목격자가 될거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도록.

이 말씀을 하신 다음에, 
그가 그들이 보는 앞에서 들려 올라가시니, 구름에 싸여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예수께서 떠나가실 때에, 그들이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그들 곁에 서서 말하기를,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허공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 
너희를 떠나서 빈 데로 올라가신 이 예수는, 
너희가 본 그대로 오실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예수는 하늘로 가셨습니다. 가시기 전에 하신 말씀은 바로 숨이었습니다. 이 숨이 말숨이요, 성령입니다. 말숨으로 숨 쉬며 살라는 말입니다. 이 말숨으로 힘입어 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숨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자꾸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 이야기를 귀로 듣고, 삶으로 뱉는 호흡의 삶입니다. 이것이 떠나시는 예수의 마지막 당부였습니다.

  그렇게 말숨으로 살면, 목격자가 됩니다. 우리가 지금 공부하고 있는, 2000년 그 사건들의 목격자가 됩니다.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삼일만에 살아나시고, 그리고 승천하시는 이 일들에 대해 증언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말 이상합니다. 우리 중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증언하는 그 예수의 얼굴을 본 사람도 아무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보지 않은 예수의 목격자가 됩니다. 살인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살인사건입니다. 그리고 살인사건 속에서 목격자란 살인사건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사람입니다. 과학 수사에 힘을 써야겠지만(그래서 오늘도 학자들이, 2000년전 역사를 연구합니다), 이렇게 오래된 살인사건은 아무리 과학으로 연구하고 수사한다해도 범인을 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 때, 목격자가 나타난다면 어떻습니까? 그 처참한 사건의 진상을 드러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말입니다. 그럼 그제서야 비로소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다 명탐정 코난이라 하겠습니다. 십자가 사건의 범인이 누구이고, 이 사건의 진상이 무엇인지 밝히기 위해 우리는 목격자들의 진술을 붙잡았습니다. 바로 성경입니다. 다행히도 그 살인사건과 아주 가까이 있던 사람들이 기록을 남겨좋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아침도 이것을 연구합니다. 교회는 매주 살인 사건을 연구하는 코난들입니다. 그런데 조사를 하던 도중, 불연듯 우리는 알게 됩니다. 예수를 죽인 범인을 추적하기 위해 몽타주를 그리다보니, 그 몽타주의 얼굴이 바로 내 얼굴이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리고 내가 죽인 예수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는 충격적인 진실 말입니다. 나는 탐정인줄 알았더니, 실상 나는 범인이고, 하나님의 검거 대상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죽임당한 이유에 바로 내가 포함되어있다는 끔찍한 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것이 십자가 사건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예수가 살아났습니다. 내가 죽인 예수가 살아났습니다. 부활입니다. 이 부활은 무슨 의미입니까? 내가 죽인 예수가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피해자 아버지였던 하나님은 나를 용서해주셨습니다. 게다가 예수 죽인 나를 가족으로 받아주시는 말도 안되는 제안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지만물 지으신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소리칩니다. 내가 죽였던 그 예수가 정말 하나님의 아드님이시라고! 그가 살아나셨으니,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범죄자가 아닌 가족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고! 그 삶 전체가 하나님 아들의 죽고 살아나심을 드러내도록, 새로운 숨을 쉬게 된 것입니다. 
  예수의 얼굴을 실제로 본 사람은 아무도 없어도 상관없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상하게도, 보지 못한 것을 말하는 미련한 사람들을 통해서, 자기 아들이 죽은 그 사건을 지구에 알리십니다. 그들은 '말숨'을 들이마쉬어 아버지 계심을 꼭꼭 알고, 온 몸으로 예수의 삶을 내쉽니다. 드러냅니다.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당부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말숨 쉬어, 진리의 목격자가 되는 일.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가족으로 사는 일.

2. 연결된 하늘과 땅

  그리고 승천입니다. '부활승천'이라는 말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부활은 부활이고, 승천은 승천입니다. 그럼 승천은 무슨 뜻일까요? 오랜 시간동안 사람들은 승천에 별로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만, 이제 승천에 대한 가르침이 중요해지는 시기가 올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승천에 대한 이야기는 우주의 비밀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늘과 땅을 배웠습니다. 하늘은 빈 데요, 땅은 땅구슬입니다. 우리는 하늘을 비어있다 말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입니다. 하늘은 가득 채워져있습니다. 다만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으로 채워져 있어서 비어있다 말하는 것 뿐입니다. 그럼 이 비어있는 것처럼 보이는 하늘을 채운 것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바로 말숨입니다. 의미입니다. 뜻입니다. 온 우주가 하나님 말숨으로 지어졌으니, 지어진 것마다 뜻없는 것이 없고, 의미없는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가득합니다. 그 뜻따라 움직이고 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가 말숨 호흡하는 것을 보니, 눈에 보이는 차원만 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도 있음이 확실합니다. 

  그 눈에 보이는 차원과, 눈에 보이지 않는 차원이, 다시 말해, '하늘'과 '땅'이 우주와 지구가 시작된 이래로 늘 함께 있습니다. 그저 붙어있는 정도가 아니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 바로 승천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40일이 지난 이후, 제자들의 눈에서 사라지셨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셨다는 말이 그 말입니다. 우리는 하늘로 가셨다고 하면, 로켓처럼 위로 날아가셨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승천은 그런 말이 아닙니다. 예수는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가신 것이고, 그 보이지 않는 차원이 보이는 차원과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사건이 승천입니다. 그럼 승천은 어디 멀리 떠나신 것이 아니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은 언제나 땅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은 항상 땅을 덮고 있어서, 지구 어디를 가던지 하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가 보이지 않을지라도, 예수께서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심을 압니다. 그 분이 약속하신대로 말숨 그대로 입니다. '임마누엘'. 하나님은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십니다.

-몸을 입은 사람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럼 영혼으로 가셨습니까? 몸으로 가셨습니까? 사람들은 하늘에는 영혼만 가는 줄 압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셨고, 죽으셨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했다는 말은 영혼으로 부활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손으로 만질 수 있고, 끌어안을 수 있는 몸을 가지고 다시 살아났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시고 40일간 제자들과 있으면서, 생선도 드시고 떡도 드셨습니다. 제자들은 희끄무리한 영혼을 만난게 아닙니다. 몸을 가지고 있는 분명한 사람은 만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승천입니다. 이 승천은, 하늘에는 영혼만 갈 수 있다는 우리의 생각을 뒤집어 놓습니다.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께서, 몸을 가지고서, 그대로 보이지 않는 차원으로 가셨습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차원과 보이는 차원이 부활한 몸으로 연결된 것입니다. 하늘은 몸을 받아줍니다. 

  사람들은 이 죽음의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될 몸은 하늘에 못들어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영혼으로나 들어간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몸을 버리고 영혼만 구원된다고 말했던 이단들도 많았습니다. 물론 우리 몸이 약하고, 병들고, 죽을 수 밖에 없는 몸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런 몸으로는 하늘에 갈 수도 없고, 하나님을 마주 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모세조차 이 살몸을 가지고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 했다간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살아남을 수 없었습니다. 죄의 몸으로는 하나님을 마주 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아담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지으면 죽는다고 말씀하셨는데, 그 죽음은 하나님을 마주 하기도 전에 죽게 만듭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연약한 몸은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 아빠를 마주할 수 없다는 절망이, 승천에서 뒤집힙니다. 예수는 몸을 가지고 하나님과 마주하는 첫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하늘로 올라가시는 예수를 보며, 몸을 가지고서 하늘에도 속하고, 땅에도 속하는 일을 보았습니다. 몸을 가지고 하나님을 마주 할 수 있는 새로운 사람을 보았습니다. 

3. 그가 오른쪽에서, 옳은 다스림으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우리도 그러한 사람된다는 사실을 믿고 그리 사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 약한 몸이 아닌 새로운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한 몸은 지금의 몸과는 달리, 하늘에도 속하고, 땅에도 속하게 될 것입니다. 자유로이 하늘과 땅을 연결하며, 심지어 우리는 몸을 가지고서 하나님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승천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그러나 아직 그러한 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직 우리의 몸은 변하지 않았고, 아직 우주도 새로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견뎌야 합니다. 예수님은 그 견디는 법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고, 사라지셨습니다. 그 분의 방법은 무엇이었습니까? 우리의 살몸이 가장 원치 않는 그것, 잘 안하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것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끝까지 보여주셨습니다. 무엇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하나님 얼굴 기다리는 자의 견디는 방법, 삶의 모습, 숨쉬는 현재입니다.

  견디기만 할 것이라고 지레 겁먹을 것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에 오르신 예수는, 그저 놀러가신 것이 아니라 왕으로서 가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오른쪽에 있다"는 성경의 표현은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하늘은 관제탑갚이 모든 땅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에서 예수는 모든 땅의 일들을 다스리십니다. 저는 '올'이라는 글자로 이것을 표현하고 싶은데,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신 것은, 하나님의 [올은]쪽에서 '옳게' 다스리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신 예수께서 우리를 옳은 길로 인도하시고 다스리십니다. 하늘에서 '올'을 차지하신 이가 우리를 다스리십니다. 그러니 우리는 비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으로 견딜만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사랑으로 견디고자 할 때, 우리는 혼자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하늘로 가실 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빈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힘 입으렴! 거룩한 숨결이 너희에게로 불어온단다.

  그 숨결이 바로 예수의 숨결입니다. 그 숨결이 우리의 힘입니다. 얼굴이 보이진 않지만, 숨결이 느껴지니 가까운 곳에 계십니다. 숨결을 느끼니 얼굴을 보게 될 날을 더욱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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