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 법, 사랑

from 카테고리 없음 2022. 4. 24. 09:30

0.

  회복 이라는 이름 아래 모인 여러분, 오늘 우리는 회복은 무엇일까 함께 생각해 봤으면 싶습니다. 회복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이전의 상태로 돌아감'이라 되어있네요. 물론 건강했던 사람이 병이 들었다면, 그리고 그 사람에게 회복을 말했다면 회복이라는 뜻이 들어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신천지 경험자 혹은 피해자 분들에게 사실 회복이라는 말은 달리 이해되어야 합니다. 

 

  무신론이었다가 신천지를 접한 사람은 탈퇴 이후 다시 무신론으로 돌아갑니다.

  기독교인이었다가 신천지를 접한 사람은 탈퇴 이후 다시 기독교인이 됩니다. 

 

  이것은 회복이 아니라 제가 보기엔 '회귀'인듯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회귀는 신천지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신천지에서의 경험과 기억을 지울 수 없도록 남겨둔채, 여전히 괴로워합니다. 즉 과거의 상태로 돌아가려고하나 돌아가지지 않는 것, 그렇기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이 회귀인듯 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러한 회귀를 회복으로 오해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우리는 과거의 한 점이 아니라, 미래의 한 점으로 돌아가야만 합니다. 그것이 회복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시나요? 한 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또 함께 하는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 점 부끄러움이나 거짓 없이, 한 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함께 하는 이들을 사랑하는 삶이 제가 가고 싶은 한 점이고, 저는 이 점에 우리가 도달하고자 했을 때 비로소 회복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랑받고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기쁜 우리 말입니다. 이렇게 말하고나니, 회복을 원하는 사람은 이상하게도 '미래'로 '돌아가려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 회복된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는데 있어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1.

  고대 이집트에는 히브리 노예들이 있었습니다. 이 노예들은 이집트의 압제 속에서 힘겨운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흙벽돌을 굽고 파라오를 위한 건물을 세우며 말입니다. 이집트 사람들이 우상 숭배에 익숙했듯 400년간 이집트에 있던 히브리 노예들도 우상 숭배가 일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의 유명한 우상들을 하나씩 박살내시고, 그 우상 숭배의 땅에서 처음 난 것들을 모두 죽이겠다고 하셨을 때, 만일 이 법대로 하자면 히브리 노예들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저 양의 피를 문에 바르는 것만으로, 그들을 넘어가주셨습니다(사람이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이것을 "유월"이라 기념했습니다. 벌을 받아 마땅한 죄인들을 그저 용서해주시고, 두 번째 기회를 주셨다는 의미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한 분 하나님을 뵙게 되면, 사람은 죽게 된다는 것이 에덴 동산 이후 타락한 사람에게 주어진 법이었습니다. 심지어 모세에게 조차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시기를 '네가 나를 보면 죽게 될 것'이라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모세가 시내산에 당도했을 때, 그리고 하나님의 명에 따라 그들이 제물을 잡아 제사를 드리고, 그 제물의 피를 제단과 이스라엘에게 뿌렸을 때, 모세와 이스라엘의 대표 70명은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그 앞에서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즉 하나님은 자신이 정한 법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 활동하셨을 때, 법에 가장 심취한 이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자들을 고쳐주시자 그것이 옳은 것이냐며 따져 물었습니다(마태복음 12:10, "옳으니이까"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적법합니까?"가 더욱 적절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에는 일을 하지 말라는 것이, 저 시내산에서 명하신 하나님의 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루는 유대인들이 회당에 사람들을 모아놓고, 그 중에는 손이 마른 자를 데려다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오자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주목했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병을 고쳐주시면 안식일 법을 위반했다고 예수를 고발할 것이요, 예수께서 병을 고쳐주지 않으면 예수는 무능력하다고 손가락질할 심산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러한 음모에 아랑곳 않고서 그저 손 마른 사람을 회당 한 가운데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주위를 둘러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3:4~6, 새번역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악한 일을 하는 것이 옳으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옳으냐? 죽이는 것이 옳으냐?”

 

  예수의 일침에 회당 안은 잠잠해졌고, 예수는 회당 안에서 이 손 마른 사람을 이용해먹는 이들의 썩어버린 마음에 화가 나셨고 탄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손 마른 사람의 손을 고쳐주셨습니다. 그의 손이 "회복"된 것이지요. 그리고 이 법을 무시한 회복의 사건은 바리새파와 헤롯 당원들이 합심하여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즉 법을 무시한 회복 때문에, 예수는 유대 법정과 로마 법정에 회부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사도들 또한 이 '법에 의한 어려움'을 줄곧 겪었습니다. 그 중에 바울은 유대인들에게는 나사렛 이단 소리를 듣고, 로마인들로부터는 어리석은 사람이라 조롱받으며 로마 총독 앞에 끌려가 심문 당해야만 했습니다. 사도가 이러한 일을 겪은 것은 이유가 중요한데, 그것은 그가 모든 사람은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은 부활한다고, 그리고 예수는 그 부활의 첫 번째 사람으로 부활하신 것이라 외치고 다녔을 때, 유대인의 법은 그를 신성모독으로 고발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로마법에는 그럴 처벌할 명목조차 없었습니다. 그만큼 바울이 전한 소식은 법으로 적법하게 처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죄 없이 유죄 판결을 받거나, 법으로는 처리할 수 없거나.

 

2.

  법이 있고, 하나님의 소식은 그 법을 넘어섭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소식은 '법의 위반'이라는 형식을 띄었습니다. 그래서 범죄로 취급되나 범죄가 아니었습니다(순교는 이 법과 소식의 틈에서 벌어졌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회복시키는 것은 법이 아니라, 그 법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소식입니다.

 

  이집트의 노예들을 피를 보고 용서하셨듯,

  피뿌림 받은 모세와 이스라엘 대표들이 하나님의 얼굴을 마주하고도 죽지 않았듯,

  법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람을 사랑하셨던 예수처럼,

  그리고 부활을 말하다가 법이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던 바울처럼,

 

  우리는 법을 넘어선 사람들을 성경 속에서 만나게 됩니다.

 

3.

  후에 고린도 교회는 자신들의 분열과 어려움을 법정에서 해결하려다가 바울에게 호된 훈계를 듣습니다. 바울은 법대로 하자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6:7 
여러분이 서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부터가 벌써 여러분의 실패를 뜻합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당해 주지 못합니까? 왜 차라리 속아 주지 못합니까?

 

  그리고 다시 부활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6:14, 새번역
하나님께서 주님을 살리셨으니, 그의 권능으로 우리도 살리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활이란 죽음이라는 법을 넘어선 하나님의 결정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죽게 된다는 것도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요(히브리서 9:27), 하나님은 그 법에 의한 죽음인 십자가와 그 법을 넘어선 부활로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로마서 5:8). 우리의 하나님이 이러하시니, 우리는 법으로 우리의 회복을 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회복은 십자가와 부활의 예수를 닮자는 것이지, 법대로 하자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힘겹더라도, 마음이 어렵더라도, 끝까지 사랑하고자 했던 사람만이 법을 넘어 최후의 심판에서 옳다고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고자 하는 사람에게서 회복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몰라도 그저 사랑 하나를 붙든 그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십니다. 우리가 서두에서 말했던 "한 분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또 함께 하는 이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 점 부끄러움이나 거짓 없이, 한 분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 함께 하는 이들을 사랑하는 삶"은 법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사랑으로만 할 수 있습니다. 여기가 바로 우리가 오늘 도달해야만 하는 미래입니다. 바로 법의 테두리로 묶을 수 없는 사랑의 자리입니다. 법대로 하지 않으면서도, 법을 이룰 수 있는 가장 탁월한 길입니다. 바울이 말한 그대로 말입니다.

 

로마서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법의 완성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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