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진리교 경험자들과 무라카미 하루키 사이의 대화를 읽고 있다. 책 이름은 <약속된 장소에서>. 아래는 내가 밑줄 그엇던 문장들이고, 굵은 글씨는 원저자의 것이 아닌 나의 것. 

 

"경험적으로 혹은 직감적으로 그런 것을 취사선택하는 능력에는 묘하게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p 34.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자심감이 곧 완고함의 다른 면이다.

 

"어른이든 아이든 할머니든 여자든 남자든, 조금씩 모두와 친구가 되었습니다. 옴진리교 내부에서는 다들 정신적 향상을 첫번째 목표로 삼고 생활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마음이 잘 맞습니다." p. 45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목표야 말로 현대 사회에 결여된 것

 

"무책임하다기보다 애초에 '개개인의 책임'이라는게 전혀 없었습니다...정신적으로만 향상되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상관없다는 생각이죠...옴진리교에는 그런 게 전혀 없었습니다." p. 47

-세속화를 잊은 '다움'의 문제

 

"모두가 일상적으로, 심각한 현상에 동요하지 않는 상태에 도달해 있었던 겁니다...그러다보니 교단 사람들은 무심코 현세 사람들을 우습게 보게 되죠. 아, 저들은 하나같이 숱한 고통을 당하며 사는구나, 그렇지만 우리는 아무렇지 않다." p.48

-공간 속에 질식할 것 같은 이들을, 시간으로 속여 움직이게 만들더니, 다시 공간 위계의 탑을 쌓게 한다.

 

"간단히 말해 '굉장히 나쁜 일(옴진리교 지하철 사린 테러)'임을 더 강하게 인식한 사람은 탈퇴하고, '굉장히 좋은 일(옴진리교 안에서의 종교적 체험)'이라는 인식이 이긴 사람은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p.57

 

"아버지가 공산당원...내가 무슨 종교적인 의견을 입 밖에 내면, "무슨 신들린 소리를 지껄여"라며 철저하게 바보 취급 했습니다...내가 하는 일은 왜 하나도 인정해주지 않을까...병상의 아버지가 "한 번 탁 터놓고 얘기 좀 해보자"라고 했을 때, 저는 "제발 이제 그만 죽어주시죠"라고 대답했습니다." p. 66

 

"'이런 세상은 그리 오래가지 못해' 라고 마음속으로 느끼는 사람은 많을 겁니다. 특히 젊은 사람들, 아이들 중에요." p. 85

 

"하루키 : 저는 인간이란 블랙박스를 여는 작업과 그것을 그대로 억누르는 두 가지 작업을 동시에 행해야 하며, 그러지 않으면 여러 국면에서 위험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행범들의 발언을 들으며...해석과 직감의 공존이 없어요...해석만 하고 직감은 잠정적으로 누군가에게 맡겨버리는 겁니다...그렇기 때문에 다이너미즘을 지닌 아사하라가 이렇게 하라고 명령하면 노라고 대답하지 못하는 게 아닐까요." p. 111

 

"말하지면 무지막지한 고통을 당해 죽기 직전에, 극한에 이른 마지막 순간에 "잘 참아냈다"고 따뜻한 말을 던져주는 겁니다. 그러면 그 한마디에 '아아, 난 주어진 시련을 극복했구나. 구루여, 감사합니다!' 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p. 132

"그런데도 다들 '뭔가 숨겨진 의미가 있겠지' 하면서 묵인하는 겁니다." p. 133

 

"옴진리교를 단번에 끊어내고 현세로 돌아와 현세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탈퇴한 다른 사람들도 어떤 형태로든 모두 종교적인 부분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p. 139

 

"교단이 범죄를 일으켰다는 자각도 아마 없겠죠.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과 교단의 좋은 측면으로만 눈을 돌리고 있을 테니까요...그들에게 직접 부딪쳐본들 아마 점점 더 껍질을 굳히고 안으로만 파고들 겁니다. 조금씩이라도 사실을 드러내서 스스로 알아차리게 해나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p. 142

 

"글쎄요. 아무래도 지금까지 제가 생활하고 경험해온 옴진리교와 외부에서 말하는 옴진리교의 차이가 너무 커서, 제 안에서도 정리가 잘 안된다고 할지,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망설여져요." p. 168

 

"옴진리교의 책을 읽고 가장 기분이 좋았던 점은, '이 세계는 나쁜 세계다'라고 분명하게 써놓았다는 겁니다. 저는 그것을 읽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p. 181

 

"모두 똑같구나. 성적이 좋은 녀석도 나름대로 똑같은 고민을 하는구나. 뭐야, 결국 이런 거야 싶더군요...귀중한 체험이었죠" p. 191

 

"예를 들면 출가 수행자는 밖에서 다른 사람의 차를 받아도 미안하게 여기지 안아요. 자기는 진리의 실천자라며 상대를 내려다봅니다. 자기는 구제를 위해 서두르는 길이다. 그러다 부딪혀서 당신 차가 조금 찌그러진 정도는 내 알 바 아니라는 거죠." p. 191

 

"저도 출가했고요...스물다섯 살이다보니, 뭐 괜찮겠다 싶었죠." p. 216

 

"현실에서의 좌절이나 가정 불화 같은 것도 분명 옴진리교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하나의 원인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보다 큰 요인은 오히려 정도를 벗어난 이 세계에 대한 종말적 감정,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그런 느낌이 아닐까 합니다." p. 237

 

"종말은 옴진리교의 하나의 축입니다...로버트 리프턴이라는 종교학자가 "종말론을 교의의 중심으로 삼은 컬트는 많지만, 종말을 스스로 불러들여 직접 돌진해간 것은 움진리교 뿐이다" 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걸 보고서 고개를 끄덕였죠." p. 239

 

"종교적 탐구심과 구루에 대한 충성심이 교묘하게 뒤바뀐 겁니다." p. 242

 

"제가 느꼈던 점들을 숨김없이 모두 설명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다 에리코 씨가 말하더군요. "그건 우리돋 마찬가지예요. 그렇지만 구루를 따르는 것 말고 우리에게 다른 길은 없어요"라고..."어쨌든 구루를 믿고 따르는 수밖에 없어요"라는 겁니다. p. 245

 

"그렇지만 제아무리 강하게 저항하고 멈추려고 해도, 자아는 싫든 좋은 점점 무너져내립니다. 교단에 들어가면 위에서 여러 가지 일을 강요하고, "이런 것도 못받아들이나? 그것은 자네의 귀의가 부족하기 때문이야" 라고 계속 몰아붙이기 떄문에 어쩔 수 없이 꺾일 수 밖에 없습니다. 저는 그나마 가까스로 견뎌낸 편이겠죠" p.252

 

"공통되는 점은 일종의 그런 완고함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만, 아무래도 좋을 일에 완고하게 집착하고 외곬으로 매진합니다. 그래도 집중력을 쏟아 임하기 때문에 거기서 보람을 얻을 수 있는 겁니다. 교단 쪽은 그런 것을 교묘하게 이용했죠...옴진리교에서는 보람이 미끼인 셈이죠. 그래서 혹독한 수행을 시킵니다." p. 256

 

"옴진리교에서 말하는 종말론이란 유대, 기독교적 종말입니다...결국 기독교 신잗든 아니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종말론적인 기운을 짊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였습니다." p. 257

 

"그러한 바이러스 같은 종말론을 자기 나름대로 해체하고, 당신이 말하는 이른바 '현세'에서 다른 뭔가로 자연스럽게 치환해가지 않을까요?...아사하라 쇼코라는 사람은 그런 해체를 해날 수 없어서 결국 종말 사상에 무릎을 꿇지 않았나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손으로 위험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었다. 아사하라 쇼코라는 종교가의 종말론이 보다 큰 다른 종말론에 패배했다고 저는 느낍니다." p. 259

 

"(개인적으로) 낮의 세계와 밤의 세계가 있지요. 제가 출가할 마음까지 먹은 이유는, 낮의 세계에서는 제 안에 감춰져 있던 소망 같은 것을 도저히 해소할 수 없다고 인식했기 때문입니다...저는 옴진리교의 문을 열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바꿔 말하면, 내 마음속의 어둠을 만나는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나의 어둠 속 무언가가...백일하게 드러났다는 뜻입니다." p. 259

 

"일단 사건을 보통 사람의 장으로 되돌려서 전문용어를 다 걷어내고, 그 시점에서 사건을 새롭게 바라보는 게 많은 것을 드러내기 쉬울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p. 268

 

"악은...어디까지나 해석의 문제가 아닐까...결국 땅 위에 좀 더 굳건히 발 디디고 있는 '본능적인 커먼센스' 같은 것이 큰 힘을 발휘하지 않을까 합니다." p. 274

 

"저는 어디까지나 양해를 구한다는 조건하에 팩트보다는 진실을 택하고 싶습니다. 세계란 결국 각자의 눈에 비친 형상이라는 생각에서죠." p. 280

 

"나는 이상하지 않다. 보통사람은 다 이렇게 된다는 것 알면 편안해지죠" p. 281

 

"사건을 어떤 축으로 파악해야 할지가 좀처럼 풀리지 않았어요" p. 283

 

"저는 그것을 '스토리성'이라는 말로 받아들입니다...스토리의 축이 사라진 지점에 아사하라가 스토리를 들고 홀연히 나타났다는 거군요." p. 283

 

"스토리의 줄거리가 '사린을 뿌린다'는 구체적인 형태를 띄면, 그것은 명백한 악이 되어버립니다. 그 둘 사이에 어떻게 선을 그어야 할까요?" p. 284

 

"아이들은 정말 영리합니다. 스토리가 아무리 생생해도, 그것과 외적 현실 사이를 명료하게 조정하는 겁니다" p. 285

 

"아사하라가 내놓은 이야기가 그 사람 자신을 넘어서버리는 일도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가 없는 겁니다...자기가 만든 이야기에 자기 자신이 희생되어 버린다" p. 285, 286

 

"이야기의 깊이를 자아내는 것은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것입니다. 다만 그것을 총체적인 세계와 어디에서 조정해가느냐, 어디세어 선을 긋느냐, 그것이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p. 287

 

"그 파라노이드성에 대항할만한 유효한 백신 같은 이야기를 사회가 마련하지 못한 건 역시 문제가 있지요" p. 287

 

"이른바 전문적인 컬트 해체자처럼 '이쪽이 옳다, 저쪽이 틀렸다. 그러니 이쪽으로 돌아와라'라는 식으로 이론적으로만 밀어붙여봐야 해결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제 생각입니다만, 지금 세상은 뭔가 이상하다, 어딘가 잘못되어 있다고 느끼는 분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상입니다." p.290

 

"다만 그런 부정적인 영역을 삼키는 더 큰 긍정적인 영역이 있다면 더 잘될 거라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이야기를 수용하는 더 큰 이야기 말입니다. 결국 그것은 선악의 승부라기보다는 스케일의 승부가 될 것 같기도 하군요" p. 290

 

'선악을 초월한 영역'...그것은 지하철 사린사건에서 개개인이 입은 피해의 속성이, 그 사람이 전부터 자기 안에 가지고 있던 일종의 개인의 상처의 패턴과 호응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점입니다." p. 290

 

"옴진리교 쪽 사람들과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문제인식 같은 것에는 상당히 흥미가 끌린 게 사실입니다...반대로 <언더그라운드>에서 다뤘던 피해자에 대해 말하자면, 문제의식보다는 오히려 문제 자체를 처리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꼈습니다." p. 293

 

"자기 자신이 과연 어디까지 주체적으로 최종 책임을 지느냐 하는 점이겠죠...그들은 결국 그것을 구루나 교의에 떠넘겨버리는 겁니다...그것이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p. 294

 

"우리는 세계의 구조를 지극히 본증적으로, 차이니즈 박스 같은 것으로 파악하는듯 합니다" p. 294

 

"사람들은 입으로 '다른 세계'를 희구하지만, 실제 그들의 세계 성립 방식은 기묘하게 단일하고 평면적입니다. 어느 부분에서 전대가 멈춰버렸어요...그가 하는 말은 하나의 상자에서만 통용되는 말이자 논리입니다. 그 바깥으로는 절대 연장되지 못하죠...상대가 그를 말로 무너뜨릴 순 없습니다...그러나 옴진리교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조유씨처럼 머리 좋은 사람이 없다고 말합니다. 무조건 존경합니다." p. 295

 

"대개는 선의를 가진 사람이 무지막지하게 사람을 죽이기도 합니다...정의를 위한 살인은 어마어마한 대량살상이죠...그 옴진리교 사람들 역시 여튼 좋은 일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니까요." p. 296

 

"사람들은 그 사람들을 배제시키면 사회가 건전해진다고 믿고 있어요.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오늘날 사회에는 그런 장소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p. 300

 

"그 사람들에게 그만두라고 하려면 그 대신 무엇을 하면 좋을지 대책이 있어야겠죠...그 아이가 앞으로 살아갈 세계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는 한," p. 300

 

"전부 말끔하게 설명이 되는게 그 사람들한테는 중요한 거군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전부 설명이 되는 논리 따윈 절대 안돼요." p. 302, 303

 

"그러다보면 아사하라 쇼코까지는 아니어도, '내가 어떻게 해주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면 끝입니다." p. 304

 

"스스로 점점 모르게 되는 수행을 해온 것 같습니다." p. 304

 

"그런 사람들을 위한 유효한 기관 같은 것을 만들 수 있을까요?" p. 305

 

"보조금을 줄 테니 그저 즐겁게 살아만 달라는거죠" p. 305

 

"(옴진리교는) 팽창하면 팽창할수록 내부의 집약점 같은 곳에 가해지는 압력이 커져서, 그것을 밖으로 분출하지 못하면 폭발해버린다는 거죠...그러니 어쩔 수 없이 외부를 공격하게 됩니다...그것은 외부에 늘 악을 상정해두지 않고서는 견뎌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p. 307

 

"중심점에 열이 집중되어버리죠. 그런데 바깥쪽에서는 그걸 알아채지 못해요. 대부분의 신자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바퀴벌레 한 마리도 안 죽이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인간을 죽입니까?" 라고. p. 308

 

"현대인들은 아무래도 신체성에서 벗어나버렸고...옴진리교 사람들은 신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면서 요가를 하는 겁니다...그런데 그런 각성된 의식과 평범한 일상생활 사이에 연결고리가 없는 겁니다." p. 314

 

"경직된 조직만 안 만들면 됩니다" p. 318

 

"지시가 없다는 건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고, 그들에게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인 상태인 셈이죠" p. 320

 

"자유가 얼마나 멋지도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가르치는 게 교육의 근본입니다." p. 320

 

"그들이 어쨌거나 일반 분들보다는 높은 정신 수준에 올라 있다는 선의식을 여전히 품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p. 323

 

"결과적으로는 악몽으로 전환해버렸다 해도, 그 빛이 내뿜는 눈부시고 따뜻한 초창기의 기억은 지금도 그들 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으며, 그것은 다른 뭔가로 쉽게 대체될 수 없기 때문이다." p. 325

 

"'그 사람들은 엘리트임에도 불구하고'라는 문맥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트이기 때문에 그 쪽으로 쉽게 넘어간 게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p. 326

 

"그 무언가가 올바르고 입체적인 역사 인식이었다는 것을 지금은 알 수 있다...거기에 결여되어 있던 것은 말과 행위의 동일성이었다...폭넓은 세계관의 결여와 그로부터 파생된 말과 행위의 괴리다." p. 237, 238

 

"자기들이 몸에 익힌 전문기술이나 지식을 좀 더 깊이와 의미가 있는 목적을 위해 활용하고 싶다는 생각이 아니었을까, 그들은 대자본과 사회 시스템이라는 비인간적으로 공리적인 물레 속에서, 그런 자신들의 자질이나 노력이 - 그리고 그들 자신의 존재 의미까지도 - 허무하게 으깨지고 깎이는 것에 깊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p. 328

 

"혼란이나 모순을 배제해버리면 그것은 이미 현실이 아니다." p.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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