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4장을 연구하는 중입니다. 오늘은 병행본문인 마가복음 13장을 살펴보며, 우리가 마태복음 24장을 읽은 방식이, 병행본문에도 적용되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일단 마태복음 24장을 다음과 같은 얼개로 요약을 해보았습니다.
1. 파루시아와 현시대에 대한 제자들의 질문(24:1~3)
2. 끝이 오기 전에는 : 산통의 시작(24:4~14)
-거짓 메시아들의 출현
-전쟁 소문과 서로 팔아넘김
-심문당함 중에 모든 민족에게 증언
-끝 속으로 견디는 이에게 구원
3. 끝이 오면(24:15~22)
-멸망의 가증한 것
-도망가라
-예루살렘의 파멸
-그 날의 단축
4. 거짓 메시아들과 승천하시는 인자(24:23~35)
1. 끝에 대한 '제자들'이 아닌 '한 제자'의 질문
마가복음 13:1~37, 개인번역
그리고 그이가 그 성전으로부터 떠날 때, 그이의 제자들로부터 하나가 그이에게 말했다.
"선생이여, 이런 돌들과 이런 건축들을 보소서."
그리고 예수께서 그에게 말했다.
"너는 이 큰 건축물들을 보느냐?
돌이 (결코 멸망하지 않을) 돌 위에서
결코 남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이가 그 성전 맞은편의 올리브들의 그 산 속으로 앉으셨을 때,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가 사적으로 그이에게 물었다.
"우리들에게 말하소서, 언제 그것들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어떤 표적이 있겠습니까, 모든 그것들이 끝나려고 할 때 말입니다."
전반적으로 마태복음 24장과 대동소이합니다. 예수는 유대 성전 공동체의 타락에 대해서 비판하셨고, 이제 그들의 중심인 헤롯 성전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의 의도를 전혀 알지 못한 채 화려한 건물을 칭찬했습니다. 마태복음과 차이가 있다면, 마태복음에서는 "제자들"이 건물 성전을 자랑했지만, 마가복음에서는 유독 "제자들로부터 하나"라고 한 명이라 딱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마가복음이 저격하고 있는 그 제자는 마가복음 저술에 큰 영향을 끼친 베드로가 아닐까 싶습니다. 일단 베드로가 먼저 말하고, 나머지 다른 제자들이 동조했지만, 베드로는 일단 그 발언의 출처는 자기 혼자였다고 말하는게 아니었을까요?
일단 두 가지를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하나는 예수는 건물이 돌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무너진다고 말씀하신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 성전 공동체는 "결코 멸망하지 않을 돌"이신 예수와 연결되어 지어질 수 없는 "멸망할 돌"입니다. "멸망할 돌"은 그 멸망할 돌을 오히려 깨뜨리러 오신, 자연석 예수 위에 결코 얹어질 수 없을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4장에서는 언급되지 않았던, 올리브 산에서 예수를 개인적으로 찾아왔던 제자들의 이름이 마가복음에서는 명시됩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과 안드레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질문이 마가복음에서는 마태복음과 좀 달리 쓰였습니다. 마태복음에서는 "당신의 파루시아"와 "이 시대의 끝"이라 되어 있었습니다. 이때 "당신의 파루시아"는 "마침내 시온으로 돌아오시는 하나님의 귀환"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이 시대의 끝"은 올람하제가 종결되고 올람하바가 시작된다는 유대의 시간관을 반영한 표현이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파루시아"나 "이 시대" 같은 단어들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음과 같이 물을 뿐입니다.
1) 언제 건물 성전이 무너질 것이며
2) "모든 것들이 끝나려고 할 때" 어떤 표적이 있을 것인지
"모든 것들이 끝나려고 할 때"가 바로 파루시아와 현시대의 끝을 의미하는 표현입니다. 예루살렘에 돌아오신(파루시아) 하나님은 모든 것을 심판하고(현시대의 끝), 오는시대를 시작합니다. 이 하나님의 귀환과 악의 심판이 가시화되는 장소가 바로 성전입니다.
2. 끝이 오기 전에는 : 복음 포고에 관한 자세한 기록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했다.
"너희들은 누가 너희들을 속이지 못하도록 주의하라/보아라.
많은 이들이 나의 그 이름으로 올 것이다,
그들이 '바로 나다'라고 말하며, 많은 이들을 속일 것이다.
그런데 너희들이 전쟁들과 전쟁들의 소문들을 듣거든,
크게 소리지르지 말아라.
되어야만 하지만, 그러나 그렇게 끝은 아니다.
왜냐하면 민족이 민족 위에 일어날 것이고,
나라가 나라 위에 일어날 것이며,
장소들을 따라 흔들림들이 있을 것이고,
기근들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들이 산통의 시작이다.
마태복음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거짓 메시아들이 출현하고 많은 이들을 속입니다. 전쟁의 소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놀라지 말아야할 것은, 아직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나라 위에, 민족이 민족 위에 일어날 것이고, 지진과 기근이 있을 것입니다. 마태복음에는 기근이 먼저 언급되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내용은 아주 비슷합니다. 그리고 "산통의 시작"이라는 표현은 양쪽 모두 등장합니다.
그런데 너희들이 스스로 주의하라/보아라.
그들이 너희들을 공회들 속으로 팔아넘길 것이고,
회당들 속으로 거칠게 다룰 것이고
지도자들과 통치자들 곁에 세울 것이다
나 때문에, 그들에게 증언을 위해서.
그리고 먼저 모든 민족들 속으로 그 복음이 포고되어야 한다.
그리고 팔아넘기는 이들이 너희들을 이끌면,
너희들이 무엇을 말할지 미리 걱정하지 말고,
오히려 바로 그 시간 안에서 너희들에게 주어질 그것을
너희들이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너희들이 말하며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거룩한 숨님이 (말하며 계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형제가 형제를 죽음 속으로 팔아넘길 것이고,
아비가 자식을 (죽음 속으로 팔아넘길 것이다),
그리고 자식들이 부모들에게 맞설 것이고 그들을 죽일 것이다.
그리고 너희들은 모두에 의해 미움받게 될 것이다, 나의 그 이름 때문에.
그런데 끝 속으로 견디는 이, 바로 그가 구원받을 것이다.
그런데 위의 내용, 서로 팔아넘길 것이고, 제자들이 심문으로 끌려가는 중에 증언이 이뤄질 대목은 마태복음보다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팔아넘기는 이들이 이끌면...나의 이름 때문에"는 마태복음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모든 민족들 속으로 그 복음이 포고"되는 것이 어떠한 의미인지 더 자세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찌되었든 마가복음 본문은 마태복음 24:4~14의 끝이 오기 전 상황에 대한 진술과 거의 유사했습니다.
-거짓 메시아들의 출현
-전쟁 소문과 서로 팔아넘김
-심문당함 중에 모든 민족에게 증언
-끝 속으로 견디는 이에게 구원
3. 도망갈 수 있도록 단축된 끝
그런데 너희들이 "그 황폐함의 그 가증한 것"이 서지 말아야 할 곳에 선 것을 보면,
(읽는 자는 깨달으라), 그때 유대에 있는 이들은 산들로 도망가라,
그런데 지붕 위에 있는 이들은 내려오지 말고
자신의 집에서부터 무언가 들고자 들어가지도 말아라,
그리고 경작지 속에 있는 이는 자신의 겉옷을 들고자 뒤들을 돌아보지 말아라.
그런데 화로다 바로 그 날들에 속한 태중에 가진 이들에게와 젖먹이들에게.
그런데 너희들이 기도하라 그것이 겨울에 되지 않도록.
왜냐하면 바로 그 날들이 압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압제는 창조세계의 시작에서부터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 창조세계를 님께서 바로 지금까지 지으셨고 그런 압제가 결코 되지 않았다)
그리고 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단축시키지 않으셨다면,
모든 살몸이 보존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골라내신 선택된 이들을 통해서/때문에 그분은 날들을 단축시키셨다.
마가복음에는 "황폐함(멸망)의 그 가증한 것"이 다니엘의 말이라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성전을 "거룩한 곳"이라고 표현한 마태복음과는 달리 "(황폐함의 가증한 것이)서지 말아야 할 곳"이라고 기록했습니다.
큰 내용은 도망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끝이 오기 전에는 심문 속에서도 증언하며 견디지만, 이제는 도망갈 때가 온 것입니다. 마태복음과 동일합니다. 끝은 예루살렘의 멸망입니다.
마가복음은 "압제"가 바로 "그 날들"이라 말합니다. 즉 '하루'가 아니라, 예루살렘 멸망으로 치닫는 일련의 기간을 가리키는 표현이 '압제'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압제의 기간을 주께서 단축시키실 것이라는 진술도 마태복음과 동일합니다. 그 단축 때문에, 님께서 골라내신 그 선택된 이들이 그 산통 속에서 태어날 수 있었습니다.
4. 현실로 드러난 예언들
그리고 그때 누군가 너희들에게 '보라 여기 메시아께서!, 보라 저기에!"
라고 말한다. 너희들은 신실하지 말아라.
그런데 거짓 메시아들과 거짓 예언자들이 일으켜질 것이고
속임을 위한 표적들과 기적들을 행할 것이다,
만일 할 수만 있다면, 그 선택된 이들을 (속이기 위하여).
그런데 바로 너희들이 주의하라/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미리 말했다.
그러나 바로 그 환란 중에 있는 그 날들 속에서
"해는 어두워질 것이고,
달은 자신의 빛을 주지 않을 것이며,
별들은 그 하늘로부터 떨어지게 될 것이고,
하늘들 안에 있는 잠재력들은 흔들릴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들이 구름들 안에서
많은 잠재력들과 영광들과 함께 가는 인자를 볼 것이다.
그리고 그때 인자는 그 천사들을 보낼 것이고
골라낸 이들을 땅 끝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네 바람들로부터 모을 것이다.
-"그 때" : 다시 거짓 메시아에 대한 내용으로 돌아감
이 4번 단락에서 새로운 독법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저 "그리고 그때"가 언제일까요? 이어지는 내용은 거짓 메시아들에 대한 진술입니다. 그리고 예수는 거짓 메시아는 끝이 있기 전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위의 "그때"는 "끝이 오기 전"을 의미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는 "내가 모든 것을 미리 말했다"고 말씀하십니다. 즉 예수께서 미리 말씀하신 내용은 끝 이후가 아니라, 예루살렘 멸망 이전에 요긴하게 쓰일 내용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야훼의 날
"그 날들"은 구체적인 시간표를 알 수 없는, 예루살렘 멸망으로 향하는 임박한 기간입니다. 그 "그 날들" 속에서 "해, 달, 별"이 어두워지는 것은 '야훼의 날'에 대한 표현입니다. 그날은 악에 대한 신적인 복수가 이뤄지는 날인데, 우리는 그 날의 반전에 대해서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야훼의 날에 이방 민족이 패망할 것이라 기대했던 유대인들의 바람과는 달리, 악은 메시아의 육체에서 처형당했습니다.
-승천
그리고 다시 "그때" 구름들 안에서 많은 잠재력들과 영광들과 함께 '가는' 인자를 볼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다니엘서 7장의 인용이자, 곧 승천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리고 인자의 승천과 더불어, 거룩한 백성이 마침내 영원한 나라를 얻게 됩니다.
다니엘 7:27, 새번역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력이 가장 높으신 분의 거룩한 백성에게로 돌아갈 것이다.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다. 권세를 가진 모든 통치자가 그를 섬기며 복종할 것이다.'
인자가 천사들을 보내어, 땅 끝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네 바람들로부터 모으는 사람들은, 바로 이 영원한 나라의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네 바람들로부터
이 선택받은 이들은 끝 이전에는 견디며 심문 속에서 진술했고, 끝 이후에는 새로운 나라의 구성원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네 바람으로부터" 출애굽한 사람들입니다. 개역성경은 "사방에서"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이것은 의역입니다. 영어 성경은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ESV판본입니다.
(Mk 13:27)
And then he will send out the angels and gather his elect from the four winds, from the ends of the earth to the ends of heaven.
from the four wind. 그럼 이 "네 바람"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다니엘 7:2,3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니
스가랴 6:5,6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하늘의 네 바람인데 온 세상의 주 앞에 모셨다가 나가는 것이라 하더라. 흑마는 북편 땅으로 나가매
이 다니엘의 네 짐승들과 스가랴의 네 바람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넷'은 유대 묵시문학에서 자주 사용되는데, 다니엘 2장에는 네 금속으로 치장된 우상이 등장하며(네 제국을 상징합니다), 7장에는 네 짐승이, 스가랴에는 네 바람이 등장합니다. 공통점이 있는데, 바로 바로 사람들을 괴롭게 한다는 점입니다. 즉 넷의 군림은 '포로기'를 가리킵니다. 이는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도 마찬가지입니다. 네 가지 씨가 네 가지 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열매 맺기 전까지의 시간, 곧 포로기 상황을 표현하는 유대인들의 방식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 "넷"으로부터 출애굽하는 사람들에 대해 다니엘, 스가랴 뿐만 아니라 요한계시록 또한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1,4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
내가 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즉 "십사만 사천"은 악의 포로기로부터 출애굽한 메시아의 사람들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입니다. 이 십사만 사천을 모으는 일이, 승천하신 인자에 의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습니다.
-하늘 끝
이 "십사만 사천"에 대해서 예언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은 토라입니다. 모세는 신명기에서 총 세 번의 설교를 하는데, 그 마지막 설교가 시작되는 27장부터의 맥락을 확인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계명을 주시고(27장), 그 계명을 지키면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는데(28장), 그 계명들에 덧붙여 지키지 않을 경우 어떤 저주에 빠지게 될 것인지에 대한 내용이 이어집니다(29장). 그 저주는 "독초", "쓴 열매가 나게 하는 뿌리"로 표현되는데, 말씀을 듣지 않으려는 완고함이 곧 저주입니다. 말씀을 들을 수 없는 완고함에 빠진 이스라엘은 언약을 버리며, 온갖 재앙을 당하고, 심지어 땅을 잃고 타국에서 포로 생활을 하게 될 것이라 모세는 예언합니다. 그리고 30장에 가면,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들이 보입니다.
신명기 30:2~4, 새번역
이 모든 일이 다 이루어져서,
당신들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쫓아내신 모든 나라에 흩어져서 사는 동안에,
당신들의 마음에 이 일들이 생각나거든,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손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오늘 내가 당신들에게 명령한 주님의 모든 말씀을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마음을 돌이키시고,
당신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포로생활에서 돌아오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을,
그 여러 민족 가운데로 흩으신 데서부터 다시 모으실 것입니다.
쫓겨난 당신들이 하늘 끝에 가 있을지라도,
주 당신들의 하나님은, 거기에서도 당신들을 모아서 데려오실 것입니다.
그 한 제자가 예수께 물었던 "모든 그것들이 끝나려고 할 때"는 바로 저 신명기 30:2의 인용이 아니었을까요? 하나님은 포로기를 예언하셨고, 또 그 포로기 중에도 다시금 하나님께 돌아오기만 하면, 주의 계명을 순종하기만 하면, 포로기를 종결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런 방식으로 다시 모이는 사람들이 스가랴 12:10의 그 찌른 자를 보며 통곡하는 이들이고, 인자의 승천이후 출범하는 다니엘 7장의 "거룩한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람들을 "하늘 끝에 가 있을지라도 데려오겠다"고 확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바로 이 구절을 인용하십니다.
골라낸 이들을 땅 끝에서부터 하늘 끝까지 네 바람들로부터 모을 것이다.
즉 신명기 30장, 스가랴 6장, 다니엘 7장, 계시록 7장은 모두 같은 내용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게다가 바울도 마찬가지로 저 신명기 30장을 인용하면서, 하나님이 포로생활을 끝내게 하시고, 새롭게 모으신 사람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로마서 10:8~10, 개인번역
"말숨이 네 입 속에 있으며, 네 마음 속에 있다."
(이것이 우리가 선포하는 신실함의 말숨입니다)
만일 당신이 당신의 입으로 예수를 '주'라 고백하고, 당신의 맘으로 한 분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셨음을 믿으면, 구원(포로생활의 끝, 거룩한 백성됨)을 얻을 것입니다. 즉 맘으로 신실하여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누구에 대한 표현입니까? 승천하신 인자가 하늘 끝에서부터 데려온 사람들은 과연 누구입니까? 성경은 단 하나의 결론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명기와 계시록이 동일한 내용을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은, 구약을 신약이 이루고, 신약을 계시록이 이룬다는 주장은 근거 없음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5. 지금까지의 맥락 그대로
당연한 얘기겠지만, 우리가 마태복음 24장에서 배웠던 맥락 그대로, 마가복음 13장을 읽을 수 있습니다. 무화과 나무 비유가 지시하고 있는 때는, 예루살렘 멸망/인자의 십자가와 승천/에클레시아의 출범입니다. 다만 이 사건들이 벌어질 시간에 대해서는 예수께서도 알지 못하셨고, 다만 사건을 보고 그 때를 인지할 수 있도록 깨어있으라고 말씀하셨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무화과 나무로부터 너희들이 이 비유를 배워라.
가지가 부드럽게 되고 나뭇잎이 커지면, 너희들은 여름이 도래했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너희들도 이것들이 되는 것을 보면, 문들 앞에 인자가 도래했음을 깨달으라.
아멘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바로 이 세대가 결코 지나가지 못한다, 모든 이것들이 되지 않는 한.
하늘과 땅이 지나갈 것이다, 그런데 나의 말들은 결코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날들이나 시간에 관하여는 아무도 알지 못하고,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알지 못한다, 아버지를 제외하곤.
너희들이 주의하라/보아라 깨어있으라.
언제 카이로스가 있는지 너희들이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마치 떠나는 사람이 자기 집을 뒤로 하고 자신의 종들에게
그 권한과, 각각에게 자신의 일을 주고,
문지기에게는 경계를 명하는 것과 같이. 그러므로 경계하라.
왜냐하면 너희들이 언제 그 집의 주님이 올지,
혹은 이후일지, 혹은 한밤중일지 혹은 닭울 때일지, 새벽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가 갑작스레 와서 자는 너희들을 발견하지 않도록 하라.
그런데 내가 너희들에게 말한다, 내가 모두에게 말한다, 깨어있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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