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출애굽기와 연결되는 이야기

  레위기는 이름은 ‘레위기’라고 이름이 붙었지만, 레위들에 관한 언급이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레위 지파에 관한 직접적인 언급은 25장에서 유산 상속에 관한 부분 뿐입니다). 레위기는 한 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거주하면서 그들에게 계명에 준수하는 생활 방식을 가르치시는 책입니다. 

  구절들을 따라가다보면 전체 그림이 보이지 않는 불상사가 일어나기 쉬운 책도 레위기입니다. 그래서 전체적인 스토리의 얼개를 짜보려고 해요. 

  유대인들은 토라의 각 권을 그 책의 첫 단어로 불러왔는데(그래서 모세는 레위기라는 이름을 모릅니다), 레위기는 ”부르셨다“라는 이름으로 불렸어요. 이 ”부르셨다“라는 말에 집중한다면, 출애굽기 24장 장면이 떠오릅니다. 모세를 비롯한 70여명의 사람들이 피뿌림을 받고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난 장면이 나오는 장이잖아요. 거기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와요.

출애굽기 24:15,16, 새번역
모세가 산에 오르니, 구름이 산을 덮었다. 주님의 영광이 시내 산 위에 머무르고, 엿새 동안 구름이 산을 뒤덮었다. 이렛날 주님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를 부르셨다.

  그리고 출애굽기 맨 마지막 장면으로 가보면, 시내산에 있던 주님의 영광은 이제 주님의 성막을 가득 채웁니다. 그리고 시내산에 함부로 올라갈 수 없었던 것처럼, 성막에 아무도 들어갈 수 없게 됩니다. 

출애굽기 40:34 
그 때에 구름이 회막을 덮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다.
모세는, 회막에 구름이 머물고, 주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 찼으므로, 거기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리고 출애굽기에서 레위기로 넘어가면, 그 들어갈 수 없는 성막으로 주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즉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이스라엘의 성막으로 옮겨간 것이지요.

레위기 1:1 
주님께서 모세를 회막으로 부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레위기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회막으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시내산에서 모세를 부르시던 하나님께서 이제 이스라엘과 함께 성막 및 회막에 거주하시며 다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즉 레위기는 시내산에서 만난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여행에 동행하시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부르셨다”라는 동사로 함께 묶여서요.

1. 레위기 1~7장

  회막에서 모세가 들었던 내용은 제사에 관한 것입니다. 레위기 1~7장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다소 지루할 수 있지만, 일단 견디며 읽다보면 다시 이야기를 만나게 되는데 그 대목이 레위기 8~10장입니다. 아론과 아들들의 제사장 위임식 이야기와 그 아들들의 죽음 이야기가 나옵니다. 

1~7장 제사 방법 --> 8~10장 제사장 위임식과 두 아들의 죽음

  이 글에서는 레위기 1~7장에 해당하는 본문을 읽을 때 필요한 주안점들을 정리해보고자 합니다. 레위기 1~7장은 다음과 같이 나뉩니다.

-1~7장의 구성
A. 1:1~6:7 백성들을 위한 제사 지침
1. 번제
2. 곡식제
3. 평안제
4. 정결제
5. 배상제
   a. 하나님을 향한 죄
   b. 이웃을 향한 죄

B. 6:8~7장 제사장들을 위한 제사 지침
1. 번제
2. 곡식제
3. 정결제
4. 배상제
5. 평안제

  ‘제사 서비스에 참여하는 사람’과 ‘그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른 지침들이 주어지고 있음을 볼 수 있고요. 이러한 제사 제도는 이집트 노예들이 이집트의 생활 방식에서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 정결해지기 위한 과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정결은 우리의 ‘심장(번역어로는 마음)’의 문제이지 제사 제도만으로 이뤄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즉 제사를 지낸다고 해서 마술적인 효과에 의해서 정결해진다기 보다는, 이스라엘이라는 공동체가 한 분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음을 반복적으로 확인하고 그 확인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봐야만 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에 걸맞는 사람인가?’

-제사는 마술이 아님
  그리고 이미 고대의 유대인들도 회개와 바른 실천이 핵심이지, 제사 제도를 통해 죄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시편 51:16,17). 즉 ‘제사를 통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제사 자체만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제사의 바른 사용이 아닌 것이지요. 고대의 제의들은 주문을 외우고 마술적인 효과를 기대했다면, 이스라엘의 제사는 이것과 달랐습니다. 침묵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위의 제사 제도들을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이해했으며, 또 하나님은 어떤 항목들에 대해 회개와 반성을 요구하셨는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속죄제가 아닌 정결제
  더불어 정결은 죄의 문제보다 훨씬 광범위한 것이라는 것도 기억해두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제사를 통해 정결해져야 한다’고 말할 때, ‘정결’은 정체성에 관련된 표현입니다. 예컨대 아이를 낳게 되면 정결제를 드립니다. 왜냐하면 그 아이가 정결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고 이스라엘의 구성원임을 확인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결제를 ‘속죄제’로 번역하는 바람에, 죄가 아닌 것도 죄로 취급하는 부적절한 읽기로 쉽게 빠집니다. 아이를 낳은 것이 죄일리 없을테니까요. 그러니 ‘속죄제’가 등장할 때마다 죄에 대한 용서의 제사가 아닌, 이스라엘로서의 정체성 확인을 위한 ‘정결제‘로 이해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각 제사의 명칭
  이밖에도 연구자들은 소제를 곡식제로, 화목제를 평안제로, 속건제를 배상제로 사용합니다. 각 제사의 명칭들이 왜 이렇게 달라졌는지를 고민해보며 직접 내용을 확인해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싶네요.

  짧게 쓰려고 했는데, 오늘도 장광설이 된듯 합니다. 누군가 말하길, “실효성이 사라진 법을 연구하는 것만큼 재미있는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어린이들의 놀이가 그렇지요. 땅따먹기는 즐거운 놀이이지만, 고대에는 금을 넘었기 때문에 정말 사형을 당하는 법이었을 것입니다.

  레위기의 조항들은 더이상 문자적으로 집행되지 않지만, 그 이야기만이 남아 깊은 의미를 오늘날에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의미를 탐구하는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부담 없이,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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