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from 카테고리 없음 2018. 4. 29. 00:19

  오늘은 모든 것을 멈추고 '통일'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하는 때입니다. 그런데 저는 통일이란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통일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옷차림을 통일하고, 머리 모양을 통일하고, 구호를 통일하고... 이런 식의 통일은 딱 질색입니다. 요즘 어느 도시나 시내를 가보면 모두 거리가 비슷비슷합니다. 경기도를 가봐도 강원도를 가봐도 우리 동네에 있는 가게가 거기도 있습니다. 그래서 동네마다 특색이 없어지고, 동네를 떠나 다른 동네를 가봐도 그 동네만의 정취를 느끼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그런데 만일 남북한의 통일이 남한이 북한처럼 되는 것이고, 혹은 반대로 북한을 남한처럼 만드는 것이라면, 저는 그런 통일은 싫습니다. 하나되는 것은 좋지만, 하나되는 것은 모두 가 천편일률로 같아지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참 하나는 다채로운 하나입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통일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에베소서 1:10, 새번역

하나님의 계획은, 때가 차면,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을 머리로 하여 '통일'시키는 것입니다.


  이때 통일이라고 번역된 말은 아나케팔라이오마이(ἀνακεφαλαίομαι)입니다. '아나(ανα)'는 '위/다시'이고, '케팔로스(κεφαλος)'는 머리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아는 영어 단어 capital이 왔습니다. 머리라는 뜻도 되고, 수도라는 뜻도 되고, 대문자라는 뜻도 됩니다. '무언가를 대표할만한 큰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capital이 뜻으로 가장 익숙한 것은 '돈'일 것입니다. "oo 캐피탈" 이란 기업 이름들을 많이 봤을 것입니다.


  그리고 뒤에 나오는 '마이'는 '되다'라는 동사를 만들어줍니다. 그렇다면 '통일'이라 번역한 아나케팔라이오마이는 '위로 머리 되다'가 됩니다. 통일은 위에 머리를 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통일만 부르짖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통일의 핵심은 머리로 무엇을 두느냐입니다. 우리 아까 capital이 '돈'이라고 했는데, 만일 돈이 사람의 머리가 되면 사람이 어찌 되겠습니까? 돈의 몸이 되어 사는 사람의 삶은 그 인간다움을 잃어버립니다.

  고개를 들어봅시다. 고개를 드니, 저 위에 머리가 있습니다. 어떤 머리가 보입니까? 무엇이 있든지 나는 머리가 아닙니다. 나는 그저 몸의 일부입니다. 그럼 어떤 머리가 있는지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함께 
위에 두어야 할 '대표할만한 큰 것'이 무엇일까요? 바울은 말합니다. 바로 메시아 예수입니다. 


에베소서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우리는 머리 되는 것 좋아합니다. 신명기에도 "머리가 될 지언정 꼬리는 되지 말게 하소서"라는 기도가 있습니다.(28:13)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머리가 되시기 위해서, 즉 이방인과 유대인을 하나의 몸으로 살 수 있도록, 그들의 머리가 되시기 위해서는 유대인에게도 버림받고, 이방인에게도 버림받으셔야 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버림받은 사람이 머리가 됩니다. 왜냐하면 버림받은 사람만이 자신을 버린 사람을 용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 용서로부터 사랑 밖에 모르는 사람을 버렸던 죄인들이 다시금 그의 몸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의 머리됨은 버림받음을 통해 이뤄졌습니다. 머리됨이 버림받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머리 되기를 주저합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머리됨은 과정없는 머리됨, 괴로운 과정없이 맛보고 싶은 달콤한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수의 머리됨은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나도 예수를 나의 머리로 두고, 너도 예수를 너의 머리로 두면, 너와 나는 둘 다 그 예수의 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의 몸에 대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 몸은 극한의 죽음을 겪었던 몸입니다. 그럼에도 그 몸은 죽음을 극복하고 다시 일으켜진 영원한 몸입니다. 왜 예수의 몸이 극한의 죽음과 영원한 부활을 겪었습니까? 그 몸이 죽음에 있든, 그 몸이 부활에 있든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예수는 제자들을 끝까지 사랑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설령 모든 제자들이 자신을 배신했어도, 예수는 살아서도 사랑했고, 사랑했기 때문에 죽었으며, 그 사랑을 위해 다시 부활했습니다.


  그런 예수를 머리로 둔다고 생각해봅시다. 내가 그이의 몸이 되는 것이고, 그이의 몸이 된다는 것은 죽으나 사나 사랑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이 신약성경이 말하는 '통일'입니다. 예수를 믿는 이들은 예수를 머리로 둔 사람들이고, 따라서 예수의 몸인 사람들입니다. 곧 죽으나 사나 사랑하는 진정한 통일을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철천지원수(하늘을 뚫을만큼 원수)처럼 지낼 때, 예수는 유대인도 사랑하시고 이방인도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되어 살 수 있도록 그 유대인과 이방인의 머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사랑말고 다른 것 하려 했던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은 용서하십니다. 그리고 받아주시고, 자신의 몸으로 삼아주십니다. 그 몸이 된 사람들은 사랑 밖에 모르는 사람이고, 그 사랑에는 정해진 방법이 없습니다. 사랑은 모두가 다른 모양, 다른 방법, 다른 느낌으로 해나가야 사랑입니다. 정해진 것 따라하는 건 사랑이 아닙니다. 그래서 통일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없는 통일은 너를 무미건조한 한 가지 색깔로 칠해버릴 것입니다. 그런 통일은 거절합니다. 사랑만이 통일을 다채로운 하나됨으로 만들어주고, 그 사랑은 메시아 예수를 머리로 둔 사람들의 일상 그 자체입니다.


  그러니 완전한 사랑이신 메시아를 함께 머리에 이고, 덤덤히 각자의 일을 해나갑시다. 그 일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예수의 몸에 아름다운 색동옷을 입혀 드리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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