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난 주에 성막을 보고 왔습니다. 성막에 대한 이야기를 마저 하겠습니다. 성막에 대한 이야기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성막은 '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지성소는 이 사람의 머리이고, 성소는 이 사람의 몸입니다.
가로막힌 두 차원
여러분, 머리와 몸이 서로 통하지 않는다고 생각해봅시다. 이 상황은 정말 힘겨운 상황입니다. 사람은 몸이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이요, 머리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과 몸된 사람이 서로 떨어지는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몸은, 머리이신 하나님을 멀찌감치 밀어냈습니다. 몸과 머리를 떨어뜨려 놓았으니, 살인입니다. 둘로 나누어 놓았으니 죄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나뉜 것이 이리도 끔찍한 일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에덴 이야기로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을 거절하고, 사탄의 생각을 따랐던 인간은, 에덴에서 쫓겨났고 하나님과 분리되었습니다. 이것이 정말 절망적인 사건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밀어낸 사람은 다시 에덴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의 동쪽에 불칼을 든 천사를 두셔서 사람이 다시 하나님께 오는 길을 가로 막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사는 사람, 곧 생각없는 몸이 되었습니다. 머리와 몸이 연결되어야 정말 사람입니다. 몸이 머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생각으로 움직여야 할 몸들은, 어리석게도, 머리 없이도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정말 그들의 소원대로 머리와 몸은 서로 가로 막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성막이 그대로 보여줍니다. 머리와 몸을 가로 막고 있는 불칼든 천사를 여러분은 보았을 것입니다. 바로 휘장입니다. 마치 남과 북이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막혀있듯, 지성소와 성소가 휘장을 사이에 두고 막혀 있게 되었습니다. 휘장으로 가로막힌 성막은, 하나님과 사람이 분리된, 생각과 몸이 분리된 비참함을 보여줍니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 여러분, 이 막혀있는 것이 좋습니까? 하나도 좋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이 정말로 힘들다는 사실을, 요즘에 너무 아프게 깨닫고 있습니다. 막힌 것에는 순환이 없고, 막힌 것에는 차별이 있습니다. 막힌 것에는 생명이 흐르지 못하고, 삶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막힌 것이, 얼마나 괴로운 것인지도 모르고 사람이 까불었습니다. 하나님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고 교만하게 굴었습니다. 그러나 막혀보니, 우리는 정말 죽었고, 생명으로 아무리 가려고 해도 갈 수 없는 절망만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에게 성막은 참으로 아픈 그림입니다. 휘장으로 가로막힌 이 두 공간은 다시 만나야 할 남과 북과 같고, 다시 만나야 할 우리의 생각과 몸과 같고, 다시 만나야 할 하나님과 사람과 같습니다. 다시 만나지 않으면, 다시 순환하지 않으면, 다시 연결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아무 소망도 없습니다.
하나되게 하는 제물
그러나 저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바로 휘장이 찢어졌다는 사실 말입니다. 휘장이 왜 찢어졌습니까? 휘장은 이제 길을 내어준 것입니다. 에덴을 지키는 불칼든 천사는 이제 없습니다. 우리가 다시 하나님과 하나되는 에덴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길을 아무나 걸을 수 없습니다. 에덴으로 들어가는 그 성막, 성소와 지성소를 관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제물 뿐입니다. 제물만이 밖에서부터 들어와 양쪽을 관통하며, 양쪽을 하나되게 합니다.
그래서 예수입니다. 그는 성막의 휘장 마저도 길을 내어주는 진정한 제물이십니다. 찢겨진 휘장을 지나 제물이 지나갑니다. 그럼 양 쪽이 연결됩니다. 양 쪽이 순환합니다. 그러니 삽니다. 하나됩니다. 예수는 어디든 관통하시고 연결하십니다. 그러니 예수는 '사이'에 계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제물이신 예수는 자신의 몸을 찢어 양쪽을 연결시키십니다. 생각과 몸을 이으시고, 하나님과 사람을 연결하시고, 남과 북을 연결하는 그 가운데에 예수가 계십니다. 그는 자신의 몸을 찢어, 둘로 나뉜 장벽을 무너뜨리는 제물이십니다! 자신이 더 큰 아픔을 짊어짐으로, 우리의 아픔을 고치시는 제물이십니다!
히브리서 9:11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좋이 이뤄질 일들의 대제사장으로,
더 크고 온전한 성막을 통해서 곁에 오시었습니다.
지지난주에 이 말씀을 적으라 했던 생각이 납니다. 그 제물이신 예수 때문에, 갈라진 것들이 다시 순환하고, 서로 연결되고, 진정으로 하나가 됩니다. 머리와 몸이 참으로 연결되어, 사람답게 사는 삶이 예수 안에 있습니다. 마치 예수는 우리 몸의 피와 같습니다. 피로 인해 온 몸이 연결되듯, 예수 때문에 모든 가로 막힌 것들이 다시 연결됩니다. 한센병이 낫듯, 모든 죽었던 부위부위들이 살아서 한 몸이 됩니다.
성소와 지성소를 관통할 수 있는 한 사람이 더 있습니다. 바로 대제사장입니다. 제물되신 예수가 앞장 서시니, 휘장이 길을 내어주고, 그 뒤를 따라 대제사장이 들어갑니다. 왜 들어갑니까? 자신을 포함한 모든 죄를 하나님께 용서받고자 들어갑니다. 모든 이의 죄를 놓고 기도하기 위해 '하나님의 생각'으로 나아가는 이가 대제사장입니다.
이것은 새로운 창조
예수는 제물이자, 대제사장입니다. 그는 제물로서 죽으시면서도, 대제사장으로서 기도하십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를 다음 구절이 말해줍니다.
그 성막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이 창조에 속한 것도 아닙니다.
제물 되신 예수, 모든 갈라지고 분열되고 찢긴 것들을 하나로 이어 차별이 없게 만드는 이 한 사람은 당연하게도 사람이 만든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분은 이 세상의 지음받은 그 창조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이 창조'라는 말이 창세기에서 말하는 바로 그 창조입니다. 예수는 창세기의 창조에 속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모든 것들은 사람의 죄로 인해, 나뉘게 되었고, 차별하게 되었고, 죽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이 창조가 아닌, 새로운 창조입니다.
옛창조는 모두 죽음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 때문에 다시 연결되고, 다시 살아나고, 다시 회복되는 것은 옛 창조가 아닙니다. 새로운 창조입니다. 창조된 것들이 살아나는 길은, 모두 이 새로운 창조로 들어가는 길 뿐입니다. 옛 창조를 품는 새 창조의 길이 구원의 길이요, 이 길에 대한 소식이 복음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 새 창조의 입구이십니다. 그에게는 죽음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제물이자 대제사장이십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셨음에도, 그는 다시 살아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십니다. 그를 통해서 찢긴 것들이 다시 붙고, 하나되어, 삶을 이룹니다.
그럼 우리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그의 뒤를 따라 지성소를 밟는 제사장들입니다.
베드로전서 2:9a
그러나 여러분은 택하심을 받은 족속이요, 왕과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하나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예수를 따라 지성소에 들어가보니, 언약궤 위에는 자신을 위해 죽은 제물의 피가 아직도 마르지 않고서 흥건히 뿌려져 있음을 봅니다. 그리고 다시 성소를 지나 성막을 나옵니다. 그의 삶이 어떠할지 생각해봅시다. 바로 그 생각을 이루는 것이, 휘장을 찢는 일입니다. 하나되는 일입니다. 나 역시 제물되는 일입니다. 나 역시, 그의 새 창조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그가 기뻐하실 만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