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복음서를 제대로 읽는 방법
9장을 열자마자, 성경의 장 구분이, 그리고 그간의 복음서 읽기가 얼마나 사건을 무시하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이는 그들에게 말하셨다.
”아멘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여기 서있는 이들 중 어떤 이들은
잠재력 안에서 그 하나님의 그 통치가 도래할 때까지
결코 죽음을 맛보지 않을 이들이다."
9장만 본다면, 이 예수의 발언이 언제, 어디에서 있었던 것인지 알 수 있는 단서가 전혀 없습니다. 그 단서들은 모두 8장에 있지요. 지난 시간 에피소드4에서 다뤘던 ‘필립포스 지역의 카이사레이아’로 가던 길에 하신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예수께서,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묻고,
-인자의 죽음과 부활을 말씀하셨으며,
-자신을 훈계하는 베드로를 훈계하셨고,
-파레시아, 자기부인에 이어 다니엘 7장을 인용
하셨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말씀에 이어서 저 9장 서두를 여는 '하나님의 통치'에 관한 발언이 이어지는 것이지요. 그리고 예수는 이 일이 자신과 동시대인들이 죽기 전에 벌어질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어쩌면 이 내용은 장 구분과 우리의 통념에 가려져, 정말 중요한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사유되지 못한 것은 아닐까요? 다니엘 7장의 성취, 인자의 죽음과 부활, 하나님의 통치가 도래하는 것은 모두 하나로 묶여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복음서를 연구하던 학자들 중에서는, 예수의 가상의 어록이 있을 것이라 전제하고, 그 어록을 각 교회의 편의에 따라 발췌 및 편집한 결과가 오늘날 우리 손에 주어진 사복음서라고 주장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연구는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 복음서 기자들이 사건을 충실히 증언한다는 생각보다는, 복음서가 어떤 과정과 방식으로 편집되었는지를 추적하고자 했습니다. 그리고 이토록 엇나간 연구는 '복음서가 말하는 초자연적인 기적은 불가능하다'는 전제 위에서 이뤄졌지요. 그리고 저와 여러분은 저런 류의 신학을 반성하며, '하늘의 것이 땅 위에 있을 수 없다'는 전제를 부정하고, 다시 복음서가 증언하는 '사건에 충실한 읽기'를 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어요.
-사건과 사건을 연결하여 더 큰 그림을 그리고(연결하여 읽기),
-제가 원문을 번역한 낯선 단어들로(낯설게 읽기),
-당대 현장으로 돌아가보자는 것입니다(상상하며 읽기)
그리고 무엇보다 그 어려운 시절에도 복음서를 통해 다음 세대들에게 무언가를 전해주려 했던 우리 선배들에 대한 두터운 신뢰를 갖고서 말입니다.
에피소드 1. 희미한 하늘과 땅의 경계, 죽고도 살아있는 사람들
이후 여섯 날이 지났다고 마가는 전합니다. “여섯 날이 지났다”는 표현에서, 우리는 유대인들의 오랜 이야기인 창세기의 첫 대목을 떠올리게 됩니다. 여섯 날 이후라면, 이제 벌어질 일은 창조세계를 누리는 안식입니다. 예수는 그날에 마치 세 용사와 함께 하는 다윗처럼, 세 명의 제자만을 데리고 산으로 오르셨습니다. 마치 하나님을 만나러 산으로 올라가는 모세처럼 말입니다. 이렇듯 오늘 첫 에피소드의 첫 문장은 구약성경 장면들의 집약, 마치 꼴라주를 보는듯 합니다.
예수는 그 산 위에서 신기한 광경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일단 그이의 겉옷이 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닌 것 같은 광채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것이 이 땅에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그이의 겉옷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신체가 행방불명되었던 두 사람이, 버젓이 멀쩡한 모습으로 예수 곁에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는 회오리 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 엘리야였고, 다른 하나는 느보산에서 아무도 모르게 죽은 모세였습니다. 사라진 이들은 어느새 나타나 빛나는 옷을 입은 예수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환영일까요? 아니면 실제 인간일까요?
이 충격적인 장면 앞에서 베드로는 생각을 정리하기 전에 말부터 튀어나왔습니다. 여기에 저 제 사람을 위한 집을 지어버리자고 말입니다. 후에 마가는 이 말에 대해 그가 잘 몰라서 아무 말이나 한 것이라고 논평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를 따라 산으로 올라간 세 명의 제자들이 공포에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때 하늘의 구름이 땅에 가까이 내려와 이들에게 드리워졌습니다. 그리고 구름으로부터 땅에 있던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출애굽의 하나님이, 이제는 제자들에게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나의 사랑 받는 아들이다,
너희들은 그의 말을 들으라.”
이 말은 세례 요한이 들었던 말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말 외에는 더 하실 말씀이 없는 것처럼, 이 예수를 자신의 대변인 삼으셨습니다. 이 말에 제자들은 급히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모세와 엘리야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예수만이 보였습니다. 만일 우리가 모세와 엘리야가 ‘하늘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 하늘과 땅은 금세 나타나고 사라질 수 있을만큼 가까울 것입니다. 마치 커튼 한 장으로 가려진 무대 안과 밖처럼 말입니다. 그럼 어쩌면 성경이 증언하고 있는 하늘이란, '현실과 동떨어진'이란 의미가 아니라, 현실과 아주 가까운 '현실의 이면'은 아닐까요?
예수는 이들을 이끌고 산에서 내려오면서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너희들, 다른 누구에게도 지금 본 것을 말하면 안돼.
하지만 인자가 죽은 사람들 중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일어나면,
그때는 이 일들을 너희도 다른 이들도 이해할 수 있을거야.“
오늘날 우리가 이 ”변화산 사건“이라 부르는 이야기를 전달받을 수 있는 것도, 저 ”인자가 죽은 사람들 중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일어났기 떄문입니다. 부활의 사건 이후에야 그 전에 있던 모든 에피소드들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우리가 보고 있는 글은 사건의 의미를 마침내 알게 된 사람들이 자신들의 무지했던 시절을 떠올리며 적은 글입니다(아마도 빙그레 웃으며😊). 이들은 변화산 사건 당시에는 그 사건의 의미와 예수의 말을 당췌 이해할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그때 고개를 갸우뚱하며 서로 묻다가, 이것만큼은 물어봐야겠다 싶어 예수께 질문했습니다.
”바리새인들과 문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한다’고 하던데요?“
예수는 바리새인들과 문법학자들이 말라기 4장의 예언대로 잘 말했다고 이야기 해주었습니다. 그 예언에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 전에 엘리야 예언자를 먼저 보내어 모든 사람들의 마음을 먼저 준비시킨다고 쓰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는 엘리야에 꽂혀있는 제자들이 엘리야보다는 ‘인자‘에 관심을 갖길 바라셨던 것 같습니다. 그이는 ”인자가 많은 것을 겪고 업신여김을 받는다“는 구절을 생각해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씀하시고도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는 또 충실한 답변을 주셨습니다. 그는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는 이미 왔으며,
-사람들은 그를 함부로 대했고,
-이것은 그에 관해 기록된 그대로라고 말입니다.
예수께서 이미 왔다고 말씀하신 엘리야는 다름 아닌 세례 요한을 가리킨 것이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언대로 왔으며, 그가 사람들에 의해 어려움을 겪고, 심지어 죽임당한 것은 예언대로였다고 말입니다. 이미 예수는 마가복음 6장에서 세례 요한의 죽음을 말씀하셨고, 8장에서는 예수를 '부활한 세례 요한'이라 보는 이들도 있었지요.
에피소드 2. 인자에게만 신실하면, 멸망하지 않아!
산에서 내려와 보니 나머지 나머지 아홉명의 제자들과 군중들이 소란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는 문법학자들이 있었습니다. 군중은 예수를 보자 우르르 달려와 인사했습니다. 예수께서 어색한 표정으로 서 있는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저들과 무슨 논쟁을 하고 있었어?’
그러자 군중 사이에서 어느 중년의 남성이 나와 말했습니다.
“가르치시는 분이여, 저는 제 아들을 당신께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말 못하게 하는 영이 제 아들을 짓누르고 있어서요. 제 아들이 그 영 때문에 거품 물고 쓰러지고, 이를 갈 뿐만 아니라, 파리해졌습니다. 당신은 없고 당신의 제자들이 있기에, 이 영을 내쫓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당신의 제자들은 그 영보다 강하지 않았어요.”
아마도 예루살렘에서 예수를 감시하기 위해 올라온 문법학자들은, 그이의 제자들이 아이를 고치지 못하는 것을 보고서, 예수는 인자일리 없다고 주장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 앞에 제자들은 우물쭈물하고 있었고요. 이 말을 듣고 예수는 제자들을 둘러보고 말하셨습니다.
“이 신실하지 못한 세대여,
언제까지 내가 너희들과 함께 있어야 하며,
언제까지 내가 너희들의 이런 모습을 견뎌야 하느냐!
얼른 그 아들을 내게 데려와!”
사람들이 아들을 데려왔습니다. 그 아들은 예수 앞에서도 증세가 멈추지 않았습니다. 경련이 일어나고, 땅으로 고꾸라져 거품을 물며 뒹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었습니다.
“얼마나 오래 된 거에요? 이 영이 아드님에게 있었던 것 말입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답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랬어요. 그래서 그게 우리 아들을 불 속으로 들어가게도 했고, 물 속으로 들어가게도 했습니다. 아들을멸망시키려고요. 그러나 당신이 하실 수만 있다면, 우리를 도와주세요. 우리에 대한 애끓는 심정이 있다면 말입니다.”
담담하게 시작된 아버지의 과거의 이야기는 점점 울먹임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유대인들은 사람을 괴롭게 하는 모든 것은 오래 전 노아의 홍수로부터 살아남은 거인족의 영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유대인의 오랜 책인 에녹서와 희년서에 보면 노아의 홍수 때 살아남은 1/10의 거인족의 후손들에게서 악한 영이 나와서 땅 위의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고 되어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아이의 아버지는, 자신이 거인족을 이길 수는 없다고 체념하고서 제자들을 찾아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그 아버지에게 예수께서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만일 당신이 하실 수만 있다면’ 이라고요?
가능한 모든 일들은 인자에게 신실한 사람에게 속했다는 것을 모르세요?
그이는 ‘아들이 멸망한다’는 말에서 병들어 죽게 된 아들과 자신의 임박한 미래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많은 것을 겪고 결국 동족에 의해 말뚝에 매달려 죽임당해야만 하는 자신의 미래를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제자들에게 재차 말씀했던 바 있습니다. 인자는 죽더라도 멸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고. 부활이라고 말입니다. 그 죽고 부활하는 인자에게 신실할 것을, 제자들에게 줄곧 요구했던 그이였습니다. 그이는 아이의 아버지에게도 인자에게 신실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에게 인자는 하늘의 하나님께 모든 대권을 승계 받는 존재입니다. 거인족 따위가 어떻게 해볼 수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인자에게만 신실하라는 예수의 말에 아이의 아버지는 화들짝 놀라고 무언가 결심한 표정으로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저는 지금부터 인자에게 신실하겠습니다.
신실하지 않은 저를 도와주세요!“
이 아버지의 고백으로 아버지의 과거와 현재가 두동강 났습니다. 예수는 이 아버지와 더 대화하고 싶었는데, 멀리서 예수 일행을 발견하고 달려오는 또 다른 무리를 보셨습니다. 더 이상 여유부릴 수 없다고 판단한 그이는 곧장 그 아이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말 못하고 듣지 못하는 영아, 내가 너에게 명한다. 당장 나가서 다시는 들어오지 말아라!“
그러자 아이가 소리치고 경련을 일으켰으나, 이내 잠잠해졌습니다. 사람들은 아이가 "죽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그 아들의 손을 잡아 일으켰고, 예수의 손을 잡은 아이도 힘을 주어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도 아이의 아버지와 유대인들은 거인족과 악령에 관한 이야기를 여전히 믿고 있을테지만, 그 이야기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야기보다 더 강력한 이야기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그 이야기란, 인자를 향한 신실함과 멸망하지 않는 아들에 관한 이야기, 죽어도 다시 일어나는 아들의 이야기, 즉 그들에게 현실로 드러난 이야기였습니다.
사람들에게 이 충격적인 사건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을 때, 예수는 집으로 들어가셨고 제자들도 조용히 따라 들어왔습니다. 얼마 전 예수께서 그들을 둘 씩 유대 마을들로 보내셨을 때만 하더라도, 그들은 많은 사람들을 고치고 사람들의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는 것이 그들에게 의아하기만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찾아와 조용히 물었습니다.
“왜 우리는 그걸 내쫓을 수 없었나요?“
그러자 예수께서 능청스럽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종족은 무엇으로도 나가게 할 수 없지. 기도가 아니라면 말이야.“
에피소드 3. 우리의 이데올로기를 허무는 말 좀 그만 하세요!
그리고 예수 일행은 그 집에서 나와 갈릴리를 가로 질러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곳을 지나가신다는 것을 누군가 알게 되면, 금세 많은 인파가 치료와 가르침을 바라고서 모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예수에게는 더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자들을 가르치는 일이었습니다. 그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거야.
그리고 그 사람들은 인자를 죽일거야.
그리고 그 죽임당한 인자는 삼일 후에 다시 일어날거야.“
이것은 예수의 중요한 가르침이었지만, 이 말을 들은 제자들의 몸은 바들바들 떨렸습니다. 인자는 다니엘 7장에 나오는, 하늘의 하나님께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승계 받는 우주의 왕입니다. 지금 유대의 지도자들은 그 인자에 힘입어 유대가 로마를 이길 것이라 믿고 있었고, 이 유대 안에서 인자를 모욕하는 것은 목숨을 내걸고 하는 말이나 다름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인자라고 말하는 사람이, 그 인자의 고생 뿐만 아니라 죽음을 서슴없이 말하다니! 게다가 예수는 이번만 그랬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자들은 그의 입에서 반복되는 저 인자의 죽음에 관한 말을, 불안해하면서도 애써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르는 그들이 바라는 것은, 인자와 함께 하는 영광이었지, 그 인자의 죽음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인자에게만 신실할 것을 요구하면서도, 인자의 죽음을 말하는 이상한 사람.
그 사람을 따라 제자들은 예수의 집이 있는 카르페나움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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