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호산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구하오니 구해주세요!' 외치며 이스라엘 사람들은 겉옷을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예수님을 환영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마치 스포츠 경기를 보듯 적들을 처부수고 우리에게 승리를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배웠다시피, 예수님은 제물로 오셨습니다. 죽으러 오셨습니다.
제물은 '뚜렷'입니다. 제물이 죽으면,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뚜렷해집니다. 하나님이 뚜렷해지시는 방법은 '살림'입니다. 제물을 다시 살려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제물 여러분,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을 뚜렷이 드러내는 방법입니다. 죽는다는 것은 다른게 아닙니다. 탐진치(貪瞋恥) 앞에서 죽는다는 말입니다. '탐'은 욕심입니다. '진'은 '눈 부라림'입니다. '치'는 어리석음입니다. 매 순간 아버지를 생각하며, 욕심과 화냄과 어리석음 앞에서 잠잠한 것이 제물이 죽고 사는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죽으셨습니다. 그 날이 금요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유의해야할 점은, 유대 사람들은 해 뜰 때부터 하루를 세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해가 질 때부터 그 날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 구절 때문입니다.
창세기 1:5
하나님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예수님이 죽으셨을 때가 금요일이라면, 이제 우리 시간으로 금요일 저녁이 되면서부터는 토요일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일월화수목금토'의 순서에 따라 토요일 저녁은 일곱째날이 되고, 안식일이 시작됩니다. 안식일에 대해서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이 날은 정말 쉬는 날입니다. 엿새 동안 일한 것들을 누리는 날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해 예수님이 죽으셨을 적의 상황을 상상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서 매달리신 날은 금요일이었고, 오전 아홉시 정도였습니다. 가시 면류관이 예수님 머리통에 깊게 박혀있어서 피가 줄줄 새어나왔고, 예수님 옆구리는 창으로 찔러놓아 피와 체액이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온 몸에는 채찍 자국이 선명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여섯 시간을 매달려 계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신을 아리마대 요셉이라는 사람이 로마 총독에게 부탁해서 가져왔습니다. 이것은 용기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토록 싫어하는 예수의 장례를 스스로 치르겠다고 나선 것이니, 사람들의 미움을 살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새 무덤에 예수님의 시신을 안치시키기로 굳게 마음 먹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핵심은 바로 시간입니다. 예수님이 죽으신 것이 오후 세 시. 아리마대 요셉이 빌라도에게 부탁해서 시신을 받아오기까지 또 여러 과정이 있었습니다. 정말 죽었는지 안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옆구리를 창으로 찔러보기도 하고, 다시 빌라도에게 보고한 다음, 십자가를 다시 내려서 손목과 발등에서 대못을 뽑아다가 아리마대 요셉에게 건내기까지 아무리 빨라도 한 시간은 걸렸을 것입니다. 그럼 네 시 정도. 그리고 네 시면 이제 해가 지기까지 두 시간 정도 남았습니다. 그렇게 해가 지면 안식일입니다. 안식일은 쉬는 날, 이 날 장례를 치르는 유대인은 없습니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죽은 시체를 더럽다고 생각해서 만지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이 두 시간 내에 장례를 치르지 않으면, 예수님의 시신이 어찌 훼손될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아리마대 요셉의 마음이 다급해졌습니다. 서둘러서 세마포를 사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서 내려다가 세마포로 쌉니다. 그리고 들쳐업고서 자신이 사놓은 돌무덤으로 달립니다. 그 뒤를 여자들이 따라 달립니다. 마가는 그 여자들의 이름도 기록합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인 마리아가 요셉의 뒤따라 함께 뛰었습니다. 그래서 마침내 무덤에 당도했습니다. 예수를 무덤에 눕히고 나니, 벌써 해가 뉘엇뉘엇 지고 있습니다. 아차, 향유를 사지 못했습니다. 아쉽지만 이제 항유를 살 수 있는 곳은 아무데도 없습니다. 안식일이기 때문입니다. 셋이 힘을 써서 돌무덤을 그 옆에 큰 돌로 막아둡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는 이 예수를 둔 무덤 위치를 기억해둡니다. 왜요? 안식일이 끝나면 마저 장례를 마저 치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미완의 장례를 남겨두고 이들은 집으로 돌아옵니다. 이 날은 이렇게 해가 저물었고, 안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안식일은 쉬는 날이지요. 이 날 하루 엄청나게 고생하셨던 예수도 쉬십니다. 예수를 업고 오느라 온 몸이 피투성이가 되었던 요셉도 쉽니다. 여자들도 집에 돌아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예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웠던 군병도 창을 씻어놓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예수의 옆구리를 창으로 쑤셨던 군병도 잠자리에 들며, 빌라도도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 눕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부인했던 베드로도 어디선가 누워서 잠을 청했을 것입니다. 이렇게 이 날 하루가 저뭅니다. 아무도 일하지 않는 밤, 모두가 이 날에 대한 각자의 상념들을 간직한채 그렇게 밤이 깊어갑니다.
유대인들의 장례 문화를 아는 것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그 날 해가 지기 전에 장례를 치룹니다. 그 시신을 세마포라는 얇은 천으로 싸서, 돌로 된 무덤에 넣어둡니다. 흔히 시신을 3,4개 정도 한 돌무덤에 넣는데, 예수님의 경우는 아리마대 요셉이 한 번도 쓰지 않은 새 무덤을 사용했기 때문에, 예수님 홀로 그 돌무덤에 들어가셨습니다. 시신은 죽은지 3일 정도가 지나면 썩기 시작하는데, 이 때 냄새가 정말 지독하게 난다고 합니다. 뉴스에 보면, 혼자 사시는 할머니가 아무도 모르게 집에서 돌아가시는 경우가 있는데, 이웃들과 왕래가 없고 친한 사람이 없어도, 이것을 알아차리게 하는 것이 바로 냄새입니다. 죽은 시신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시신에 주기적으로 꽃을 따다가 만든 향기 나는 기름을 붓습니다. 예수님이 죽기 전에, 한 여자가 나타나서 예수님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꽃기름을 붓고서 머리카락으로 닦아준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시신에 꽃기름을 바르는 그 장례 풍습을 따른 것입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이 죽으실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하여간 그렇게 시신에 향유를 붓고 1년 정도 기다리면, 살점은 다 썩고 이제 뼈만 남습니다. 그럼 그 뼈를 추려다가 유골함에 넣고서 다시 한 번 장례를 치룹니다.
그리고 다음 날 입니다. 무슨 요일입니까? 일요일. 멀리서부터 동이 터오는 이 날 새벽에 무슨 일이 있었는 줄 우리는 압니다. 장례를 마저 치르기 위해 새벽부터 항유를 구해왔던 여자들은 무덤이 텅 비어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빈 무덤. 우리가 일요일 아침에 모이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 빈 무덤 때문입니다. 왜 예수의 무덤은 비어있습니까? 죽음은 그를 가둬놓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을 목숨처럼 생각했던 유대인들과 달리, 기독교인들이 일요일에 모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바로 이 부활 때문입니다. 이 부활이 기독교인 삶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월화수목금토일이 아니라, 일월화수목금토입니다. 부활의 날이 첫 날입니다. 죽음을 이기고서 한 주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시작에 우리는 모여서, 그 부활의 주님을 예배합니다. 우리가 일요일을 일요일이 아니라, 주일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