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11日.

from 치부책 2015. 7. 18. 10:28

  어머니 돌아가신지 100일째가 되었습니다. 그런 오늘 또다른 분의 장례가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죽음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합니다.


  死亡. '죽어 잃어버린다'는 말입니다.  

  (오늘날은 死望이라 생각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참으로 살기 어려운 세상입니다.)


  어떤 이들은 종교가 저 '죽어 잃어버린다'는 '자명한 사실'에 대한 정신적 반작용에 지나지 않다고 말합니다. 나는 동의합니다. 종교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종교가 아니라 예수를 말하고자 합니다. 정신적 반작용이 아닌 역사. 실제로 벌어진 사건을 말하고자 합니다. '종교'라는 카테고리로 가둘 수 없는 삶 그 차제를 말하고자 합니다. 그 사건 속에서 죽음은 보편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단 하나의 예외가 발생했고, 모든 죽음을 뒤집는 날이 올 것을 예고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死亡' 앞에서 '生得'을 말합니다. 죽음에 집어삼키지 않는 생명으로 새로이 태어났다면 生입니다. 하나님께 신실함으로 얻는 두 번째 출생입니다. 그런데 이 두번째 출생은 죽어 얻습니다. 그래서 死生입니다. 


  세상 모든 문제는 生死의 문제가 아닙니다. 살다가 죽는게 무엇이 문제입니까? 이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모든 자연만물이 살다가 죽습니다. 인간이 정말 추구해야 할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生死가 아니라 死生의 문제입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게 문제입니다. 용기, 진실, 정의, 사랑, 희망. 이 모든 것들이 처참한 상황 속에서도 올곧게 살아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 아닙니까? 우리는 이 죽음이 지배하는 것같은 세상 속에서 다시 살아나 살 필요가 있지 않습니까? 이것을 거절할 자 누구입니까? 이것이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셨던 말씀이었습니다. 로마의 지배아래서 생사의 문제에 매달려있는 이스라엘 지도자에게, 예수께서는 死生을 말씀하셨습니다. 죽어서 새로 거듭나는 길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죽고 나서야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진다는 말입니까? 흔히 '내세(來世)''라는 말로 표현하듯, 오늘날 우리의 일상과 아무런 상관없는 차원의 일이란 말입니까? 예수는 그러한 것을 말씀하신 바가 없습니다. 


  오늘 죽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다시 사는 것입니다. 오늘이라는 말도 못마땅합니다. '지금'입니다. 지금 죽고 사는 것입니다. 죽음과 함께 내 삶의 찌꺼기들을 모두 함께 죽이고, 나는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일어나 사는 지금입니다. 어찌 우리가 지금 죽고 살아서 새로이 살 수 있습니까? 메시아 예수는 이 길을 열어두셨습니다. 그래서 세례입니다. 메시아 예수와 하나됨입니다. 메시아 예수와 같이, 죽고 살아서 다시금 죽더라도 다시 사는 것입니다.


  이 길의 시작은 살아서 죽는 것부터입니다. 살아서 죽을 수 있다면, 죽어서도 살아날 수 있습니다. 메시아와의 연합은 이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살아서 죽게 하고, 죽어서도 살게 합니다. 성경은 어려운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살아서 죽어야 하는 것은, 지금 내 삶이 문제 투성이이기 때문이고, 죽어서도 다시 살아야 하는 것은 죽는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살아서 죽읍시다. 살아서도 죽을 수 있다면 그 속에 生이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 生의 흔적이 신실함(信)이라 믿습니다. 한 분을 향한 나의 사랑이, 내 속에 生이 있음을 확인시켜줍니다. 살아서 죽으면 生입니다. 세례입니다. 나의 옛 사람이 메시아와 함께 죽었습니다.  그러니 죽음을 '통해서' 다시 살고, 죽더'라도' 다시 삽니다.


  그러니 어찌 亡으로 끝날 수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얻게 됩니다. 이 모든 것에는 먼저 죽었던 사랑하는 사람들과, 잃어버린 나의 몸과(완전한 육체로 다시 얻습니다), 죽음이 사라진 온전한 세상과, 심지어 하나님도 포함됩니다. 성경은 이 모든 것을 가리켜 '복'이라는 한 글자로 압축해놓았습니다. 


  그러니 나의 삶은 오직 '살림(生)'뿐입니다. 그리고 이 살림 전에는 살아서 죽는 死가 있습니다. 설령 내가 이 육신을 잃어버린다(亡) 할지라도, 나는 새로운 몸과 새로운 세계를 얻을 것입니다.(得). 


  그래서 死亡이 아닙니다. 死生亡得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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