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흥교회 초등부 첫번째 말씀
마가복음 10:13~15
사람들이 예수의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꾸짖거늘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고
오늘부터 어린이 하겠습니다
이 자리의 모든 어린이 여러분. 대답이 없네요. 어린이 여러분? 설마 이 자리에 '나는 어린이가 아닌데' 라고 생각하시는 분 계십니까? 하긴, 지금 이 자리에 앉아 있는 4학년 친구들 조차 '나는 다 컸다' 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2년전에 여러분들과 같은 초등학생들과 함께 예배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와 지금은 또 달라요. 아이들은 더 어른이 되버렸습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어린이 같지 않습니다. 너무 미리 커버렸어요.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이 가히 충격적입니다. 얼마전 저는 충격적인 단어를 어린이의 입을 통해 들었습니다. 여러분 질문 하나 합시다. '레즈'라는 단어 알아요? 네. 여기 계신 '어른' 여러분. 충격을 받으셔야 합니다. 요즘 어린이들은 이정도 입니다. 이 단어는 제가 임의로 정해온 단어가 아닙니다. 저와 대화하던 어린이의 입에서 들은 단어입니다. 불과 크리스마스 전날 말입니다.
마가복음 10:13~15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랐다. 그런데 제자들이 그들을 꾸짖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것을 보시고 노하셔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여러분, 성경책 잘 안가지고 다니죠? 읽지도 않는 성경책 가져오지 마세요. 그리고 제가 장담하기를, 여러분들은 읽어도 아직 이해할 수 없을 겁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흔하게 들고 있는 이 성경책은 중국을 통해 건네 받은 성경입니다. 원래 성경은 히브리어와 그리스어로 쓰였는데, 이것을 중국어로 한 번 번역을 했다가, 다시 한글로 바꾼 것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이에요. 그래서 한자어가 대단히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옛날 말투에요. 그래서 초등학생들은 들고 다니지도 않고, 들고 다녀도 읽을 수 없고, 읽더라도 이해할 수 없는, 그러한 책입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화면에 띄운 성경은 훨씬 읽기 편하죠? '새번역성경'입니다. 그리스어와 영어 성경을 오늘 우리가 쓰는 말로 바꾼 성경입니다. 지금 이 내용들 중에 이해가 안되는 내용있어요? 네. 4학년이면 충분합니다. 여기 있는 우리 모두는 말씀을 이해할 수 있고, 또 그 안에 있는 빛나는 보석이 무엇인지 발견할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안에 있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이 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어. 말씀은 생명입니다. 우리는 같이 갈 수 있습니다. 성경책이 아직 없는 친구들은 무조건 새번역 성경으로 사세요. 개역개정은 어린이에게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어쨋든, 다시 내용으로 돌아옵시다.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이유는 다른 것이 아니었죠. 예수님께서 어린이들을 쓰다듬어 주시기를 바랬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제자들이 소리를 지르죠. "아, 거기거기 뭐하는거에요. 당신 이 분이 누구신 줄 알고 그러는 겁니까? 지금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병자들 줄 선거 안보여요? 복음을 듣기 위해서 모인 수많은 인파들이 안보여요? 애들은 집구석에서 키울 것이지, 여기는 왜 데리고 왔어요?" 너무 심하죠? 그럴수도 있지.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올 수도 있지. 그런데 이것도 이해가 되는 것이, 예수님께서 이 대지 위를 육체로 걸으셨던 2000년전에는, 어린이는 사람으로 여겨지지도 않았습니다. 사람 숫자를 셀 때 어린이와 여자들은 숫자에 포함되지고 않았고, 당시 어린이들은 집안의 재산목록정도로 취급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상황속에서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온 사람들을 제자들이 뭐라고 꾸짖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죠.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거기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니, 어린이라니! 어린이가 아니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니!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는 알아야죠. 어린이와 같이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리면, 어린이가 무엇인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지 알아야죠.
그러나 오늘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말하려면, 점심 먹고 다시 모여도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확하지는 아니지만 대강 알고 있죠. 하나님 나라. 천국. 그 나라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같이 고민해봅시다. 그럼 오늘 우리가 고민하고,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어린이입니다. 도대체 어린이는 뭘까? 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을까? 어린이의 어떤 점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는 것일까? 나랑 어린이와 다른 것은 무엇일까? 어린이.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린이니까, 어린이의 대답을 들어봅시다.
저는 말씀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말씀에서 답을 찾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저의 제자가 그렇게 말했거든요. 저 역시 그런 사람입니다. 답은 말씀에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궁금했던 그 질문의 답은 마태복음에 써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8: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큰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이를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 이 사람이 진짜 어린이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입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 그리고 만약, 자기를 낮추는 어린이 같은 사람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는 모두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어린이 같은 사람. 그렇습니다. 어린이 같은 사람. 우리 모두는 어린이 같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보다 다른 사람이 잘 되길 바라는, 나보다 다른 사람을 좋게 보는 사람. 생각해봅시다. 어린이는 절대 어른들보다 자기가 낫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버지가 예전에 연을 자주 만들어주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연을 만들어주시면, 저는 옆에서 아버지께서 연 만드시는 걸 처음부터 끝까지 뚫어져라 쳐다봤습니다. 어린 나이에 그 모습이 얼마나 대단하게 느껴지던지, 대나무 살을 자르고, 네모 반듯하게 자른 달력에 붙여 만든 아버지 연은 언제나 우리 아파트보다 훨씬 높이 날았습니다. 신문지로 만든 제 키보다 길었던 꼬리가 정말 간지 철철이었죠. 연 만들기 뿐만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벽에 못을 박으셔도, 고장난 전축을 고치셔도, 어린 저에게는 다 대단해보이고, 다 배우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아버지가 뭘 만드시고 뚝딱 뚝딱 고치시는 날이면 저는 아버지 옆에서 떠날줄을 몰랐습니다. 내가 아버지보다 나을 거란 생각은 해본적도 할 수도 없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중학생이되고, 고등학생이되고,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생이되고, 어느 날 부터 아버지가 하시는 일이 못마땅 하게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오목천동에 소재한 저희 집에 처음 이사올 때, 베란다에다가 창고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근데 아버지께서 만드신 창고는 돈 주고 사람 불러서 만드는 창고보다 훨씬 못한 것이었습니다.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그냥 아버지도 돈 주고 사람 시켜서 하면 되는데, 왜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하시나' 그렇습니다. 저는 어른이 된 것입니다. 이제 아버지를 동경의 눈빛으로 바라보던 어린이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모두 어린이 일적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 어린이인 친구들도 있죠. 어린이는 다른 사람에게 배우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아직 잘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는 무례하지 않습니다. 자기 자신이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할 수 없는 사람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린이는 다른 사람을 혼내거나 구박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어린이는 다른 사람에게 혼나고, 구박을 당합니다. 자기 자신의 모습을 한 번 생각해봅시다. 우리는 어린이입니까? 어른입니까? 자기 말만 맞다고, 나만 잘되고 싶다고, 다른 사람을 밝고 올라서는 어른입니까? 아니면 자기 자신을 낮추는 어린이 입니까?
마가복음 10:14
예수님께서 단언하십니다. "예수께서 보시고 분히 여겨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우리 모두는 어린이이길 바랍니다. 그러나 안타까운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어린이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점점 어른이 되가고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키가 점점 더 커지고, 목소리는 굵어지고, 생각도 점점 자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점점 스스로 잘났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점점 어린이에서 벗어나고 있고, 하나님 나라와도 멀어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어린이 여러분, 우리의 몸과 생각이 어른이 되더라도 절대 잃어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놓쳐서는 안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른을 어린이되게 하고, 어린이를 진짜 어린이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것. 그 사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갑니다.
이것을 어려운 말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믿는 자들은 모두 종말론적 어린이다'. 믿는 자는 진짜 어린이가 되는 길에 서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입니까? 왜 우리는 이 어려운 것을 감당해야 합니까? 점점 어른이 되어가는 나는 왜 피터펜이 되려고 안간힘을 써야 합니까? 나만 잘 되고 싶은 나는 왜 남을 위해서 살아야 합니까? 높아지고 싶은 나는 왜 낮아지려고 바둥거려야만 합니까? 왜 우리는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가 되어야 합니까?
우리 다음의 말씀을 함께 읽고, 그 안에서 이유를 찾길 원합니다. 말씀으로 답을 찾는 우리, 반드시 이 말씀 안에서 그 답을 찾고 믿어 살아냅시다.
빌립보서 2:5~8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모습을 지니셨으나, 하나님과 동등함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서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습니다. 그는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분께서 나를 위해서 한 없이 낮아지셨으므로, 그 분께서 나를 위해 죽기까지 섬겨주셨으므로, 그 분을 믿고 그 분을 따르는 나 역시 마땅히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결심했습니다.오늘부터 어린이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날 위해 낮아지셨으므로, 나도 낮아지겠습니다. 예수께서 죽기까지 섬겨주셨으므로, 나도 사람을 섬기는 것에 인생을 걸겠습니다. 이렇게 살면, 나 어린이 맞습니다. 여러분, 어린이가 되길 원하십니까? 이 시간 하나님 나라의 어린이가 되길 바라는 사람은 아멘으로 대답하시기 바랍니다. 어린이가 되길 결심하십니까? 네. 이제 그럼 저도 여러분들을 어린이라 부르겠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어린이처럼 사는 일만 남았습니다. 어린이 여러분, 함께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