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모스

from 예언들 2021. 6. 6. 11:57

  신약의 아모스 언급은 생각나는 건 다음의 경우들.

 

-아모스 3:7의 "그 종 예언자들"이 계시록 10,11장의 요한의 계시 속에

-아모스 5:18의 "야훼의 날"은 어느 한 부분 인용이라 말할 수 없고

-아모스 5:25,26의 "이스라엘 타락"이 사도행전 7장 스데반의 말 속에

-아모스 9:11,12의 "그 날에 다윗 장막의 재건"이 사도행전 15장의 야고보의 말 속에

-아모스 9:15의 "씨 뿌림"이 마태복음 13장 예수의 비유에

 

  명시적으로 인용된 것을 넘어 '인유'와 메시지의 문맥을 생각한다면, 아모스의 물줄기는 신약성경 면면에 흐르고 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관심을 덜 받은듯 해.

 

  드고아의 목자인 아모스는 지진 2년 전(B.C.760년으로 추정, 아모스 이후 200년 뒤 스가랴 14:5 "웃시야 때 지진" 언급)에 계시를 경험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맡겨진 말을 전하기 시작한다. 예언자는 직업이 아닌 것(아모스 7:14,15). 그저 말이 맡겨지면 자신의 직업이 무엇이든 말을 해야하는 것이다. 그럼 그에게 맡겨진 말(예언)이란 어떤 내용일까? 한 장으로 정리 쌉가능.

 

  그가 예루살렘에서 외친 맡겨진 말은 "예루살렘 주변 도시의 서너 가지 죄"로 시작된다.

 

-다마스쿠스가 지은 서너 가지 죄(1:3~8)

-두로가 지은 서너 가지 죄(1:9,10)

-에돔이 지은 서너 가지 죄(1:11,12)

-암몬이 지은 서너 가지 죄(1:13~15)

-모압이 지은 서너 가지 죄(2:1~3)

 

  그리고 유다와 이스라엘이 지은 죄가 차례로 등장한다. 인류의 타락을 해결하기 위해 부름받은 언약 백성이, 그들과 같은 죄목으로 야훼로부터 고발당했다. 이것은 바울의 로마서 1~3장을 떠올린다. 문제 해결을 위해 부름받은 이들 마저도 타락해버린, 한층 더 깊은 위기 상황.

 

-유다가 지은 서너 가지 죄(2:4,5)

-이스라엘이 지은 서너 가지 죄(2:6~8)

 

  야훼는 유다와 이스라엘을 치지 않고, 오히려 아모리 사람들을 심판했다. 야훼는 이 유다와 이스라엘은 오히려 이집트에서 구해주시고 40년 광야에서 돌보셨으며, 예언자들과 나실인이 배출되는 나라로 삼아주셨다. 그러나 언약 백성은 오히려 나실인에게는 포도주를, 예언자에게는 예언을 금했다(2:12). 이 '언약 백성 안에서 예언이 금지된 상황'은 예언자도 아닌 아모스가 예언을 해야 하는 당위를 부여한다. 당시 예언자가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예언은 사라졌다.

 

  고로 언약 백성에게도 심판이 임박했다. 3장부터는 이스라엘에 관한 심판의 메시지가 이어진다. 4장까지. 5장에서는 이스라엘에 관한 하나님/아모스께서 지으신 애가가 등장하고, 회개의 요청이 이어진다. 이 돌아섬의 요청은 이스라엘의 멸망이 임박했기 때문(6장). 그 멸망은 환상들로 이미지화되는데,

 

-첫째는 메뚜기 재앙의 환상이다(7:1~3).

-둘째는 가뭄의 환상(7:4~6)

-셋째는 다림줄의 환상(7:7~9). 다림줄은 하나님의 기준이고, 그 기준이 언약 백성의 성벽에 놓였다.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이 성벽은 허물어져야 하고 언약 백성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환상 이야기의 한 가운데 삽입된 내용이 등장하는데, 아모스가 비판한 베델의 제사장 아마샤가 아모스의 비판에 반박한다. 7:10부터. 아모스도 거기에 대답한다. 7:14부터. 이 아마샤와 아모스의 논쟁이 환상 장면 한 가운데 삽입해놓은 의도를 생각해보라. 예언은 곧 언약 백성이 언약 백성 답지 않다는 내부 고발이고, 이것은 언약을 성취하려는 하나님의 의지로부터 언약 백성이 벗어나고 있다는 경고였다. 임무의 망각. 따라서 예언이 임무를 잊은 이들의 반발을 만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넷째 환상이 이어진다(8장).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의 환상. 그리고 여름 과일이 다 익어버렸듯이,  "그 날이 온다".

-다섯째 환상은 성전이 무너지고, 언약 백성이 전멸하는 환상(9장). 

 

  그런데 9:11부터 다윗의 장막이 일어서는 반전이 이어진다. 뿌리 뽑히지 않는 씨 뿌림이 결말로. 그리고 갑작스럽게 아모스의 예언은 멈춘다.

 

 

 

*아모스의 메시지는 이렇듯 명료하다. 예루살렘 멸망과 일어서는 다윗 가문, 예수와 그의 나라.

*그럼에도 아모스가 잘 전달되지 않았다면, 설교라는 형식이 이것을 너무 잘게 잘라놓아서 복잡한듯 만들어놓았기 때문이 아닐까? 위 디오니시오스의 복잡 다단한 위계가 신비로 위장되었던 것처럼, 잘게 쪼개진 메시지는 문맥을 잃고 권력에 봉사하도록 왜곡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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