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으로 지은 생각의 집

16-3. 부활 : 포로생활이 끝났습니다!

파다고기 2016. 2. 6. 16:23




0. 구원은 출애굽. 여기서부터


  우리는 오늘 다시 부활 이야기를 보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글로바와 그의 부인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부활의 주님께서는 무려 500여명 앞에 일시에 나타나신 적도 있으니, 적어도 500명 이상입니다.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을 마지막으로 목격한 사람을 만나고자 합니다. 그 사람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시작하려고 하는 그림은 여기에서 부터입니다.

  "그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길 바랐습니다."

  글로바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예수를 따르던지 그렇지 않든지 이스라엘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구원'이라는 말은 '출애굽'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시키시리라 기대했습니다. 바로 인자가, 악으로부터 말입니다. 문제는 다음 세 가지 세부 질문입니다.

1) 누가 인자입니까?
2) 악은 무엇입니까?
3) 이스라엘은 누구입니까?

  글로바는 나사렛의 '예수'가 인자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악은 아마도 '로마'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따르는 자신들이라 참 이스라엘로 생각했을텐데, 지금 그 로마에 의해 예수께서 죽임 당하신 상황입니다.(예수께서 부활하셨음을 모르고 있다는 전제하에) 예수에게 희망을 걸었던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절망했습니다. 아마 자신들이 누구인지도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자신들이 참 이스라엘이라 생각했지만, 자신들의 따르던 인자는 무참히도 '악'이라 생각했던 제국에 의해 죽임당한 상황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예수를 악에 의해 파멸된 실패한 출애굽의 지도자라 생각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절망은 갑자기 나타나 성경을 풀어준 남자에 의해 뒤집혔지만 말입니다.

1. 출애굽이라고 다 같은 출애굽이 아님


  그리고 글로바처럼 출애굽을 기대했던 또 다른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의 이름은 '바울'입니다. 바울도 출애굽을 기대했던 사람이니, 그에게도 저 위의 세부 질문을 적용시켜봅시다. 그는 1) 예수는 인자가 아니라고 생각했고, 2) 악은 로마를, 그리고 3) 이스라엘은 정통 유대인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12과에서 확인했듯이 성경을 이해하려는 우리는 유대인들의 시간 개념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현시대와 오는시대. 힘 센 인자가 나타나서, 악을 쳐부수고, 이스라엘을 건져내면 그 날이 현시대의 끝이요, 오는시대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그 오는시대의 시작에, 성전은 깨끗해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단체로 부활하며, 약속의 땅을 되찾는다는 것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공통된 신념이었습니다.

  이 신념 위에서 메시아라는 말도 이해됩니다. 즉 악한 왕을 파멸시키고, 성전을 깨끗게 해서 포로생활이 끝났음을 선언하는 것이 출애굽 지도자가 메시아입니다.(메시아는 하나님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이 아닙니다, 오늘날은 그렇게들 이해합니다만.)  그래서 마카비 가문도 시리아를 몰아내고 성전을 깨끗게 한 뒤 그 날을 하누카로 기념했으며,  헤롯도 파르티아 군대를 몰아낸 뒤 왕권을 잡고 제 2성전을 리모델링 한 것입니다. 마카비도 헤롯도 자신이 메시아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패배한, 게다가 나무에 달려 죽은 사람이 오는시대를 가져올 메시아라니요, 악을 처부술 인자라니요. 예수룰 따르는 사람들을 신고하고자 다마스커스로 발걸음을 옮기는 바울의 머리 속에 신명기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신명기 21:22,23
"죽을 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의 주검은 나무에 매달아 두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신들은 그 주검을 나무에 매달아 둔 채로 밤을 지내지 말고, 그 날로 묻으십시오. 나무에 달린 사람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은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에게 유산으로 준 땅을 더럽혀서는 안 됩니다.


  바울에게 예수는 악 그 자체였던 로마에 패배했을 뿐만 아니라, 나무에 달려 죽었으므로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어찌 그 사람이 출애굽의 지도자, 메시아일 수 있겠습니까? 그는 악과 싸워 이기지도 못했고, 성전을 깨끗하게 하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온 나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무려 예루살렘에서 한 참 떨어진 다마스커스에도 그 나무에 달려 죽은 사람을 심지어 하나님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잘못된 사상에 심취한 그들을 신고하기 위해 다마스커스로 향했습니다.


2. 사건!


  그런데 다마스커스로 가던 길 위에서 바울은 빛 가운데 휩싸였습니다. 바울은 놀라서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 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늘의 환한 빛 속에서, 바울이 "주님, 누구십니까?"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대답을 들었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일어나서, 성 안으로 들어가거라.

  네가 해야 할 일을 일러 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이후 바울은 눈이 멀어버렸고, 3일간 아무 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는 '아나니아'라는 예수님의 제자에게로 인도되었고,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손을 얹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 사울이여, 그대가 오는 도중에 그대에게 나타나신 주 예수께서 나를 보내셨소. 그것은 그대가 시력을 회복하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도록 하시려는 것이오"

  그 때 바울의 눈이 다시 떠졌습니다. 마치 한 사람이 빵을 떼자 마침내 눈이 밝아져 그를 알아본 글로바 부부처럼 말입니다. 새로이 눈을 뜬 바울, 그의 생각이 어찌 달라졌을까요? 우리는 그의 편지들을 통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눈 밝아진 사람의 생각을 엿볼 수 있습니다.


3. 부활, 그리고 새로운 이해


  그는 눈을 뜨고, 사도들을 만나 새로운 왕에 관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대해서 이전과 전혀 다른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1) 누가 인자입니까?
2) 악은 무엇입니까?
3) 이스라엘은 누구입니까?

  다시금 눈을 뜨게 된 바울에게 인자가 누구신지 분명했습니다. 바로 예수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가 인자라면, 2) 악이 무엇인지 다시 물어야 하며, 3) 이스라엘이라는 말의 의미도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나씩 생각해봅시다.

  그 예수는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다시 부활했다는 것이 분명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는 십자가 지기 전부터 자기 자신이 부활할 것이고, '메시아'라고 줄곧 말해왔습니다. 즉 예수는 메시아 입니다. 악과 싸워 이기고, 성전을 깨끗게 할 메시아가 바로 예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인자가 파멸시킨 악이란 무엇입니까? 그가 부활한 것이 사실이라면, 그가 이긴 것은다름 아닌 죽음 그 자체입니다. 그는 죄로 인해 들어온 죽음을 이겼고, 그것은 죄에 대한 승리이기도 했습니다. 그는 아무도 미워하지 않았고, 심지어 죽음도 그를 붙잡아 두지 못했습니다. 이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뒷통수를 얻어맞은 것 같이 얼얼하지 않았을까요?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누구입니까? 그동안 바울은 혈통으로 이어져 내려온 유대인만이 참 이스라엘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진정한 유대인은 예수를 믿어 사는 사람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더 큰 문제를 남겨두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시대'와 '오는시대'는 어찌 되는 것일까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온통 악이 다스리는 현시대로부터 오는시대로 출애굽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 날에 악은 파멸하고, 유대인들 모두가 부활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 전체가 부활할 줄은 알았어도, 한 사람만 부활할 줄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부활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 십자가에 매달린 나사렛 예수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오는시대는 정말 시작된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알 수 있는 것은, 현시대의 수장인 사탄이 십자가 현장에서 머리가 박살났다는 사실입니다. 만약 예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럼 현시대는 정말 끝난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아직 악은 남아서 사람들을 싸우게 만들고 괴롭게 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오는시대는 시작된 것이 분명하나, 현시대가 아직 끝나지 않은 것도 분명합니다. 바울을 비롯한 모든 이스라엘이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었습니다. 바로 현시대와 오는시대가 겹친 시대입니다. 다시 말해, "현시대의 마지막 날이 시작되었습니다." 현시대는 끝을 향해서, 오는시대는 완성을 향해서 달려가는 기이한 시절이 창조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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