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이름

from 카테고리 없음 2017. 11. 11. 23:16

 

  오늘은 이름에 관해서 말해봅시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자", "하나님의 이름을 믿자", "하나님의 이름의 능력" 등등.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언급이 많습니다. 대체 이름이 무엇이기에, 온통 이름과 연관되는 것일까요? 생각해보니, 제가 만든 노래에도 있지요.


"온 땅과 하늘 들어라

'메시아의 이름' 높여라"


"오 '그 이름' 영원하신 '그 이름'

온 땅에 가득하네 '주의 이름'"


1.


  세상에 별별 이름 많지만(여러분들이 알고 있는 이름 중에 가장 생경한 이름은 뭐가 있나요?),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은 그 이름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이름입니다. 왜냐하면 그 이름이 '왕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고을에 사람들을 괴롭히는 못된 탐관오리가 있었습니다. 이 고을에서 이 탐관오리는 무서울 것이 없는데, 딱 하나 무서워하는 것이 있네요. 바로 "암행어사 출두요"라는 소리입니다. 암행어사가 나타나봐야 확 꿀밤 먹이고 감옥에 가두면 될텐데, 왜 탐관오리는 암행어사만 나타나면 바들바들 떨까요? 이유는 하나입니다. 암행어사가 왕이 보낸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암행어사는 왕의 이름으로 활동합니다. 그러니까 왕이 다스리는 땅에서 사는 주제에 왕의 뜻에 안맞는 못된 일만 일삼는 탐관오리가 걱정하는 것도 당연하지요.


  하나님의 이름은 이렇게 쓰는 겁니다. 하나님이 통치하는 이 세계 안에서 왕의 뜻에 맞서는 잘못된 것들을 보았을 때, 그때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 필요합니다. 이때는 내 이름이 필요하지 않아요. 강아지 이름이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필요해요. 하나님의 땅에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뜻이 아닌 일에 맞서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람들이겠지요.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똘똘 뭉쳤을 것이고요.


  그런데 좀 이상한 점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하'씨인가요? 우리는 '하나님'이라 부르지만, 이 이름은 나중에 붙인 이름입니다. 희랍어로는 데오스라고 하는데, 그 데오스를 번역한 것이 하나님이고 또 하느님이거든요. 그러니 하나님, 하느님 싸울 필요 없습니다. 둘 다 번역된 말이지 하나님을 처음에 정말로 그렇게 부른게 아닙니다. 그럼 하나님의 이름은 데오스겠구나 싶겠지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데오스는 원래 그리스 신을 부르는 말인데, 야훼(여호와)라는 말을 데오스로 부른 것 뿐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진짜 이름은 야훼겠군요. 그런데 또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불렀는지는 사실 모든 사람이 까먹었습니다. 히브리어로는 아도나이라고 부르긴 하는데, 이건 '나의 주님'이란 뜻이지 하나님의 이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고, 안부르다 보니까 부르면 안되는 줄 알았고, 안부르다 보니까 잊어버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름을 모르는 신이에요. 바울이 아테네에 갔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사도행전 17:23) 라고 쓰여진 제단을 봤습니다. 그리고 이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서 가르쳐주겠다고 하지요. 어찌되었든 하나님의 이름은 까먹었다! 


  그럼 하나님의 땅 위에서 하나님의 뜻에 위배된 일을 만났을 때 우리는 무슨 이름을 내놓을까요? 이름을 까먹었으니 말입니다.


  하나님, 하느님, 갓, 데오스, 야훼 참 많은 이름들이 있는데, 이거 다 나중에 붙은 이름입니다. 그리고 진짜 이름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쓰는 일들이 생겨났습니다. 하나님이란 말을 내세워서 전쟁을 일삼기 시작한 거에요. 영어로는 in the name of God이라고 하는데 말만 멋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번 보았던 카톨릭과 개신교로 나누어 전쟁했던 30년 전쟁도 그렇고,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할 때도 이건 '신이 함께 하는 거룩한 전쟁'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전쟁도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전쟁이라고 합니다. 예전에 중세교회는 이슬람을 다 없애버린다면서 십자군이라는 군대를 조직했는데, 그때도 '하나님의 이름으로' 전쟁한다고 했지요. 이게 뭡니까? 


  생각해보세요.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는 전쟁'이 말이 됩니까? 전쟁은 하나님 뜻이 아니겠지요? 그런데 하나님 뜻이 아닌 전쟁을 하나님 이름으로 막아야 하는데, 하나님 이름으로 오히려 전쟁을 하고 있으니 이런 거지 발싸개 같은 상황이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 이름도 까먹고, 하나님 이름도 막 쓰고, 이러니 하나님이 마음이 안편하시겠지요,


2.


  길은 사람에게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습니다. 하나님이 직접 자기 이름을 가르쳐주시면 되니까요. 그 진짜 이름을 가지고, 진짜 암행어사가 되면 되니까요. 탐관오리들의 못된 짓을 막을 수 있는 진짜 이름 말입니다. 그 하나님의 진짜 이름이 뭘까요? 예수. 하나님의 진짜 이름입니다. 이 이름만큼은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에게 가르쳐주신, 그리고 안까먹은 진짜 이름이에요. 


  '예수'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잘못된 일을 만났을 때 꺼내야 하는 하나님의 이름은 예수에요. 얼마 전 인터넷을 하다가 잘못된 일을 향해서 피켓 시위를 하는 사람을 봤습니다. 그 사람 피켓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어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저는 그 말을 이렇게 고쳐주고 싶었어요.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이 예수님이고 예수는 하나님의 이름이지만, 하나님은 눈에 안보이시는 분이고 사람들이 제멋대로 생각하기도 하잖아요.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에 실제 사람으로서 사셨던 분이고, 그분이 십자가를 지고 죽으셨다는 사실은 부정할 사람이 없습니다. 잘못된 일을 하는 사람에게 "그건 예수님의 뜻이 아닙니다." 라고 당당히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저 잘못한 사람이 망해버렸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든 피켓에 걸맞지 않은 것이겠지요. 예수라는 마패를 꺼낸 이상, 탐관오리를 죽일 수가 없습니다. 왜요? 예수는 죽이는 분이 아니라 죽어주시는 분이니까요. 예수라는 이름을 꺼낸 순간, 우리는 잘못한 일 하는 사람들을 손가락질하고 욕하고 침 한 번 카악 뱉고 돌아설 수 가 없습니다. 우리도 우리 자신을 죽여야 해요. 자살한다는 말 아닙니다. 예수 이름을 꺼냈다면, 사랑 말고 다른 방법은 내다 버려야 합니다. 심지어 사랑하기 싫어하는게 나라면, 그 나를 뜯어고쳐서라도 말입니다.


마태복음 16:24

그 때에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 오너라.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럼 우리는 다 십자가 하나씩 든거에요. 그럼 이 십자가는 누구 죽는 십자가입니까? 나 죽는 십자가에요. 어떤 나에요? 사랑하기 싫어하는 나 죽이는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시려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당하셨던 분이고, 그 예수가 하나님의 진짜 이름입니다. 


  정리를 해봅시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세계에서 잘못된 일에 맞서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이름이 뭐라고요? 예수에요. 그럼 예수의 이름이 필요할 때는, 잘못된 일에 맞설 때겠지요. 그런데 예수의 이름으로 잘못한 사람을 그저 미워할 수 있습니까? 예수의 이름은 그렇지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이름은 우리를 난처하게 만드는 이름이에요. 잘못 앞에 서게 하면서도, 내 식대로 해결하지 못하게 하는 이름이 예수입니다. 이 이름을 계속 생각해보세요. 예수. 친구의 잘못을 보고 화가 납니다. 화가 날 수 있어요. 잘못한 것에 대해서 화를 내는 건 정의니까요. '전도사님, 아 쟤가 먼저 나한테 이렇게 했어요!' 하기 전에 생각해보세요. 잘못된 일을 봤잖아요? 그럼 마패를 꺼내란 말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예수를 생각해보세요. 그 잘못된 일 앞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돌아서면 예수입니까? 나도 쟤가 나처럼 했던 것과 똑같이 해주면 예수입니까? 어떻게 하는 게 예수에요? 이건 못가르쳐줘요. 여러분이 직접 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그리고 직접 해보려고 하는 사람을 예수님은 아주 가까이에서 만나주십니다. 잘못된 일을 봤을 때 하나님의 이름인 예수를 떠올리고, 그 이름답게 뭔가를 해봐야 합니다. 자꾸 해봐야 합니다.


3. 


  베드로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4:12 

이 예수 밖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구원은 없습니다. 사람들에게 주신 이름 가운데 우리가 의지하여 구원을 얻어야 할 이름은, 하늘 아래에 이 이름 밖에 다른 이름이 없습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예수가 하나님의 진짜 이름인데, 가짜 이름을 붙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걸 저도 압니다. 그런데 가짜 이름을 붙들고 사는 사람들이, 진짜 이름을 붙들고 사는 사람보다 더 온전하게 살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 거에요? 우리는 진짜 이름을 붙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이름으로 더 온전해져야 해요. 가짜 이름을 가짜로 드러내는 일이 우리 손에 달렸습니다. 그런데 가짜를 가짜라고 말해봐야 사람들이 말을 안믿어주지 않습니까? 그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나요? 바로 앞 절에 나옵니다.


사도행전 4:11 

이 예수는 '너희들 집 짓는 사람들에게는 버림받은 돌이지만,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신 분'입니다.


  예수의 이름만 하나님의 진짜 이름인데, 그 예수는 어떤 분이신가 보니 '사람들에게 버림받으신 돌'이라고 써있습니다. 예수님이 사람들을 좀 안사랑하시기로 했으면 십자가 안지실 수 있었습니다. 인정? 출애굽의 어린양으로 굳이 내가 죽을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면 피할 길은 많았고, 이미 예수님은 추종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끝내 사람들에게 버림받는 편을 선택하셨습니다. 이유는 버림받는 게 좋아서가 아니에요. 사랑이에요. 사랑이 나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 사랑을 실천하려고 자신을 죽이는 그 사람을 하나님이 사랑하세요. 이 방식이, 나를 죽여서 사랑하는 방식이, 가짜들에게 버림받더라도 가짜들을 사랑하는 방식이, 자신이 진짜임을 드러내는 방식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다른 방식은 없습니다.


  베드로는 이걸 말했어요. '예수의 이름 밖에 없다!' 그런데 여기서 끝나면 안돼요. 왜냐하면 예수만이 하나님이 진짜 어떤 분이신지를 보여준다는 말이니까, 그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봐야 하잖아요. 그 하나님의 진짜 모습은 사랑 때문에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버림받은 하나님 옆에 붙어있게 된 사람들입니다. 세상에 나쁘게만 살려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신에 대해서 말하는 세상의 종교들은 일단 그 신의 이름으로 좋게 좋게 해보자는 사람들이지요. 그 중에 석가도 있고, 알라도 있고, 조로아스터도 있고 별별 이름 많습니다. 그런데 별별 이름 중에 예수가 하나님의 이름이에요. 왜요? 우리는 우리를 십자가에 매달아서라도, 사람들로부터 버림받더라도 사랑할 거라서 그래요. 바로 이 이유에서만 예수만이 구원이에요. 더 버림받자는 말 아닙니다. 더 사랑하자는 말입니다. 심지어 버림받더라도 사랑하신 분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잊지 말고, 바로 그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입니다.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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