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우리는 세 사람을 볼 것입니다.

쉐퍼드, 헤롯, 그리고 세례요한, 

영상부터 봅시다 .


1.




  이 영상을 보고 무엇을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그동안 배웠던 상징들을 정리해보자구요 . 물, 아버지, 아기. 여기서 물을 죽음으로 이해해봅시다. 아이는 처음에는 이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이겨낼 수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계속 아이를 이 고난에 직면시킵니다. 아이가 물을 먹을 수 있고, 아이가 불안해할 수도 있지만, 계속 옆에 있으면서 아기를 고난에 직면시킵니다.


  그리고 아이는 조금씩 알게 됩니다. 자기가 자꾸 물속에 들어가도, 옆에 아버지가 있으면 다 꺼내주시더라. 아기는 믿음이 있죠 . 문제 없다는 믿음.


  아버지는 어떠합니까? 처음에는 아기 코에 바람을 불어서 물에 입수시키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처음부터 무리하거나 감당할 수 없는 것을 시키지 않아요. 아이가 물을 두려워하자, 등에 태우고 다니기도 합니다. 그리고 결국 아이는, 처음에 두려워하던 그것을, 싫어하던 그것을, 즐기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물 위로 떠오릅니다 .


  이 영상을 보고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러하시다. 처음에 우리는 삶을 두려워합니다 . 왜냐하면 이 삶은 분명 죽음으로 향해 있거든요. 이게 두려운 겁니다. 이렇게 하면 망할 것 같고, 이렇게 하면 죽을 것 같고, 이렇게 하면 안될 것 같고, 결국 우리는 다 죽을거에요. 죽을거면서, 죽지 않으려고, 다른 사람들을 죽이는 삶을 사는것이 인간입니다. 인간은 이것을 뼈저리게 배웠어요. 가족끼리의 불화를 통해서, 친구와의 싸움을 통해서, 혁명과 진압을 통해서, 전쟁을 통해서, 인간은 누군가를 죽이고, 자기가 살고자 하지만, 결국 모두가 죽는다는 사실은 역사의 진실입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나님은 하나하나 가르치십니다. 무엇을? 죽음을 타고 노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


  죽음을 타고 놀다니요? 우리는 죽습니다. 그러나 안죽어요.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우리에겐 부활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있습니다. 그 사건과 우리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은, 꺼져가는 배터리와 같습니다. 점점 생명 에너지가 꺼져갑니다. 그래서 젊었을 때에는 진리를 위해서 옳음을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몸을 던지지만, 나이가 들어 약해지면 점점 노후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장담하는데 죽게 될 겁니다.


  그러나 부활과 연결된 사람은, 달라요. 물론 그 사람의 육체도 점점 꺼져갑니다. 그러나 육체가 점점 약해지고 늙어가는 것은 무엇을 가리킵니까? 곧 내가 완전하고도 새로운 육체를 받아 하나님을 만날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이죠. 그래서 나이가 들면 들수록, 상황이 어려우면 어려울 수록, 더 날카롭게, 더 진지하게,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사무치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부활입니다. 부활은 죽음을 뛰어넘게 만듭니다 .


  그리고 이 부활을 믿는 것은 그냥 한 번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꾸 부활 때문에 죽음을 뛰어넘는 것을 연습을 해봐야 해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한 연습을 계속 시키십니다. 삶에 어려움이 와도 절망하지 않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정말 주구장창 계속 가르치십니다. 내가 손해봐도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가르치십니다. 왜 용서가 부활과 연결되어 있습니까? 손해보려고 하지 않고 , 자기 입장만 주장하는 사람은 자신이 죽음을 뚫고 새로운 삶을 얻을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거든요. 그러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달라요. 용서, 사랑, 정의, 진실, 목숨을 걸고 행하는 모든 사랑의 일들은 모두 부활에 빚져 있습니다. 죽음을 이길 수 있는 사람만이, 세상이 감당할 수 있는 넉넉함, 통큼을 보여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 죽음을 타고 노는 거에요. 물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물보다 더 크신 아버지가 있음을 새삼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인격은 어떻게 될까요?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죽음을 이기시는 하나님을 닮아갑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는 무엇이 시작됩니까? 교제가 시작됩니다. 죽음조차 막을 수 없는 교제가 시작되죠.


  그리고 오늘 우리는 본문에서 이와 관련해서 두 사람을 만나야 합니다.


2.


     먼저는 세례요한입니다.

   

헤롯과 세례 요한(6:17~29)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했다. 요한은 헤롯에게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래서 헤롯은 요한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었다.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것은 아는 헤롯이 요한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롯은 요한을 보호했고, 그의 말을 자주 들었다. 요한의 말을 들으면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그는 요한의 말을 즐겨 들었다.

  어느 날 큰 잔치가 열렸다. 헤롯의 생일이었는데, 그가 고관과 장교들, 갈릴리의 주요 인사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열었던 것이다.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와서 춤을 추자 헤롯과 그의 손님들은 크게 즐거워했다.

  왕이 소녀에게 말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내가 들어주겠다."

  왕은 소녀에게 거듭 맹세했다. "내게 무엇을 청하든 내가 들어주겠다.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소녀가 나가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무엇을 달라고 할까요?"

  "세례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해라."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래서 소녀는 곧바로 왕에게 나가서 청했다. "지금 당장 이 쟁반에다 세례요한의 머리를 담아 주십시오!"

  왕은 당황에서 어쩔 줄 몰랐지만, 자기가 맹세한 말과 거기 모인 손님들 때문에 소녀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은 곧 호위병을 보내서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호위병은 가서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쟁반에 담아 가지고 와서 소녀에게 건내 주었다.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요한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와서 그의 시체를 거두어다가 무덤에 묻었다.


  요한은 진실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자를 권력자들은 싫어합니다 . 자신들의 도덕적 결함을 지적하는 것을 그들 자신의 악행을 혐오하는 것보다 더 혐오합니다. 그래서 장준하 선생이 죽었고 조봉암 선생이 죽었습니다 . 신숙주가 죽었습니다. 임경업이 죽었고,조헌의 말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 권력은 진실을 두려워합니다 . 그래서 목숨 보다 진실을 추구하는 자를 그동안 계속 없애왔습니다 . 세례요한도 마찬가지의 경우였습니다 . 헤롯은 자기 형의 부인과 결혼했고, 이것은 근친이죠 . 한 나라의 왕으로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 그러나 유대인들이 알면서도 쉬쉬하고 있을 때, 세례요한은 헤롯에게 찾아가 이것을 여러 번 이야기했습니다. 헤롯도 그 말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상황을 돌릴 용기는 없었습니다. 결국, 그 부인인 헤로디아가 앙심을 품고, 자기 딸에게 입에 담기도 잔인한 소원을 말하게 합니다. 세례요한의 머리는 그렇게 잘려나갔습니다


  역사의 전달자였던 세례요한, 예수님과 구약을 연결했던 세례요한은 그렇게 권력의 손에 무참히도 죽임당했습니다 . 


  그러나 그가 패배한 것일까요? 그가 죽음에 정복당한 것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 옳은 말을 하다가 죽임당한 예언자들을 ,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살리실 것이라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 이것이 마르다에게도 발견됩니다.


요한복음 11:24

마르다가 예수께 말하였다. "마지막 날 부활 때에 그가 다시 살아나리라는 것은 내가 압니다."


  세례요한이 구차하게, '아, 잘못했어요. 괜히 말했나봐. 목 말고 다른데요.' 이랬을 것 같습니까? 애당초 그가 요단 건너 베다니에서 하나님 오심을 선언했을 때 , 그는 죽음을 넘어가 있었습니다 . 죽음을 가지고 놀고 있었습니다. 왜요? 당시 분명히 왕이 시퍼렇게 눈뜨고 살아 있고, 게다가 로마 황제는 황제 숭배 하지 않는 식민지 백성들에게는 자신의 강함을 처절하게 깨닫게 했습니다 . 군단이 와서 밀어버리거든요. 그런데 거기서 세례요한이, “왕이 오신다! 왕이 오실 길을 예비하라!” 이렇게 외치고, 무수한 사람들이 그에게 나와, 세례받고 왕이 오실 길을 회개로 준비하는 것은, 일종의 반역이요, 반란입니다. 이거 목숨을 내놓고 하는 일입니다. 세례요한이 아, 나 이 사역 망하면 어떡하지? 나 죽으면 어떡하지? 전전긍긍했을까요 ? 오히려 목소리를 더 크게 높였을 것입니다 .



3.


  그리고 또 한 사람. 헤롯입니다. 다시 본문을 봅시다 .


헤롯과 세례 요한(6:17~29)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헤롯이 자기 동생 빌립의 아내인 헤로디아와 결혼했다. 요한은 헤롯에게 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여러 번 이야기했다. 그래서 헤롯은 요한을 체포해서 감옥에 가두었다. 헤로디아는 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인 것은 아는 헤롯이 요한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헤롯은 요한을 보호했고, 그의 말을 자주 들었다. 요한의 말을 들으면 몹시 괴로워하면서도 그는 요한의 말을 즐겨 들었다.


  헤롯은 참 이상한 사람입니다. 그는 요한을 존경했습니다. 그가 진짜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요. 잘 되보려고, 안 망하려고, 성전도 리모델링하고, 로마에 빌붙어서 이스라엘을 간신히 다스리고 있는 그와 다른 사람이라는 것 알고 있었죠 . 그래서 요한의 말을 또 경청합니다 . 그래서 요한을 보호합니다 . 요한을 죽이려는 사람이 더러 있었나 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죠. 이 헤롯은 자기 동생의 아내와 결혼합니다. 이거 근친이거든요 ? 그래서 요한이 헤롯에게 말합니다 . 그것도 여러 번 이야기합니다. 옳지 않는 일이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옳은 말 하는 것은 쉽지 않죠. 그러나 그는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습니다.


  헤롯은? 요한의 말을 듣고 괴로워 하면서도 헤로디아, 그러니까 동생 부인이자 곧 자신의 부인이죠 . 헤로디아와 헤어질 생각이 있다 없다? 없다 .


  그리고 일이 벌어집니다.


 어느 날 큰 잔치가 열렸다. 헤롯의 생일이었는데, 그가 고관과 장교들, 갈릴리의 주요 인사들을 초대해서 잔치를 열었던 것이다. 헤로디아의 딸이 들어와서 춤을 추자 헤롯과 그의 손님들은 크게 즐거워했다.

  왕이 소녀에게 말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내가 들어주겠다."

  왕은 소녀에게 거듭 맹세했다. "내게 무엇을 청하든 내가 들어주겠다. 내 왕국의 절반이라도 주겠다!"

  소녀가 나가서 어머니에게 말했다. "무엇을 달라고 할까요?"

  "세례요한의 머리를 달라고 해라." 어머니가 대답했다.

  그래서 소녀는 곧바로 왕에게 나가서 청했다. "지금 당장 이 쟁반에다 세례요한의 머리를 담아 주십시오!"

  왕은 당황에서 어쩔 줄 몰랐지만, 자기가 맹세한 말과 거기 모인 손님들 때문에 소녀의 청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왕은 곧 호위병을 보내서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호위병은 가서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어 쟁반에 담아 가지고 와서 소녀에게 건내 주었다.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주었다.

  요한의 제자들이 이 소식을 듣고 와서 그의 시체를 거두어다가 무덤에 묻었다.


  헤롯이 지금 무엇에 붙잡혔는지 아시겠습니까? 그는 말씀을 들어요 . 경청합니다 . 그러나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는 언제나 말씀을 배신합니다. 이유는 하나입니다 . 두려움 때문입니다 . 고관 대신들 앞에서 쪽팔릴 거 같다는 두려움. 이 두려움은 다른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합니다 .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에게 말씀을 전하는 세례요한이라도 상관없습니다 .


  헤롯은 부활을 믿지 않았습니다. 자기 자신이 소멸될 것이 두려워 , 자기 자신을 지키려고 끝까지 애쓰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


4.


이제 이 사건 이후의 일입니다.


헤롯의 추측(6:14~16)

  예수의 이름이 널리 알려져서 헤롯 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세례 요한이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났다! 그래서 그가 이런 놀라운 능력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헤롯이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는 엘리야다!"라고 말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는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과 같은 예언자다" 라고 말했다.

  그러나 헤롯은 "아니다. 그는 요한이다. 내가 그의 목을 베었는데 그가 살아났구나" 라고 말했다.


  헤롯이 느끼는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부활에 대한 두려움입니다 . 악인에게 있어서 부활만큼 두려운 것은 없습니다 . 죽이지 말았어야 할 요한을 죽이고 그는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그리고 멀리서 요한이 했던 얘기와 똑 같은 얘기를 하는 사람이 등장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 “회개하라 !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 헤롯이 느끼는 두려움이 어떠하겠습니까 ?

어기지 말아야 할 말씀을 버리고, 죄책감에 시달리다가 그 말씀의 주인공이 다시 이 땅에 부활의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사람들이 느꼈던, 그리고 느끼게 될 두려움과 마찬가지의 두려움 아니겠습니까 ?


  그렇다면, 권력자가 세례요한이 부활했다고 확신할 만한 소리는 어디에서 들려왔습니까 ?


  그리고 바로 이 지점입니다. 세례요한은 역사의 전달자였습니다 . 허나 , 역사의 전달자가 권력자의 손에 죽은 지금 , 바로 이 지점 , 마가복음은 세례요한의 죽음과 함께, 새로운 사람들을 소개합니다. 그들은 누구입니까 ? 세례요한과 같이 동일한 메시지를 가지고 , 아니 오히려 한층 발전된 메시지를 가지고 도처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역사의 전달자들입니다 .


  권력자는  역사의 전달자가 죽은 줄 알았는데, 사실 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세례요한이 부활해서 돌아다닌다고 착각할 만큼 , 역사는 다른 사람들의 의해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 예수가 길러냈던 사람들은 바로 그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 예수의 앞 뒤로 , 역사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 


  예수님께서 여행을 보낸 제자들의 메시지의 핵심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들은 나가서 회개하라고 선포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다스림, 예수를 온 몸으로 전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요단 간너 베다니에서 외치던 그 메시지는 무엇이었습니까? 왕의 길을 준비하라! 회개 하라! 동일한 메시지.


  오늘 여러분들이 예수와 관계 있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은 역사의 전달자로서 살아야 합니다. 그 역사의 전달자의 심장에 무엇이 있습니까? 헤롯에게는 없고, 요한에게는 있는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이것을 믿기 때문에 고난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기 때문에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기 때문에 권력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믿기 때문에 손에 잡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어도, 당당히 걸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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