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善은 우리말 '잘'이다. '착함'으로 풀수도 있지만, 동사쪽에 무게를 두는 것이 더 나은 해석이 아닐까 한다. 선은 행동과 상관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잘'이다. 본래 명사와 동사는 하나였지만, 우리는 우리가 쓰는 언어 속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 같은 상황이지만 누구는 정지된 명사로, 누군가는 움직이는 동사로 볼 수 있다. 사람이 보는대로 보인다. 그래서 관점도 각양각색. 그러나 오해에 빠지면 안된다. 관점이 다양할지언정, 사건은 여럿이 아니다. 하나다. 그럼 명사인 사람과 동사인 사람이 각각 정보를 맞춰가며 한 사건을 풍성하게 그려가면 되잖아? 몸 붓으로, 삶을 찍어다가, 새 하늘과 새 땅의 밑그림 위에.
하여간, 잘. 가장 잘함은 곧 하늘(上)의 잘함이다. 하늘의 잘함은 물에 잘 드러난다. 물을 통해서 하늘의 잘함을 들여다보자. 물이 잘하는 것이 무어냐? 물은 홍익인간이다. 인간 뿐이냐? 만물을 이롭게 한다. 게다가 만물을 이롭게만 할 뿐 다투질 않아. 다투지만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서 지내. 습기찬 곳, 어두운 곳, 골짜기 할 것없이 물은 흐른다.
그리고 길을 만든다. 무슨 길이냐, 만물을 이롭게 하는 길이요, 그러면서도 싸우지 않는 길이요, 그러면서도 뭇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으로 뚫리는 길이다. A.D. 1세기, 친일파와 같았던 세리들과 밥먹고, 병신에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당하던 자들을 위해서는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으며, 사람 취급 받지 못했던 여자들을 제자 삼고, 인권이라곤 없었던 어린 아이들을 번쩍 들어 안아 주시던 그 이가 가시던 길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싸울줄을 몰라 돌에 맞고, 매 맞고,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주먹 한 번 내지른 적이 없다. 그렇게 만물을 이롭게 하기 위해 홀로 땅 아래로 흘러내렸다.
그래서 그 물과 같은 이는 길이다. 그가 흘러가는 그 자리가 길이 된다. 그는 그 음침한 자리로 나아가고, 또 나아가고, 또 나아가서 이제 누구나 그 길을 갈 수 있는 길로 새공간을 터놓는다. 길을 걷다가 길이 되는 사람. 그렇게 우리의 발 밑에서 섬김으로 흐르는 이. 하늘은 이러한 길을 놓았고, 이름을 예수라 하였다.
[2]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싸우지 않으면서도, 사람들이 가기 꺼려하는 곳에 기꺼이 가는 구체적인 방법. 있기를 땅에 잘 있으면 된다. 마음은 깊게 잘, 사랑(仁)으로 주기를 잘, 말에는 신의가 있게 잘, 다스리는 일도 잘, 일도 힘있게 잘, 움직임도 때에 맞춰서 잘. 아, 이 '잘'이란 말을 어찌 표현할꼬. 그냥 잘이 잘이지. 잘은 잘이야. 잘하는 거야.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말이 "잘 해"다. 내가 대문밖을 나서면 내 뒷통수에 대시고 어머니가 늘 하시던 말씀. 그런데 잘 하는 것은 말하기는 참 쉽다만, 막상 잘 하기는 잘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잘은 혼자서는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잘은 善이다. 진선미의 그 선. 우리야 생각해보려고 진(참)이라 하기도 하고, 선(잘)이라 하기도 하고, 미(이쁨)이라고 한다지만, 사실 이것은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다. 온전함. 참이며, 잘하고, 이쁜 그 하나의 인격. 하나님. 바로 그 분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것이 '잘'이다. 그러니까 무언가를 잘 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잘할 수 있어.
남편이 다섯있는 여인이 찾고 있던 것이, 바로 이러한 물 아닌가. 예수는 이 여인에게 다시는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겠다 했다. 그러고 나서 나오는 얘기가, '잘 예배'드리는 방법에 대해서 말했다. 그 방법이 무엇인가? 그리심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여. 진짜 '잘'하는 것은 '신령'과 '진정'으로 하는 것이여. 곧 하나님의 말숨 안에서 해야 잘 하는 것이재. 그러니까 이 말씀은 공예배를 잘 드리라는 말이 아닌 것이다. 너의 일상을 포한한 삶 통쨰로 하나님 말숨 속에 들어오라는 것이다. 그게 '잘'의 의미다.
[3] 그럼 싸울 일 없다. 싸울 일 없으면 더 할 것도 없다. 싸울 일 없으면 평화잖아? 인류는 오늘날까지 전쟁을 멈춰본 역사가 없는데, 그 와중에 우리가 싸울 일이 없게 되면, 그 얼마나 기쁜 일일까? 노자는 우리가 물이 되면 안싸워도 된단다. 그럼 물이 된다는 건 뭐냐? 잘 하는 것이다. 잘 하는 건 뭐냐? 하나님의 말숨 안에서 하는 것이다. 그럼 하나님의 말숨 안에서는 왜 싸울 일이 없냐? 그 안에서는 허물을 덮어주잖아. 그 속에서는 용서할 일이 있을지언정, 싸울 일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