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나 벤츄라의 <itinerarium mentis in deum>의 라틴어 원문과 두란노 <기독교 고전 총서 - 중세 후기 신비주의>에 나오는 번역을 비교해보겠다. 번역자는 제목을 "하나님을 향한 정신의 여정"이라 번역했다. 순서는 책에 번역된 문장을 쓰고, 그에 상응하는 라틴 문장을 쓰고, 그 뒤에 라틴 원문을 개인적으로 번역한 사역을 써두겠다. 그리고 '*'는 번역자의 번역의 문제점을 기재하겠다.
1-1.
번역문(p.168) :
"눈물의 골짜기를 관통하여 그가 정한 목표를 향해 순례를 시작할 때, 당신에게서 도움을 얻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원문 :
Beatus vir, cuius est auxilium abs te,
ascensiones in corde suo disposuit
in valle lacrymarum, in loco, quem posuit.
개인번역 :
복된 사람, 그에게는 당신으로부터의 도움이 있고,
자신의 마음(심장) 안에 (위로) 나아감들을 놓으며
눈물들의 골짜기 안, 그 곳에도 그는 그렇게 한다.
*위의 구절은 시편 84편의 라틴 성경의 인용으로, 한 사람이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심장에 나아감을 놓고, 눈물 골짜기에도 나아감을 놓는다는 내용이다. 즉 '신의 도움-인간의 심장-역경 속 인간의 걸음'의 순서로 기록되었다. 그러나 번역문에는 이러한 의미가 소실되어 있다. 마치 그저 순례를 시작하기 전 도움을 받는 사람이 복되다는 식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1-2.
번역문 :
행복은 최고선을 소유하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며, 최고선은 우리 위에 있는 까닭에, 자신을 넘어 초월하지 않는 자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물론, 사람의 이러한 초월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과 마음의 초월이다.
원문 :
Cum beatitudo nihil aliud sit, quam summi boni fruitio;
et summum bonum sit supra nos:
nullus potest effici beatus,
nisi supra semetipsum ascendat,
non ascensu corporali, sed cordiali.
개인번역 :
복은 다른 것이 아니라, 최고선의 누림이다;
그리고 최고선은 우리 위에/너머 있으며,
누구도 복을 내놓을 수 없다,
오로지 그는 자기 자신을 너머 상승할 뿐이다,
물리적인 상승이 아니라, 코르디알적인 상승이다.
*행복이라는 번역어는 beatitudo가 가진 언약과의 연관성을 박탈시킨다.
**fruitio의 의미가 번역문에는 빠져있다.
***cordiali가 번역에서의 핵심인데, 이 단어는 라틴 사전에도 나오지 않는다. 번역자는 무엇을 보고 "정신과 마음"이라 자신있게 번역했을까? 그것도 "물론"이라는 원문에 없는 말을 삽입하며 자신있게 말이다.
1-3.
번역문 :
인간으로서 스스로를 초월하는 것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그는 반드시 초자연적인 힘에 의해 도움을 받아야 하며 그를 일으키기 위해서 몸을 구부린 보다 고차원적인 힘에 의해 고양되어야 한다. 그래서 아무리 한 인간의 내적 행로가 많이 조직되고 진보가 이루어진다고 하더라도, 위로부터의 도움이 동반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원문 :
Sed supra nos levari non possumus
nisi per virtutem superiorem nos elevantem.
Quantumcumque enim gradus interiores disponantur,
nihil fit, nisi divinum auxilium comitetur.
개인번역 :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우리 너머로 돌려놓을 수 없다
더 우월한 힘을 통해 우리가 올려질 때를 제외한다면 말이다.
즉 내적 걸음들이 얼마나 많이 놓였든지 간에,
될 수 없다, 신적인 도움의 조력 없이는 말이다.
*번역자는 supra도 ascendat도 "초월"로 번역하고 있다.
**"초자연적인", "고차원적인"이라는 번역어는 원문과 무관하다.
***"그를 일으키기 위해서 몸을 구부린 보다 고차원적인"이라는 번역은 대체 무엇을 보고 그렇게 번역한 것일까? 상상조차 되질 않는다.
****간단한 네 개의 문장이 번역자에 의해서 어떻게 꼬이고 있는지를 확인해보라.
1-4.
번역문 :
독실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그것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그리고 눈물의 골짜기 안에서 그것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신적인 도움은 가까이에 있다.
이것은 열렬한 기도에 의해 이루어진다.
원문 :
Divinum autem auxilium comitatur eos
qui petunt ex corde humiliter et devote;
et hoc est ad ipsum suspirare in hac lacrymarum valle,
quod fit per ferventem orationem.
개인번역 :
그러나 신적인 도움은 마음으로부터 겸손하게 엎드려 구하는 이들을 돕는다;
그리고 이것은 그 눈물들의 골짜기 안에서 한숨 짓는 이들을 위해 있는데,
그것은 타오르는 기도를 통해 있는 것이다.
*suspirare를 한숨 짓다로 번역할지, 사모하다로 번역할지의 차이를 제외하면, 이 문장의 번역은 그나마 양호한 편이다.
1-5.
번역문 :
기도는, 그러므로, 하나님을 목표로 삼는 모든 위를 향한 나아감의 원천이며 기원이다.
원문 :
Oratio igitur est mater et origo sursum-actionis.
개인번역 :
그러므로 기도는 위를 향한 실천의 기원이며 어머니이다.
1-6.
번역문 :
그런 까닭에, 디오니시오스는 그의 "신비 신학"에서 말하기를,
영혼의 이러한 초월적 작업들을 우리에게 가르치기를 바랄 때,
기도는 첫 번째 조건으로 간주된다고 했다.
원문 :
Ideo Dionysius in libro De mystica theologia volens nos instruere ad excessus mentales,
primo praemittit orationem.
개인번역 :
그래서 디오니시오스는 <신비 신학에 관하여> 라는 책에서
우리에게 정신의 바로잡음(excessus mentales)에 관해 가르치길 바라며,
기도를 가장 처음에 놓았다.
*번역에 있어서 중세부터 새로이 사용되었던 개념들이 사전에 등재되지 않아 애를 먹었다. 예컨대 excessus mentales에 관해서 한참을 찾아본 뒤에 mentalis excessus를 "정신의 바로잡음"이라 번역하고 오해를 막기 위해 괄호로 원문을 표기해두었다. 그런데 번역자는 다시 "초월"이라는 번역어로 쉽게 처리한다.
1-7.
번역문 :
그러므로 우리 각자가 힘을 다하여 기도하며 우리 주 하나님께 말하자.
"오 주님, 내가 당신의 진리 안에서 걸을 수 있도록 당신의 길로 나를 인도하소서.
내 마음으로 하여금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함을 기뻐하게 하소서."
원문 :
Oremus igitur et dicamus ad Dominum Deum nostrum:
Deduc me, Domine, in via tua,
et ingrediar in veritate tua;
laetetur cor meum, ut timeat nomen tuum.
개인번역 :
그러므로 우리 주님이신 우리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고 말하자.
"나를 당신의 길 안에서 이끄소서, 주여,
그럼 제가 당신의 진리 안에서 걷겠습니다.
저의 마음(심장)이 기뻐하렵니다,
그래서 저의 마음이 당신의 이름을 경외하게 될 것입니다."
*본문에서 명령어는 "이끄소서(번역문에서는 '인도하소서')" 하나 뿐이다. 나머지 동사들(걷겠습니다, 기뻐하렵니다)는 모두 종속절로 쓰였고, 주어의 각오를 표명하는 동사들이다. 그러나 번역문에는 그러한 고려가 없다.
**길'로' 인도하는 것이 아닌 길 '안에서' 인도하는 것이다. via가 abl.이기 때문에.
***번역자는 "두려워함을 기뻐하게 하소서"라는 이상한 문장을 만들었는데, 원문은 원인과 결과로 연결된 문장들이다. 그리고 timeo를 경외가 아닌 두려워하다로 번역한 것도 문장을 어색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
****문장에는 논리 및 시간의 순서가 있다. 즉 1) 신은 뜨겁게 기도하는 자를 자신의 길 안에서 이끌고, 2) 인간은 그 진리 안에서 걸으며 기뻐하게 된다. 3) 그리고 그 결과는 신의 이름을 경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를 번역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