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태극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봅시다. 지난 주는 삼일절이었습니다. 뉴스를 보는데, 진관사라는 절에서 90년 된 태극기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절이 오래되어서 다시 짓고자 해체하는 도중, 그 속에서 낡은 천으로된 보따리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천 보따리를 펴보니 그것은 낡은 태극기였고, 그 속에는 독립신문이 들어 있었습니다. 이 태극기는 일장기 위에다가 덧그려서 태극모양을 만들고, 양 네 귀퉁이에 네 개의 괘를 그려 완성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가 모진 역사를 거쳐온 것처럼, 태극기 역시 그 수난을 같이 했습니다. 몸이 힘들면, 사람은 정신을 붙잡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몸이 편하면 사람은 정신도 놓아버립니다. 이 생각을 하면 우리나라는 참 부자입니다. 왜냐하면 힘든 역사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정신의 먹거리가 풍성한 민족입니다. 몸이 편하다고 생각하기를 멈추면 안됩니다. 이 나라가 힘들 때 사람들이 붙잡은 정신이 무엇인지 알고, 또 살아야 동물이 아니라 참 사람으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역사를 공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고난을 곱씹어, 그 고난을 이겨낼 힘이 이 한국사람에게 있습니다.


  무엇이든지 깊이 들여다봐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일 때까지 깊이 들여다 봐야 합니다. 그래야 뜻이 맞습니다. 우리네 역사도, 삶도, 태극기도 마찬가지입니다.


1.


  가운데 놓인 것을 '태극'이라 부릅니다. '태극'이라는 말은 원 가운데 중심점을 부르는 말입니다. 이 중심이 '시작'입니다. 시작점을 두르고 있는 테두리를 '무극'이라고 부릅니다. 이 무극은 끝이 없는 큰 하나입니다. '끝'입니다. 끝에서 시작이, 그리고 시작에서 다시 끝이 연결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연결되는 중에 밝음과 어두움이 조화를 이룹니다. 즉 태극은 모든 만물을 조화롭게 하는 처음과 끝입니다. 이 태극으로부터 모든 것이 생겨났습니다.


  태극의 뜻에 대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니, 한 분이 떠오릅니다. 


요한계시록 22:13

나는 ㄱ이며 ㅎ, 곧 처음이며 마지막이요, 시작이며 끝이다.


  태극이자 무극인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 분은 시작하시고 끝내시는 분이시며, 만물을 지으시고 또한 조화롭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그 동안 그 분을 '하나'라고 말해왔습니다. 태극은 하나입니다. 태극은 하나님입니다.

2.

  그 태극 주위로 네 개의 괘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 괘는 <주역>이라는 책에 나오는 것들입니다. 이 길고 짧은 막대기들은 예전 글자가 없을 적에 자연만물을 표현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주역에는 총 64괘가 나오는데, 그 중에 대표적인 괘 4개만이 태극기에 들어 있습니다. 긴 막대기는 강하다는 뜻이고, 짧은 막대기는 약하다는 뜻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위도 세고, 가운데도 세고, 맨 아래도 센 것이 하늘이라 생각했습니다. 이것을 건(乾)괘라고 부릅니다. 위도 약해서 부서지고, 중간도 약하고, 맨 아래도 약한 것은 가리켜 땅이라 했습니다. 이것을 곤(坤)괘라 부릅니다. 그리고 위는 약한데, 가운데는 강하고, 맨 아래는 약한 것은 물이라 생각했습니다. 물이 상류에서는 물줄기가 약하지만, 중류에서는 힘차게 흐르고, 다시 하류에 이르면 물이 잔잔해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것을 감(坎)괘라 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불꽃을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불꽃에서 가장 온도가 높은 것은 위 아래입니다. 그래서 괘의 모양도 이렇게 그립니다. 이것은 이(離)괘라 부릅니다.




  이 하늘, 땅, 물, 불이 뜻하는 바는 자연만물입니다. 그리고 이 자연만물들은 모두 태극에 의해서 생겨납니다. 


  즉 이 태극과 괘의 그림은, 우주 만물이 생겨난 원리를 설명한 그림입니다. 태극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입니다. 그 하나는 진리를 품고 있고, 모든 생명을 조화롭게 아우릅니다. 그리고 이 하나로부터 하늘과 땅이, 물과 불이 나왔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하자면, '천지창조'입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 온 세상 만드셨음을 보여주는 것이 태극기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의미가 되십니다. 그래서 의미없는 것이 없듯, 하나님과 상관없이 이 땅에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하물며 태극기겠습니까? 이 민족이 목숨과 바꿔온 이 상징이 한 분 하나님과 그 분이 지으신 세계를 가리키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3:9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 전부터 감추어져 있는 비밀의 계획이 무엇인지를 

밝히게 하셨습니다.


  이런 옛날 책을 들여다보면, 우리 선조들도 늘 뜻 맞추기 놀이를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연만물을 보고, 하나님을 생각한 이들이 태극을 그렸습니다. 그 태극이 기와에도 그려있고, 계단에도 그려있고, 문에도 그려있습니다. 모든 만물을 조화롭게 지으신 하나에 대한 생각을 우리 민족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3.


  심지어 일제의 군홧발 아래서도 그 생각은 피어났습니다. 고난의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의 정신이 붙든 것이 바로 그 하나입니다. 3.1 운동을 생각해봅시다. 총을 쏘고 칼로 찌르는 사람들 앞에, 사람들은 폭력에 폭력으로 맞서지 않고, 그저 이 태극기를 흔들며 나아가는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죽음의 위기 앞에서도 이 '하나로부터 만물이 생겨났다'는 그림을 손에 들고서 많은 사람들은 무엇을 믿었겠습니까? 하나입니다. 모든 것을 지으셨기에, 다시 모든 것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그 분이 옳다고 나선 것입니다. 3.1 운동은 이러한 믿음없이는 할 수 없는 실천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3.1운동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건국정신입니다. 이 정신의 토대 위에서 우리는 임시정부의 법통을 이은 이 나라에 살고 있습니다. 조선은, 한국은 하나를 믿어, 하나를 추구하는 민족입니다. 우리가 이 역사의 부르심을 받고서 이 땅에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과 끝이십니다. 태극이십니다. 세상을 바로 잡으실 하나님입니다. 다시 하나되게 하실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모든 만물을 지으셨다는 그림이, 우리민족의 상징입니다. 하나를 부르짖으며 총 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이었습니다. 서로 편 나누고 싸우기 위한 상징이 아닙니다. 우리만 잘 살면 된다고, 우리 말만 맞다고 우기는 상징 아닙니다. 하나되는 상징입니다. 우리는 하나되기 위해 죽고 다시 살 사람들입니다. 


  상황은 일제치하의 상황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때도 둘이었고, 지금도 둘입니다. 같은 상징이 우리 손에도 쥐어졌습니다. 우리가 어찌해야 할지는 분명합니다. 끝까지 싸우지 않고, 끝까지 하나를 추구하는 일입니다. 1919년에 있었던 그 사건처럼 말입니다.





반응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