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13:24~27)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0. 지난 이야기


  우리는 A.D. 66~72년에 묶여 있습니다. 이 때는 '유대전쟁'이 일어났을 때요,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때이며, 언약백성이 서로 물고 뜯다가 멸망한 날입니다. 예수께서 그토록 말리셨던 그 날입니다.


  혁명, 건물 성전, 전쟁, 율법, 안식일, 승리, 돈은 모두 잘못된 중심이었습니다. 온갖 잘못된 중심으로 점철되어 있던 이스라엘은 이제 그 중심이 무너지는 날을 맞게 됩니다. 그 날은 참으로 끔찍했습니다. 마사다에서의 최후 항전 기록을 이미 말씀드린바가 있습니다. 어린아이, 여자 할 것 없이, 960명 모두의 자결. 이것이 타락의 반전인 언약백성의 최후였습니다. 물론 끝은 아니었으나, 너무도 아픈 산고였습니다.  


1.


  성전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들어오면 도망치라고 말씀하시는 그 때, 예수께서는 우리가 고개를 갸우뚱할 단어들로 그 날을 설명하십니다.


(막 13:24~25) 

그 때에 그 환난 후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해, 달, 별, 하늘, 권능, 이 단어들의 조합을 보고서 사람들은 운석을 떠올리기도 했고, 세계전쟁을 떠올리기도 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이 마가복음 13장이 먼 미래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이스라엘에 관한 예언이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게다가 저 위에 있는 문장들은 우리에게 낯설지언정, 이스라엘에게는 무척이나 익숙한 단어들입니다.


(사 13:10)

하늘의 별들과 별 떨기가 그 빛을 내지 아니하며 해가 돋아도 어두우며 달이 그 빛을 비취지 아니할 것이로다


(사 34:4) 

하늘의 만상이 사라지고 하늘들이 두루마리 같이 말리되 

그 만상의 쇠잔함이 포도나무 잎이 마름 같고 무화과나무 잎이 마름 같으리라


  이미 구약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표현들입니다. 그리고 이 표현들은 에돔과 바벨론의 멸망을 예고할 때 썼던 표현들입니다.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절대 안 망한다고 자부하던 이스라엘에게, 에돔과 바벨론에게 썼던 표현을 붙이십니다. 이 말은 곧, 하나님께 부름받은 이스라엘이 그 부름을 철저하게 거절했음을 보여줍니다. 이 얼마나 끔찍한 일입니까? 겉으로는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고 종교적인 어휘들로 포장되어 있었으나, 속은 곪을대로 곪아서 죄로 인해 멸망당했던 제국들과 다를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최후가 멸망당했던 이방민족들의 최후와 같아졌다는 말이, 저 위의 해, 달, 별 표현의 의미인 것입니다. 그들은 혈통을 믿고, 역사를 믿고, 성전을 믿고, 자신들을 믿었으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았던 사람의 끝은 해, 달, 별이 무너진다고 표현할 만큼 삶의 모든 근간이 다 무너져버린다는 말입니다.


(막 3:33~35) 

대답하시되 누가 내 모친이며 동생들이냐 하시고

둘러 앉은 자들을 둘러 보시며 가라사대 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를 찾으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대로 행하지 않는 이스라엘을 멸망시키신 것입니까?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해, 달, 별을 무너뜨리셨습니다. 그러나 자꾸 하나님 탓만 하지 말고, 반대로 생각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의 뜻을 옆에서 듣고도 그들은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것 아닙니까? 평화를 외치고, 사랑을 외치는 사람 많지만, 그 소리 듣고 자신의 삶을 통째로 개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래서 멸망하게 됩니다.


2.


(막 13:26, 27)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가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그리고 이어서 중요한 본문이 나옵니다. 여기서 우리는 감히 한 가지 단어를 수정하고자 합니다. '오는'입니다. 이 단어는 영어의 come과 같습니다. 뜻이 두 가지입니다. 저 때는 왕래발착동사라는 어려운 말로 배웠는데, 그 뜻은 '오다, 가다'입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의 재림을 가리키는 본문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으나, 만약 저 위의 '오는'이라는 말이 '가는'으로 이해되면, 이것은 재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게 됩니다. 무엇을 가르킬까요? 인자가 구름을 타고, 하나님께 가서, 그 왕권을 이양받고,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차지하는 그 날이 언제입니까? 바로 승천입니다. 우리 인자 이야기를 오랜 시간 배우지 않았습니까?





다니엘서 7:13,14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가 그 앞에 인도 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라


  예수님이 근두운을 타는 손오공이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뜻하는 유대인들의 단어입니다. 즉, 예수께서 하나님의 임재 속에, 그 분 앞으로 '나아가십니다'. 그리고 인자 이야기의 주인공으로서, 옛적부터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모든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이양받으십니다. 그래서 승천은 마치 부활과 함께 원플러스원 처럼 여겨졌으나, 이것은 정말 안될 말입니다. 혹은 우리가 죽어서 갈 장소로 예수께서 먼저 가신다고 생각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승천이 의미하는 바는, 인자가 옛적부터 계신 이에게 나아가는 것입니다. 목적은 무엇입니까? 영원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승계받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가 처음 배웠던 하늘과 땅의 개념이 여기서 빛을 발합니다. 예수께서 가신 곳은 하늘입니다. 이 하늘은 하나님의 차원입니다. 그 하나님의 차원으로 들어가신 예수께서 하시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다스림입니다. 톰라이트의 말처럼, 하늘은 땅을 다스리는 관제탑입니다. 하나님의 차원으로 들어가신 예수는,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을 가지고 이 땅을 다스리십니다. 바로 이 예수로 인해, 땅이 다시 하늘의 다스림 아래 놓이게 되었습니다. 승천은 곧, 그 분이 통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그 분이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다스리고 계신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이야기의 순서가 분명해집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의 징조들이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예수님의 승천이 벌어졌습니다. 이후 천사들이 보냄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을 땅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읍니다. 여기서 '천사'라는 단어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발목을 잡습니다. 어? 언제 천사가 왔어? 그러나 천사의 기본 뜻은 날개를 달고서 하늘을 날라다니는 중간존재이기 이전에, '전령'입니다. 말을 전하는 자 입니다.  그렇다면 승천 이후에 땅 끝까지 가서 승천하신 예수 복음을 전한 사람들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예수의 제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이 조선 땅에까지 복음이 전달되지 않았습니까? 저 위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건들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3.


(막 13:30)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그리고 우리는 뒤의 내용들중에 다음의 구절을 미리 다루겠습니다. 바로 '이 세대'라는 말입니다. 저 위의 구절을 재림으로 오랫동안 이해하다 보니,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서는 이런 생각들을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예수님이 자신이 십자가에 달리면 세상이 바뀔 줄 알고, 달렸더니만, 결국 세상이 안달라졌다는 것입니다. 금방 재림이 이루어질 줄 믿었는데, 그것이 불발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저 실패한 혁명가에 지나지 않다는 이론이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을 가리켜 '임박한 종말론'이라 부릅니다. 


  반대편의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한쪽에서는 저 '이 새대'는 정말 긴 세대라 주장했습니다. 예루살렘 멸망부터 예수의 재림까지의 세대니까 정말 긴 세대이지요. 우리의 입장이 그동안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위의 본문을 재림이 아닌 승천으로 이해하면 어떻습니까? 예루살렘의 멸망과, 예수의 승천과, 보냄받은 사람들을 통한 복음 전파를 모두 목격한 세대가 있을까요? 없을까요? 당시 흔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들이 예수의 저 말씀들을 떠올리며 무슨 생각들을 했겠습니까? 다시는 멸망에 빠지지 않고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하리라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예수를 실패한 혁명가로 보는 사람들이나, 저 이 세대를 무지하게 길게 보는 사람들이나, 다시 복음서를 들여다 볼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기 위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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