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성경아카데미> 장학금 심사에 제출했던 설교문(22/08/02)
A.
캄캄한 방 안에 호롱불 하나만이 빛을 밝히고 있습니다. 이 방 안에는 둘둘 말린 양피지들이 여러 개 놓여있고, 유대인 랍비처럼 보이는 한 사람이 그동안 자신이 써온 글들을 펼쳐보며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는 이 작업을 하면서도, '자신이 생각해도 이것은 너무 놀랍다'는 경이로움에 젖곤 했습니다. 그는 탄복하는 호흡을 내뱉으며 이따금 하늘을 응시합니다. 그러면서도 손에서 펜을 놓지 않고서, 이 작업의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가 단어들을 세심히 고르고, 그 단어들을 모아 짜임새 있는 글을 구성하고자 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 사랑하는 동족 유대인들에게 무언가를 논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고 나서, 그가 쓴 이 글이 동족 유대인에게 얼마나 울림이 되었는지, 얼마나 설득력이 있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신약성경> 중 한 권에 포함되게 되었습니다. 후대 사람들은 이 사람에 관하여 바울이라 하기도하고, 바울과 친한 다른 사람이라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사람은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는 것에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전하려는 열정만이 그의 글의 면면에 드러납니다. 그리고 같은 글이 오늘날 21세기의 청소년들의 손에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기록을 후대에 붙은 이름으로 부르는 데 익숙합니다. '히브리서'라고 말입니다.
B.
히브리서는 히브리인이라면 모를 수 없는 옛날 예언자들을 언급하는 것으로 논증을 시작합니다.
히브리서 1:1, 새번역
하나님께서 옛날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으나,
아마도 히브리 사람이라면 누구나 옛날에 활동하던 예언자들의 이름을 줄줄 댈 수 있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 가보면, 실제로 이스라엘 이야기의 빛나는 인물들이 나열됩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모세를 지나 라합,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사무엘 같은 이들 말입니다.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약속대로 어떤 상이 주어질 것을 믿고서(11:6,26), 모험을 시작한 이들입니다. 이들에게 주어질 그 상이란, 히브리서 안에서 "튼튼한 도시"라 불리기도 하고(11:10), "약속하신 것"이라 불리기도 하고(11:13), "더 좋은 곳"이라 불리기도 합니다(11:16). 그러나 이 사람들은 모두 약속된 것을 받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옛날"이라고 하면, 철 지난 것, 구태의연한 것, 이제는 적용할 수 없는 것, 버려도 되는 것으로 여길 때가 있지만, 적어도 성경은 옛 것을 평가절하하지 않습니다. 유대 이야기 속 등장하는 사람들은 옛날 사람이면서도, 자신들보다 오래된 이야기 안에서 소망을 발견한 이들입니다. 이 사람들은 그 조상들의 언약이 이뤄지리라는 것이라는 것을 증언했으며, 바로 이 이유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튼튼한 도시"와 "약속하신 것"은 여전히 성취되지 않은 미완의 것이었으나, 그저 옛 것이 아니라, 미래를 기대하게 하는 소망이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첫 문장의 남은 부분은, 오래된 소망을 붙잡고 있던 히브리인들에게는 눈이 휘둥그레질 반전의 결말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C.
히브리서 1:2, 새번역
이 마지막 날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의 충격이 담긴 이 문장은 “이 마지막 날”로 시작합니다. 이 마지막 날은 옛 것과 무관하게 시작된 새 날이 아니라, 옛 것의 결말로서 마지막 날입니다. 급류가 굽이치던 격동의 옛이야기의 강줄기들이 마침내 성취의 바다에 도달했다고 말하는 것이 바로 저 “이 마지막 날에는”입니다. 그럼 무엇이 달라졌나요?
열린성경교회 청소년들은 지난 설교들을 기억할 거예요. 우리는 지난 시간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을 들렀다 왔습니다. 그때 예언자였던 다니엘은 “이 말씀은 마지막이 올 때까지 은밀하게 간직되고 감추어질 것”이라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의 요한은 '아들이신 메시아 예수께서 계시 하신다'는 것으로 자신의 글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히브리서는 같은 의미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C'
히브리서 9:26, 새번역
...이제 그는 자기를 희생 제물로 드려서 죄를 없이하시기 위하여
시대의 종말에 단 한 번 나타나셨습니다.
이 “시대의 종말”이라는 말은 “마지막 날”과 같은 의미입니다. 즉 예언자가 고대했던 마지막 날은 마침내 아들을 통해 도래했고, 그 아들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 인간의 죄를 없애는 영원한 제사를 완성하셨습니다. 아들을 통해서 한 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는 사상 초유의 일이 “이 마지막 날”, “아들을 통해서” 벌어졌고, 이 일이야말로 옛 사람들이 고대하던 바로 그 일이었던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이스라엘이 새로워졌고, 그 새로워진 이스라엘을 가리켜 오늘날 우리는 그 의미를 모른채 너무 쉽게 부르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여러분, 곧 교회입니다.
B'.
그리고 이 용서 받은 이들의 나라는 이제 상속을 앞두고 있습니다. 아들을 따르는 이들이 상속받을 땅이 바로 히브리서가 말하고 있는 “튼튼한 도시”, “약속하신 것”, “더 좋은 곳”입니다. 그리고 같은 내용을 요한계시록의 요한은 다른 명칭으로 우리에게 소개합니다. “새 하늘과 새 땅”과 “거룩한 도시 새 예루살렘” 이라고 말입니다(요한계시록 21:1,2). 이렇듯 유대인의 옛 이야기는 끝나지 않고, 오히려 메시아를 통해 성취의 국면을 맞으며, 우리는 이 아들을 통해 새로운 창조세계를 상속받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날 드러난 위대한 전환입니다. 이로써 아들 이전에 있던 하나님의 사람들과 이후에 있던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결말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도 옛 사람들을 따라 바로 저 히브리서의 소망 안에 있습니다.
저 새 하늘과 새 땅을 한자로 하면 ‘신천지’인데, 이 신천지는 과천을 중심으로 한 사이비 이단 집단을 가리키는 표현이기엔 너무 아까운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저 이름은 구약의 옛 사람들이, 그리고 히브리서를 기록한 이가, 그리고 바로 우리가 고대하고 있는 소망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메시아께서 부활하셨듯이, 이 하나님의 창조세계 전체가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세계를 메시아와 함께 상속 받게 될 것입니다(히브리서 1:2).
A’.
이렇듯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은 모두 하나의 결말을 향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약속의 성취를 보지 못했던 옛사람들에게도 기쁨이요, 그 성취에 참여한 마지막 날의 사람들에게는 그보다 더 한 기쁨입니다. 기쁨에 기쁨을 보탠 이 위대한 이야기는 이제 우리의 이야기, 교회의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청소년 여러분, 히브리 기자가 이것을 알게 되었을 때(히브리서 13:8), 그가 어찌 탄복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그리고 또 그 옛이야기를 붙들고 사는 동족들에게 어찌 전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예수를 통해 우리가 용서 받고, 만물의 상속자가 되었다는 이 기쁜 소식을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에겐 더 이상 신내림 받았다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분을 통해 듣고 있기 때문입니다(히브리서 1:2). 우리는 세상이 달라질 것이라는 소문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아들을 통해 가장 위대한 결말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상속자인 저와 여러분에겐 이 결말에 합당하게 살아나가는 것만이 중요합니다(히브리서 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