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빈무덤 + 만남
시신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시신이 없는 것만으로는 부활이라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부활'이라는 말을 신약성경이 기록된 희랍어로 보면, "다시 일어남"이라 되어 있습니다. 부활은 다시 일어남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일어나다"는 말이 나오면 집중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저 "일어나다"라는 말은 처음 교회에서 '부활'을 나타내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런 저런 설명들을 만들어냈습니다. 누군가는 예수님을 잠깐 기절 상태에 빠진 약을 먹였는데, 무덤에서 다시 약이 깨서 일어났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누군가는 예수님의 시신을 측근들이 훔쳐갔다는 얘기도 만들어냈습니다. 만일 빈 무덤만이라면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허나 빈 무덤만이 아니라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만남입니다. 그저 아팠다가 일어난 사람이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다시 일어난 사람을 만났습니다. 한 두 명이 몰래 만났을까요?
고린도전서 15:3~8
나도 전해 받은 중요한 것을 여러분에게 전해 드렸습니다.
그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과,
무덤에 묻히셨다는 것과, 성경대로 사흗날에 일으켜지셨다는 것과,
게바에게 나타나시고 다음에 열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 그리스도께서는 한 번에 오백 명이 넘는 형제자매들에게 나타나셨는데,
그 가운데 더러는 잠들었지만, 대다수는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다음에 야고보에게 나타나시고, 그 다음에 모든 사도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런데 맨 나중에 열 달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나 같은 사람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몇 명입니까? 최소 500명 이상입니다. 이 사람들이 그럼 잠깐 스쳐가듯 예수님을 만났다가 헤어졌던 것일까요?
사도행전 1:3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몇 일입니까? 무려 40일입니다. 한 달도 넘는 시간 동안 예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고, 심지어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빈 무덤 뒤에 중요한 것은 만남입니다. 그 만남은 500여명이 넘는 사람들과 40일 동안의 만남이었습니다.
2. 우주가 큰일났다.
이 빈무덤, 살아난 사람을 만난 사건이 성경 이야기의 중심입니다. 태극기로 치자면 태극점입니다. 그럼 이 부활 사건을 중심으로 성경 이야기 앞 뒤가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를 생각해봅시다. 성경 이야기의 시작은 하늘과 땅입니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우리는 이 구절에 대해서 여러 번 들여다 봤습니다. 빈 데와 땅구슬을 만드신 사건이 성경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럼 그 끝은 어떤 이야기로 끝날까요?
요한 계시록 21:1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습니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이 사라지고, 바다도 없어졌습니다.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땅이 등장합니다. 즉 성경 이야기의 시작은 우주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그 끝도 새로워진 우주 이야기입니다. 사람 얘기만 나오는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 얘기만 나오는 것도 아닙니다. 우주까지 그 이야기가 뻗어나갑니다. 나 혼자만 읽으라고 주신 책도 아니고, 먼 동네 이스라엘 얘기만 하는 책도 아닙니다.
그럼 생각해봅시다. 하늘과 땅이 새로운 하늘과 땅이 된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왜 새로워져야 할까요? 새로워진다는 말은 무언가 묵은 것, 더러운 것, 닦아야 할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우주 전체를 드리우고 있는 닦아야 할 때는 무엇일까요?
여기 쓰레기통이 있습니다. 이 쓰레기통의 이름을 맞춰보세요. 이 쓰레기통에는 식물도 들어갑니다. 동물도 들어가고요. 심지어 사람도 들어갑니다. 별도 들어갑니다. 지구도 물론 당연히 들어가고요. 우리가 사랑하던, 사랑하지 않던,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죄다 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이 쓰레기통의 이름이 무엇일까요?
바로 죽음입니다. 이젠 식물도 죽고, 동물도 죽고, 사람도 죽고, 심지어 별도 죽습니다. 우주 전체가 이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우리의 생각마저도 죽음을 이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과학자들이 말하는 지구의 미래에 대해서 들어봤을 것입니다. 이 지구가 차갑게 식어서 결국 모두가 죽게 되는 슬픈 결말이 과학자들의 얘상입니다. 결국 다 없어진다고 합니다. 이게 당연한 것이라 합니다. 우리의 '생각'마저도 죽음에 갇혀서, 저렇게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이 죽음 때문에 우주 전체가 큰일났습니다.
그럼 정말 죽음 이외에 새로운 것은 없습니까? 이 이야기는 몹시 슬픈데도 말입니다. 모든 것이 죽음으로 가는 이야기는 우리가 정말 원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미 비극적 결말이 정해져버린 재미없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그저 이 쓰레기통을 바라봐야만 합니까? 이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운명을 극복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단 말입니까? 우리는 결국 슬퍼하거나, 달관해야 할뿐입니까? 절망을 소망으로, 슬픔을 기쁨으로 바꿔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말입니까?
3. "뭔가 새로운 것이 있어!"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소식을 전해듣지 않았습니까? 빈 무덤의 소식 말입니다! 그 빈 무덤에 누워있던 사람이 일어났다는 소식 말입니다. 그리고 그 일어난 사람을 만났다는 소식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부활의 이야기가 성경 전체의 중심입니다. 빈무덤과 만남. 그리고 성경이 만나면, 다음과 같은 거대한 그림이 펼쳐집니다.
숨겨진 하나님-우주-지구-이스라엘-예수-공동체-모든 나라-새로워진 우주-드러난 하나님
그러니 부활은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모든 것이 죽은 절망의 순간 마저도, "뭔가 새로운 것이 있다"는 말입니다. 아직 우리는 그 "뭔가"에 대해서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 "뭔가"가 분명히 있다는 것을, 죽음에 절망한 이들에게 오늘도 말하기 위해 "일어나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