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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ve a song to sung to the nations.

파다고기 2015. 6. 7. 20:14

2. 악을 이기는 노래

  그리고 2절이다. 

We’ve a song to be sung to the nations,
That shall lift their hearts to the Lord,
A song that shall conquer evil
And shatter the spear and sword,
And shatter the spear and sword.

​-노래가 된 이야기
   2절에서 작사가는 '우리에게는 노래가 있다'고 말한다. 그 노래는 모든 민족에게 들려져야 하는 노래. 모든 민족의 마음을 주께 돌려놓는 노래다. 왜 이야기가 노래되었나? 노래는 곧 씨알의 삶이다. 이야기가 일상의 율려를 따라 삶으로 연주되면, 그것은 노래가 된다. 그리고 이 삶의 노래만이, 모든 민족의 마음을 주께 돌려놓을 수 있다.

  삶으로 연주되는 이야기. 모든 민족에게 들려져야 하는, 진리의 인격화.

​-노래를 부르는 이들
  그럼 이 노래를 부르는 이들은 누구인가? 모든 사람을 위한 이야기를 삶으로 노래하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선민인가?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선택받은 사람들이란 의미에서는 선민이다. 그러나 이 선택의 목적이 무엇이냐가 중요하다. 이스라엘의 서사는 오랫동안 유대인들의 생존과 승리를 말하는 서사로 읽혔다. 그러나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밝히 드러냈고, 이를 통해 이스라엘 서사에 대한 새로운 독법이 창조 되었다. 곧 신약성경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새로운 읽기'냐? 이스라엘의 읽기와 비교해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성경 읽기는,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들과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로 나뉜다. 그리고 양쪽은 서로의 생존을 위해 투쟁한다. 그리고 끝내 선택받은 이스라엘이 승리를 쟁취하고, 선택받지 못한 이들은 멸망한다. 처음도 둘이고, 끝도 둘이다.

  그러나 같은 이야기가 예수와 그를 따르는 신약성경의 저자들에게는 달리 읽힌다. 선택이 있다. 그리고 선택받은 사람들의 '선택됨'의 목적은, 선택받지 못한 이들에게 나아감에 있다. 그리고 그 나아감은, 누구나 하나님의 선민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려있음에 대한 선언이다. 다시 예수를 통해서 '모두가'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식이다! 어느 한 쪽의 승리가 아니다. 예수의 승리요, 모두의 승리다. 다만 이 승리를 스스로 거절하는 자들이 있을 뿐이다.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은 인간 뿐만 아니라 우주 전체가 새로워지는 이야기의 절정이다.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이른바 '총괄갱신'이다. 따라서 예수를 따르는 하나님의 진정한 선민들은, 전체를 갱신하고자 한다. 이것이 목적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을 위한 이야기'가 그들에게 맡겨졌다. 그 이야기는, 하나였으나 둘이 되었고, 그 둘이 다시 셋을 돌아 하나되는 이야기. 하나가 셋이고, 셋이 하나인 이야기. 결코 찢긴 둘을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 내 살몸을 버려서라도 전체를 새롭게 하는 하나님의 이야기.

​​-악을 이기는 노래
  악(evil)은 무엇인가? 악은 인간에게 기생하며, 인간을 파멸시키는 무언가다. 악은 인간의 본래 모습이 아니다. '인간을 악으로부터 건져낼 수 있다'는 말은, 인간이 본래 악에 속하지 않았음을 전제한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말은, 사실 악의 본질을 관통하고 있는 말이다. 악은 사람이 아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기생하며, 그 사람의 인격을 좀먹는 것이 악이다.

  이 악은 사람에게 기생하기에,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와 초국가 연합에 이르기까지, 속속들이 그 마수를 드리워놓았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 악을 처리하는 신의 방법이 이미 알려졌다! 진리를 억누르는 거대한 악. 그러나 그 악 앞에서 잠잠히 자신의 살몸을 내어주는 한 사람. 위로는 하나님의 살려주심을 믿고, 옆으로는 자신을 해하는 원수마저도 복수하지 않으려는 그 빛된 길. 그 빛이 있는 자리에, 어둠은 싸울수도 없이 그 나약함의 실체를 드러낸다. 사랑 앞에 악은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총이든, 칼이든, 탱크든, 핵무기든, 살몸을 내어주려는 사랑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왜 그는 자신의 몸을 내어주는가? 무기를 이기는 진정한 무기가 비폭력에 있고, 그 비폭력은 사랑에서 나온다. 원수마저도 악으로부터 건져내려는 총괄갱신의 한 길.

  첫번째 문장의  "song to be sung"은 "song that should be sung" 으로 읽혀야 한다. 왜 모든 민족을 향해서, 이 노래가 '들려져야만' 하는가? 악의 그늘 속에서 힘겨워하는 모두에게, '악을 이기는 사랑'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모두를 위한 이야기가 있고(그러나 이야기 차원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그 이야기가 삶을 통해 노래가 된다. 그 노래란 사랑하는 삶에서 흘러나오는 신의 음성이라. 십자가는 속이 뚫린 피리. 그 피리를 통해 들리는 사랑의 노래는, 내 몸을 연주하는 신의 호흡이다. 거룩한 숨결이다.

  선민은 다름 아닌 피리들이다. 그들은 칼로 왕좌를 차지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숨 길로 부름을 받아, 속이 뚫렸다. 그 뚫린 길로 신의 숨결이 지나간다. 그 숨결에 그들의 몸은 떨며, 새로운 진동이 허한 공중으로 퍼져나간다. 노래. 그들의 몸을 울려 나오는 노래는 모두에게 들려져야 한다. 함께 사랑하기 위해. 함께 악을 이기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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