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인간의 권리’가 존재한다면...그것은 스스로를 긍정하는 불사의 존재의 권리, 또는 고통과 죽음의 우연성에 대해 지배권을 행사하는 무한성의 권리이다” 

<윤리학>, 알랭 바디우, p.19

 

-'부활'이 기쁜 소식이 아닐 땐,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가 죽음과 인간의 연대에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

-죽음과 악의 연대를 보여줄만한 적절한 책이 <윤리학>인듯

-아래는 우연찮게 저 문장에 관해 설명한 나의 카톡 메시지 전문

 

"소위 '인간의 권리(인권)'를 논하는 일반적인 방식은 인간을 "~의 피해자"로 규정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나 바디우는 저런 방식으로는 인간을 제대로 다룰 수 없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저런 방식은 "~"에 들어가는 것을 '악'으로 규정해야 하기 때문이고, 바디우의 입장에서는 사실 악이란 건 없기 때문이에요(그리고 '합의'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누군가는 자신이 '악'이었다고 인정해야 하니까요).

바디우에게 실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악'은 사실 실패한 선, 뒤틀린 사랑, 본래 온전했던 것이 망가졌기 때문에 악으로 보이는 것이기 떄문입니다. 예전에 아우구스티누스라는 교회 교사가 '악은 선의 결여'라고 말한 것과 비슷합니다.

그래서 바디우는 인권을 논하려면, 인간에 관하여 "~피해자" 정도가 아니라, 본래 죽음에 지지 않는, 한결같이 사랑을 추구하는 것을 '인간의 권리'라 말하자고 제안합니다(이 부분이 제가 인용한 문장이에요) 만일 우리가 '죽음에 지지 않는 영원한 사랑에 대한 한결같은 추구'를 인간의 권리라 부를 수 있다면, '악'이란 저러한 인간의 권리를 행사하지 않고, 중도 포기한 것을 의미하게 되고요."

 

-하지만 저 내용은 실제 상담 현장에서는 조심스럽다. 피해자들의 아픔에 공명하면서도, 새로운 인간상을 나눌 필요와 적절한 이야기들이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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