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부책
12161 낮 (만 33년3개월14일)
파다고기
2016. 7. 2. 11:04
우리는 '내가 나인 것인지', '내가 나를 가진 것인지', 아니면 '내가 내가 아닌 것인지'를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는 언어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밖에 없는게 '나' 하나를 말하는데도 참 묘하기가 짝이 없어서, 무언가 분명하게 그어놓은 글자는 그 위를 미끄러져버리기 때문입니다. 그 글자를 잘 읊는다고 미끄러지지 않는 건 아닙니다. 언어로 무언가를 인식하려는 건 언제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어떤 곡을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예를 들어 Spirit of God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Spirit이 God이심을 고백하면서도, of로 연결된 두 단어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 이것은 안 될 '말'입니다. of를 써서 속격을 쓰면, 일단 어느 것이 크고 어느 것이 작은지를 분류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측정값이 필요하며, 그 값을 따라 모든 것을 체계있게 배열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설령 나 자신도 그렇지 않은데, 세상 모든 일은 어떠하겠습니까? 깔끔하게 분리시켜 놓고 안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분리를 관통하는, 혹은 그 체계를 송두리째 뒤집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오늘 어떤 곡을 들으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났습니다. 예를 들어 Spirit of God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Spirit이 God이심을 고백하면서도, of로 연결된 두 단어에 대해서 거부감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에게 이것은 안 될 '말'입니다. of를 써서 속격을 쓰면, 일단 어느 것이 크고 어느 것이 작은지를 분류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측정값이 필요하며, 그 값을 따라 모든 것을 체계있게 배열해야 하는 것이 그들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설령 나 자신도 그렇지 않은데, 세상 모든 일은 어떠하겠습니까? 깔끔하게 분리시켜 놓고 안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 그 분리를 관통하는, 혹은 그 체계를 송두리째 뒤집는 무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신기하게도!
세상 모든 것은 '문법'같습니다. 언어를 배울 때 필요해서 공책에 써놓지만, 막상 내가 말할 줄 알면 그리 신경쓰지 않는 문법 말입니다. 과학도 그런 것 같습니다. 문법 자랑하면 안되고, 문법만으로 다 된다는 말도 하지 말아야 하잖아요? 그러나 문법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온전에 닿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문법이 온전은 아닙니다. 문법은 용(用)이요, 우리가 이르고자 하는 온전은 체(體)입니다.
다만 저는 부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말하게 되었노라고 말해선 안되겠습니다. 저는 끝까지 부족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즉 우리에게 주어진 문법을 선용해서, 말을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부단히 연습하는 일만이 필요합니다. 과학, 철학, 신학, 문학, 미학, 예술, 제가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다양한 차원의 노동들 전부는, 온전한 것에 닿기 위한 문법들입니다. (온전에 닿기를 거절하는 노동이 비뚤어짐罪 입니다.) 집착해서도 안되지만 소홀해서도 안되니 좁은 길입니다. 자연스럽게 될 때까지 애쓰는 것. 이것이 신실함이요, 신실함만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십니다.
다만 저는 부디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말하게 되었노라고 말해선 안되겠습니다. 저는 끝까지 부족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온전을 추구해야 합니다. 즉 우리에게 주어진 문법을 선용해서, 말을 잘 할 수 있을 때까지 부단히 연습하는 일만이 필요합니다. 과학, 철학, 신학, 문학, 미학, 예술, 제가 이름을 다 알 수 없는 다양한 차원의 노동들 전부는, 온전한 것에 닿기 위한 문법들입니다. (온전에 닿기를 거절하는 노동이 비뚤어짐罪 입니다.) 집착해서도 안되지만 소홀해서도 안되니 좁은 길입니다. 자연스럽게 될 때까지 애쓰는 것. 이것이 신실함이요, 신실함만을 하나님께서 인정해주십니다.
그러니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알 수 없는 세상 속에서 최선이라는 말이 옳다는 뚜렷한 인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에게는 '최선'이라는 인상은 또다른 인상을 연상시킵니다. 그것은 한 번도 본적은 없으나 그 최선의 끝에 계신 온전한 이의 인상입니다. 그이가 저를 더욱 최선 다하게 만드십니다. 그렇게 미래는 현재를 만들고, 현재는 다시 미래를 만듭니다. 나를 점으로 두고 돌아가는 선순환. 그 선순환이 세계를 아우르고, 원수마저도 품고 돌아가게 하소서. 빈 데, beyond there. 모든 차원을 넘어 계신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께 닿도록 돌아가게 하소서. 땅과 하늘이 제 속에서 하나 되게 하소서, 하나된 하늘과 땅에서 살기에 걸맞도록.
그럼 사랑입니다. 참된 미래와 성실한 현재 속에서, 끊임없이 온전을 추구하는 것이 사랑(仁)입니다. 사랑하게 하소서!
그럼 사랑입니다. 참된 미래와 성실한 현재 속에서, 끊임없이 온전을 추구하는 것이 사랑(仁)입니다.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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